24.08.27 07:07최종 업데이트 24.08.27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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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3일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당 대표 출마선언을 하고 있다. 이날 한 전 비대위원장은 본인이 당대표로 선출된다면 해병대원 순직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규명할 이른바 '채상병특검법'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수사 종결 여부와 무관하게 따로 발의하겠다고 밝혔다.남소연

찬성 여론이 70%에 육박하는 '채 상병 특검법'이 국회에서 공회전 한 지 오래다. 지난 5월 21대 국회에서 본회의를 통과했으나 대통령 거부권과 국민의힘의 반대 당론에 막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던 특검법은 22대 국회에서도 본회의를 통과한 1호 법안이었으나 종전과 같은 이유로 제정되지 못했다. 야당은 현재 세 번째로 법안을 발의해 둔 상태이지만 여당 의원이 몇 명이라도 동의해 주지 않는다면 특검법 통과는 앞으로도 난망할 것이다.

이처럼 교착상태가 이어지는 가운데 한동훈 국민의힘 당대표가 당대표 선거를 거치며 특검법에 대한 '조건부 찬성' 의견을 내놨다. 한 대표는 현재 발의된 법안에서 특별검사 추천권을 야당이 가져가는 것이 독소조항이라며 대법원장이나 대한변호사협회 등 '제3자'에게 특검 추천권을 준다면 특검법을 수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던 한 대표는 더불어민주당이 '제3자 추천'도 협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이자 새로운 조건을 하나 더 붙였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태로 재판을 받고 있는 이종호 블랙펄인베스트먼트 등이 모여있던 소위 '멋쟁해병' 카톡방과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구명로비 의혹이 언론에 제보된 경위를 '제보공작'사건으로 명명하며 특검의 수사 대상에 끼워 넣자는 것이었다.

공직자도 아닌 제보자가 본인이 직접 참여한 대화에서 지득한 바를 언론과 수사기관에 제보하고 의혹을 제기한 것이 어떤 범죄를 구성하기에 특검이 수사까지 해야 하는 일인지도 알 수 없을뿐더러, 당초 추천권을 문제 삼던 한 대표의 제안에 야당이 호응하자 새로 제시한 조건이란 점에서 한 대표는 정치적으로도 궁색한 처지를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김규현 변호사 등 해당 제보와 관련된 사람들이 시종일관 여당의 '제보공작' 주장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입장으로 본인들을 특검 수사 대상에 포함시켜도 상관없다고 얘기하고, 민주당이 특검법 발의를 재촉하자 한 대표는 8월 26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급하면 민주당이 제3자 특검법을 발의하라'며 당내 이견을 좁히는 절차가 필요하다며 한 발을 뺐다. 이처럼 계속 조건에 조건을 덧붙이는 모습은 특검법 처리에 대한 한 대표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

특검 추천권은 대통령 영향 없는 곳에 주어져야

채 상병 특검법에 담긴 핵심 질문은 '사망 사건 수사에 대통령이 부당하게 개입했는가'다. 애초부터 대통령의 격노로 임성근 사단장이 경찰 이첩 대상에서 빠졌다는 정황과 의혹이 없었다면 특검은 도입될 이유조차 없다. 채 상병 사망 책임은 관할 수사기관에서 적법절차에 따라 규명하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살아있는 최고 권력인 대통령과 그 참모들이 전화기에 불이 나도록 이곳저곳에 연락하며 결과적으로 수사 결과가 뒤집히는 결론에 닿았으니 특검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던 것이다.

일각에서는 검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수사와 기소 여부를 지켜보고 특검을 추진하면 된다고 하나 대통령이 수사기관 사무에 개입해서 수사 결과를 왜곡시킨 혐의를 대통령의 영향권 안에 있는 상설 수사기관에 맡기면 된다는 발상 자체가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특검 추천권은 당연히 대통령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곳에 주어져야 한다. 국민의힘은 야당이 추천권을 가져가는 것이 위헌적이라고 하나 역대 개별특검법에 전례가 없는 것도 아니다. 가령 2018년 제정된 '드루킹 특검'의 경우 대한변협이 4명을 추천하면 당시 야당이었던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바른미래당, 평화와정의의의원모임(민주평화당, 정의당)이 합의하여 2명의 후보자를 대통령에게 추천하는 방식을 취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수사팀장으로 있었고 한동훈 대표도 수사팀으로 일했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특검'의 경우 아예 야당인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합의한 2명의 후보자를 대통령에게 추천하는 방식이었다. 2012년에 통과된 '이명박 정부 내곡동 사저부지 매입 의혹 사건 특검' 역시 야당인 민주통합당이 2명의 특검 후보자를 대통령에게 추천했다.

정권과 관계없는 '공군 이예람 중사 특검'을 제외하고 최근 도입된 3건의 정권 관련 특검은 모두 야당이 추천권을 가져간 셈이다. 이 중 드루킹 특검법이나 박근혜-최순실 특검법은 현행법이기도 하다. 만약 야당이 추천권을 가져가는 것이 위헌적이라는 국민의힘 주장이 타당성을 얻으려면 국민의힘이 주도해서 만든 드루킹 특검법부터 헌법재판소에 가서 위헌성을 따져봐야 한다.

수사 받을 사람이 수사할 사람 정하는 격

지난 7월 10일 언론공공성지키기부산시민연대, 윤석열퇴진부산운동본부(준)가 부산시청 광장에서 '채상병 특검법' 거부권 행사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 규탄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김보성

이러한 맥락에서 대법원장이나 대한변협 같은 제3자에게 특검 추천권을 주는 것은 문제다. 우선 대법원장은 대통령이 지명하고 임명하는 자리다. 현 대법원장은 윤석열 대통령이 임명한 사람이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편파적이고 정파적으로 특검을 임명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이라는 최고 권력을 수사하는 일을 맡게 될 특검이 국민으로부터 그만한 신뢰를 얻지 못하면 수사는 힘을 받을 수가 없다. 대법원장이 누구건 대통령의 입김이 조금이라도 들어갈 수 있는 자리라면 추천권자에서 배제하는 것이 타당하다.

마찬가지로 대한변협 역시 부적절하다. 대한변협은 국가기관이 아니다. 국민이 선출한 국회의 야당 의원들과 사인(私人)들의 직역단체인 대한변협 중에 누가 더 대표성과 공신력과 책임성을 갖춘 기관인지는 따져볼 것 없이 분명하다. 현재의 변협을 신뢰할 수 없다는 뜻이 아니고, 제도와 법으로 부여된 책임의 울타리 밖에서 대통령을 수사할 책임자를 추천받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국민의힘은 특검 추천권에 이래라저래라 말을 얹을 처지가 아니다. 국민의힘 의원 중에는 특검이 개시되면 피의자나 참고인 자격으로 수사를 받아야 할 의원도 여럿이다. 다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 결과가 뒤집히던 당시 대통령실 참모로 일하던 사람들로 대통령과 국방부, 해병대 사이에서 수차례 전화를 주고받으며 외압을 실질화했다는 의혹의 중심에 서 있는 이들이다.

한동훈 대표는 야당이 특검 추천권을 가져가는 것을 두고 '선수가 심판을 고르는 격'이라 표현했지만, 실상은 국민의힘이 특검 추천권에 관여하는 것이야말로 수사받아야 할 사람이 수사할 사람을 정하는 격이다.

진실의 입을 열 시간

국민 열 명 중 일곱이 특검을 희망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그만큼 '대통령이 외압을 가한 것이 사실인가'에 대한 국민적 물음이 크기 때문이다. 때문에 채 상병 특검법은 여야 정치 협상의 대상이 될 수가 없다. 한동훈 대표가 '제3자 특검법' 카드를 들고나왔다고 해서 국민의힘이 이 사건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니다. 애초부터 수사 결과에 따라 여당은 '책임을 져야 할 입장'에 놓여있을 뿐이다.

시계를 되돌려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특검법을 새누리당과 야당이 협상해서 만들었다고 가정하면 특검 수사가 국민의 신뢰 속에 이루어질 수 있었겠는가? 지금 국민의힘은 이상한 방향으로 특검법 논의를 끌고 가려 하는 것이다.

특검법은 진실과 국민의 여망에 따라 제정되어야 한다. 수사외압 사건을 수사하는 일인 만큼 수사의 공정성을 확보하는 일에 더욱 만전을 기해야 한다. 박근혜-최순실 특검의 전례에 비추어 볼 때, 정치적 거래로는 여당을 무조건적인 '대통령 감싸기' 기조에서 벗어나게 만들기 어렵다. 특검이 왜 필요한지 진실을 밝혀가는 과정 속에서 여당을 압박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그렇기에 특검의 전 단계로 국정조사가 필요한 것이다.

군인권센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참여연대는 지난 14일 기자회견을 열고 채 상병 국정조사에서 규명해야 할 의혹이 24개이고 관련자가 134명이라 발표한 바 있다. 세 단체는 야6당 원내대표와 함께 국회에 국정조사를 청원하기도 했다.

그동안 숨죽여 온 수많은 외압의 피해자들이 진실의 입을 열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특검법은 한동훈 대표가 만드는 게 아니라 이들의 입을 통해 만들어지게 될 것이란 점을 국회는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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