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 소극장의 상징 '학전'을 30여년간 운영하며 후배 예술인을 배출해 온 가수 김민기가 지난 7월 21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73세
연합뉴스
또 다른 곡은 고 김민기 학전 대표(아래 김민기)의 '봉우리'입니다. 제목은 '그곳에 올라'와 유사해 보이지만, 사실 전혀 다른 내용입니다.
저나 정훈님은 김민기 세대는 아니죠. 저는 대학 다닐 때 운동권도 아니어서 그의 곡을 부를 일도 없었고요. 그런데 가수 김현철씨가 2014년 MBC <라디오스타>에 출연해서 '봉우리'가 정말 좋다고 극찬을 했고, 그때 '봉우리'를 처음 들어본 저는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겁니다. 한참 걷다가 목소리에 이끌려서 어딘가에서 우뚝 멈추어 서버린 기분, 사람을 잡아 이끌어서 머물게 하는 힘이 있는 곡이었습니다.
"지금 힘든 것은 아무것도 아냐/저 위 제일 높은 봉우리에서/늘어지게 한숨 잘 텐데 뭐..."라는 내레이션이 끝나고 "허나 내가 오른 곳은 그저 고갯마루였을 뿐"라고 노래가 시작되는 대목, 숨이 턱 막혀옵니다. 이어 (낮은 데로만 흘러 고인) "바다"라고 낮게 읊조리는 부분에선 아득한 기분이 듭니다. 끝에 "친구야 바로 여긴지도 몰라...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까지 들으면 괜히 주위를 한 바퀴 둘러보게 됩니다.
'봉우리'는 1984년 LA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지 못한 선수들을 위로하기 위해 만들어진 곡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카이브K의 2019년 김민기(2024년 2월 온라인에 공개)
인터뷰에서 이곡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등장합니다.
<모래시계>로 유명한 송지나 작가가 MBC에서 올림픽 다큐멘터리를 만든다고 해서 "금메달리스트 대신 떨어진 사람들에 대해 해봐라"라고 조언했고, 이에 송지나 작가가 "그렇게 할 테니까 아저씨(김민기)가 주제곡 주세요"라면서 만들어졌다는 겁니다. 실제로 MBC 다큐멘터리 <내일을 향해 달려라>에 쓰였고요. 인터뷰이가 "'봉우리'는 힘든 사람들을 위로하는 낮은 목소리라고 느껴진다"고 말하자 그는 이렇게 답합니다. "깨져본 놈들을 위한 곡이니까."
저는 체육 시간 달리기를 할 때마다 두려웠습니다. 8명 중에 보통 7등이나 8등을 했거든요. 한 4~5등 정도라도 하면 괜찮을 텐데, 항상 가장 뒤처지는 편에 속했습니다. 그래서 올림픽을 보면서도 첫 경기에서 탈락하거나 애초에 순위권 경쟁에서 밀린 선수들, 서글프게 우는 이들에게 마음이 더 쓰였던 것 같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4년 내내 이날을 위해 연습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