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7.30 14:15최종 업데이트 24.07.30 14:25
  • 본문듣기
지난 26일 금요일, 2024년 파리 올림픽 개막식이 열리는 파리의 에펠탑을 배경으로 한 트로카데로 경기장의 전경. AP/연합뉴스

2024년 파리올림픽 개막식은 열광적 환호와 격한 거부감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며 세계 곳곳에서 뜨거운 논쟁을 야기하는 초유의 대형 이벤트였다. 올림픽 역사상 최초로, 닫힌 경기장을 벗어나 도시 전체를 무대로 활용한다는 발상의 전환부터 파리 올림픽은  파격을 선사했다.

개최지인 파리 시민들도 선수단이 센강에 띄운 배를 타고 입장한다는 사실 외에 어떤 내용이 개막식에 준비되는지 알지 못했기에, 개막식 1주 전부터 도심 곳곳을 통제하는 역대급 민폐 개막식에 불만이 컸다.  


그러나 막상 뚜껑이 열리고, 도시 전체에서 펼쳐진 개막식은 예상을 뛰어넘는 전개, 놀라운 상상력, 충격적인 표현 등으로 시민들을 사로잡았다. 개막식 다음 날 실시된 해리스 인터랙티브 설문조사에서 85%의 (그 불만 많던) 프랑스인들은 개막식이 성공적이었다고 평했고, 5%의 시민들만이 실패작이라 평했다.

'매혹, 동시성, 자유, 평등, 박애, 여성 연대, 스포츠맨십, 축제, 어두움, 장엄함, 연대, 영원' 총12개의 장면으로 구성된 개막식을 관통하는 주제는 단연 '혁명'이었다. 프랑스의 역사와 올림픽 영웅들을 향해 바쳐진 대서사시는 도발적인 장면들을 품고 있어, 논란의 소재를 제공하기도 했으나, 개막식 예술감독을 맡은 연극 연출가 토마 졸리(Thomas Jolly)는 이 또한 극적으로(théâtral) 모든 장면들을 드러내고자 한 자신의 의도라고 설명한다.  

혁명이 국가적 자산인 나라의 혁명적 개막식
 
지난 26일 파리 올림픽 개막식에서 복면을 쓴 성화봉송 주자가 파리 오르세 미술관 꼭대기를 달리고 있는 모습.AFP/연합뉴스
 
얼굴에 복면을 한 수상한 복장의 사내가 올림픽 성화를 들고 파리의 지붕 위를 겅중겅중 뛰어다니는 것으로 이 놀라운 드라마는 시작됐다. 그는 프랑스 게임회사 유비소프트가 개발한 히트작 '어쌔신 크리드 유니티'의 주인공. 게임 속에서 그는 프랑스 대혁명 시기에 활동하던 자객이다. 

복면 속 남자는 게임에서처럼, 개막식이 펼쳐지는 동안 노트르담 대성당과 올림픽 후원사인 루이뷔통 가방 제작실을 비롯해, 파리의 지붕 위를 성화를 들고 종횡무진 뛰어다니며 시선을 압도한다. 자칫 발을 헛디디면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는 아찔한 장면의 연속이다. 그는 마지막 미션인 듯, 에펠탑에 이르러 성화를 축구 스타 지네딘 지단에게 넘겨주고 사라진다.

주최측이 철저히 비밀로 숨겨둔 탓에 프랑스 네티즌들 사이에선 가면 속 실제 인물이 누군지를 두고 며칠째 설왕설래가 이어지기도 했다. 신성한 세계인의 축제 개막식의 키워드로 얼굴 없는 자객을 초대하는 설정, 여기서부터 권위주의에 도전하는 대범한 연출가의 시도가 읽힌다.

뤼미에르 형제가 만든, 인류 최초의 영화 <기차의 도착>(1896)이 과거 역사로 쓰이던 오르세 미술관을 배경으로 등장하고, 35개국에서 뮤지컬로 제작된 바 있는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의 한 장면이 재현된다. 개막식 연출가 졸리는 개막식의 중심에 "민중의 목소리를 들으라"는 메시지가 관통하길 원하며, '불꽃'으로 그것이 상징되길 바랐다고 뮤지컬 연출가 알랭 부브릴은 전한다.
 
지난 26일 2024 파리 올림픽 개막식, 콩시에르주리에서 프랑스 혁명을 상징하는 세리모니가 펼쳐지고 있다.AFP/연합뉴스
 
도난당했던 <모나리자>에 이어, 혁명의 뜨거운 한 장면을 묘사하는 외젠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 차례로 지나간 후, 관객들은 교수대로 끌려가고 있는 마리 앙투아네트를 만난다. 1793년 처형되기 전까지 그녀가 갇혀 있던 감옥 콩시에르주리(현재는 법원)에서 잘려 나간 자신의 목을 들고 선 프랑스의 마지막 여왕은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혁명가로 불리던 <다 잘될 거야>의 한 대목을 부른다. "다 잘될 거야. 다 잘될 거야. 민중들은 귀족들의 목을 칠 거야".

그녀의 말과 함께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인 콩시에르주리 건물에서, 프랑스 그룹 고지라는 혁명가를 헤비메탈로 재해석한다. "모든 것이 잘될 거야. 우린 기뻐할 거야. 좋은 날은 올 거야. 민중들에게 다른 선택은 없어. 귀족들은 모두 다 내 잘못이라 말할 거고, 성직자들은 자신들이 소유한 재물을 후회하겠지… "

귀족들의 감옥이 된 궁전, 목이 잘린 왕비, 민중의 불꽃, 명백한 프랑스 역사의 장면들이건만, 일부 내빈들을 불편하게 하기도 했다. 이 대목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극우와 극좌 정치권에서 나란히 나왔다. 굴종하지 않는 프랑스당의 대표 장뤼크 멜랑숑은, 개막식이 보여준 '대범함과 비범한 반항 정신, 창의성'을 높게 평가하면서도 "왜 루이16세가 아니라, 마리 앙투아네트였나"에 의문을 제기하며 불편함을 드러냈다. 극우 정치인 마리옹 마레샬도 "목 잘린 마리 앙투아네트, 드래그 퀸, 아야 나카무라에게 춤을 추도록 강요받은 공화당 수비대의 굴욕…"을 언급하며 유감을 표했다. 
 
지난 26일 2024 파리 올림픽 개막식에서 센 강을 질주하는 은색 기계 말로이터/연합뉴스

'연대'를 표현하는 장에서는, 올림픽기를 든 기수가 은색 말을 타고 센 강을 질주하는 믿을 수 없는 장면이 선보인다. 개막식 가운데 가장 시적인 순간이기도 했던 이 장면은 낭트의 건축 디자인 연구소 아틀리에 블램(Atelier Blam)에서 제작된 은빛 기계 말을 통해 실현될 수 있었다. 말은 강의 여신 세카나를 상징하며 동시에 우정과 연대의 정신으로 하나 된 올림픽 정신을 의미한다는 것이 연출가 토마 졸리의 설명이다.

칼 루이스, 라파엘 나달, 나디아 코마네치, 세레나 윌리엄스 등 각국의 전설적 올림픽 스타들이 함께한 성화 봉송의 마지막 주자는 프랑스의 스포츠 스타 마리 조제 페레크(올림픽 3관왕의 육상선수)과 테디 리네르(올림픽 3관왕의 유도선수)였다. 두 사람의 점화로 공중에 떠오른 기구는 1783년 인류 최초로 기구를 하늘에 띄운 프랑스의 몽골피에르 형제에 대한 오마주이기도 했다. 점화된 성화를 품은 기구는 1783년 처음 그것이 선보였던 파리 튀일리 공원 안에 머물며 올림픽 기간 동안 관람객들을 만난다.

프랑스가 인류에게 선사한 예술적, 문화적 성과들과 멈추지 않았던 혁명의 역사를 대담한 톤으로 변주해 내는데 개막식은 온전히 바쳐졌다. 그리고 언제나 최초의 것들이 그러하듯, 연출가의 과감한 대담성은 그 대가를 요구받기도 했다.

최초의 남녀 동수 올림픽

파리는 19세기와, 20세기, 21세기에 각각 한 번씩 올림픽을 치른 도시이기도 하다. 1900년 파리 만국 박람회와 함께 열린 올림픽이 최초로,여성들이 참여했던 올림픽이었다면, 이번 파리올림픽은 남녀 동수가 참여한 올림픽이다. 단순히 기계적인 남녀 동수를 실현해 내는 데 그치지 않고, 여성이 함께하는 역사의 진보를 위해 활약한 여성들을 기억하며 그들의 동상을 등장시켰다. 이들의 동상들은 올림픽 개막식이 끝난 후에도 도시 곳곳에 남겨지게 된다.

그 10인의 여성 가운데 첫 주자가 올랭프 드 구주(1748-1793)다. 프랑스대혁명이 말한 평등에서 여성이 배제되었음을 날카롭게 지적하며, 1791년 여성시민인권헌장을 직접 작성, 발표한 프랑스의 문인이자 최초의 페미니스트로 기록되는 인물이다. 마루 앙투아네트가 남편 루이 16세와 함께 처형된 것을 두고, "여성이 단두대에 끌려가 처형될 권리가 있다면, 연단에 올라 목소리를 낼 권리도 있다"라며 명징하게, 혁명이 잊고 있던 절반의 '시민의 권리'를 역설하다가, 그 역시 단두대에서 처형되었다.

파리 코뮌(1871)의 한 주역이었으며, 노동자 계급의 지위 향상과 여성의 권리를 위해 싸웠고, 누벨칼레도니로 귀향을 가서도 프랑스의 식민지 정책에 반한 투쟁을 지속했던 아나키스트 투사 루이즈 미셸(1830-1905)도 10인 중 한 사람이다. 철학자 시몬 드 보부아르, 낙태 비범죄화의 시발점이 된 법조인 지젤 알리미, 최초의 여성 영화감독 알리스 기, 여성의 스포츠 참여권을 위해 평생 헌신해온 수영선수 알리스 밀리아 등이 이들과 함께 하고 있다.

모든 혁명의 역사 속엔 반혁명과 혁명의 모순도 함께 존재한다. 올랭프 드 구주는 혁명을 국가적 자산으로 삼는 나라에서 어쩌면 감추어야 할 인물일 수도 있으며, 파리시를 노동자 서민들의 독립적 자치 구역으로 만들어 버렸던 파리 코뮌의 주역은 여전히 제도권 권력의 눈엔 간담이 서늘한 존재일 것이다. 그러나 혁명의 모순을 저격한 인물, 실패한 아나키스트 혁명의 투사를 역사속 영웅으로 새겨 넣는 일이야말로, 혁명을 단순한 관광상품이 아니라 사회 속에 살아 숨쉬는 불가역적 세포로 각인시킨다는 사실을 연출가는 행동으로 웅변하고 있었다.

신성 모독 시비에 휩싸인 장면
 
소셜 미디어 인플루언서 앤드류 테이트가 지난 28일 일요일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프랑스 대사관 근처에서 파리 올림픽의 '축제' 부분을 비난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는 모습. 앤드류 테이트 뒷편으로는 <최후의 만찬>과 파리 올림픽 세리머니 모습을 비교하고 있는 사진이 있다. 다만 오른쪽 캡처 사진 위의 빨간 십자가는 세리머니에 없는 부분이다. AP/연합뉴스
 
이번 개막식에서 가장 뜨거운 논란이 되었던 부분은 '축제'란 제목의 장에 등장한 디오니소스 신과 신들의 만찬이다. 많은 이들은 이 장면이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의 패러디이며, 이는 기독교에 대한 모독이라 해석했다. 프랑스 주교회의도 개막식 다음 날 '기독교에 대한 조롱 장면'을 개탄한다는 성명을 발표했고, 일부 국가에서는 거의 나신의 남성이 등장하는 이 장면을 삭제한 채로 개막식 영상을 내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29일 BFM-TV에 초대된 연출가 토마 졸리는 그가 개막식의 '축제' 파트에서 표현한 것은 <최후의 만찬>이 아니며, 그 어떤 종교도 조롱하고자 하는 의도가 없었음을 밝힌다. "제 입장에선 더없이 명확하게 표현했습니다. 테이블 위에 누워있는 디오니소스가 등장합니다. 그는 축제의 신이고, 포도주의 신이죠. 강의 여신의 아버지이기도 하죠. 그 장면은 올림푸스의 신들과 이교도들이 함께 벌이는 축제를 묘사한 겁니다. 올림픽 개막을 축하하는 행사니까요."

올림푸스 12신 중 하나인 디오니소스는 문명과 비문명, 남성과 여성, 인간과 짐승, 이성과 광기, 현실과 허구 등 경계를 넘는 양면성을 지닌 신이기도 하다. 그의 만찬에 여장 남성이 등장하는 이유는 여기서 찾아진다.  

이날 디오니소스로 분한 가수 필리프 카터린느는 자신의 신곡 <벌거벗은(NU)>을 나른한 목소리로 불렀다. "우리가 모두 벌거벗은 채로 산다면 거기에 전쟁이 있을까 ? (…) 우리가 벌거벗었을 때, 거기엔 더 이상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없지 (…)  우리가 태어났을 때처럼, 벌거벗은 채로 산다면".  
 
개막식에서 재현된 장면은 17세기 얀 하르멘츠(Jan Hermansz)의 작품 <신들의 만찬(축제)>을 훨씬 더 닮아 있다. 이 작품에서 가운데 앉은 인물은 예수가 아니라 아폴론이다.위키미디어 공용
 
그는 BFM TV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출연한 장면이 불러일으킨 논란에 대해 이렇게 언급했다. "솔직히 말해서, 논란이 전혀 없다면, 그 또한 재미없겠죠. 만약 모두가 동의하고, 모두 같은 의견이라면, 세상은 얼마나 따분할까요. 그거야말로 또 다른 파시즘이죠." 

그의 노래는 같은 날 비 오는 센강에서 가수 줄리엣 아르마네트가 부른 <이매진>의 메시지와도 상통한다. "국가가 없다고 상상해봐. 살인도 희생도 없고 종교도 없는 그런 곳, 거기서 모든 사람들이 평화롭게 사는 모습을 상상해 봐. 사유물이 없고 탐욕과 굶주림도 없으며 오직 인류애만 있는 곳…"

전설이 된 <이매진>은 더 이상 사람들을 자극하지 않았지만 디오니소스의 신들의 만찬을 예수와 열두제자의 최후의 만찬이라 여긴 사람들은 자신들의 추측을 진실이라 굳게 믿었다. 종교계의 거센 반발에 여론재판에 끌려 나온 연출가의 알리바이는 입증되었으나, 논쟁의 확산을 막기 위해 IOC는 "연출가의 의도와 달리, 마음 상하신 분들이 있다면 사과드린다"라며, 논란을 진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셀린 디옹이 세계인에게 전한 메시지 <사랑의 찬가>
 
지난 26일 2024 프랑스 파리 올림픽 개막식에서 셀린 디옹이 에펠탑에서 공연하는 모습.AP/연합뉴스
 
건강상의 문제로 4년 동안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가수 셀린 디옹이 에펠탑에서 <사랑의 찬가>를 부르며 대미를 장식했다. 몸이 점점 굳어져 가는 고통스러운 질병과 사투를 벌이며 몰라보게 야윈 모습이었으나, 이전과 다르지 않은 천상의 목소리와 압도적 카리스마를 뿜어내며 10억 명의 시청자들에게 벅찬 감동을 전했다.  

매 순간 예측 불허의 도발적 전개로 관객의 혼을 빼놓던 이 날의 퍼포먼스는, 결국 세계인이 한 곳을 주목하는 그 시간, 인류가 함께 나눠야 할 한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사랑'이라고 역설하는 듯, 흔한 올림픽 건전가요 대신 에디트 피아프가 남긴 불멸의 사랑 노래를 마지막 메시지로 전했다.  

셀린 디옹이 4년 만에 다시 무대로 돌아오기 위해 가졌던 용기와 들인 노력은, 4년 만에 돌아오는 인류의 스포츠 제전에 서기 위해 인내해 온 선수들의 그것에 비견되는 것이었다. 선수들과 가수, 이 모두를 지켜본 지구촌 사람들은 그녀의 혼신의 노력이 담긴 노래 속에서 한마음이 될 수 있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집행위원장 크리스토프 두비는, 다양한 파격이 불러온 논란 속에서도, 27일 "파리 올림픽 개막식은 웅장했다. 이번 개막식은 올림픽이란  건물에 단순한 '돌' 하나를 얹은 것이 아니라 거대한 '산'을 추가했다"라며 센 강변에서 치러진 전무후무했던 파리 올림픽에 극찬을 보냈다.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