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비큐 그릴 뒤 맥주. 정체가 궁금하다
윤한샘
양조장을 둘러보니 긴 테이블에 맥주와 과일이 놓여 있었다. 야외 그릴 위 돼지고기에서는 모락모락 김이 올라왔다. 비 내리는 풍경, 흔들리는 나무 소리 그리고 맛있는 고기 냄새가 꿈처럼 느껴졌다.
맥주는 셀프다. 맥주 탭이 달려 있는 맥주 냉장고(케그레이터)가 테이블 뒤에 준비되어 있었다. 먹고 싶은 만큼 양껏 마실 수 있다. 와일드 에일도 있었지만 여기서 만든 인디아 페일 에일(IPA)와 밀맥주도 맛볼 수 있다. 양조장에서만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호사다.
남은 "?"를 마시며 야생발효 맥주 양조에 대해 궁금했던 점을 물어봤다. 야생효모와 젖산균은 와일드 에일에서는 아군이지만 그렇지 않은 스타일에서는 적군이다. 이 녀석들은 생명력이 강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남아있으면 언제라도 다른 맥주를 오염시킬 수 있다. 카스에서 시큼한 맛이 난다고 상상해 보라. 이런 재앙을 막기 위해 양 대표는 야생발효 맥주 라인과 타 맥주 라인을 구분한다고 했다. 장비 내 자동세척(Clean In Place)이라 불리는 맥주 청소도 더 세심하고 강력하게 하고 있다고 했다.
지역 미생물을 컬처링(culturing), 즉 접촉시키는 방법도 궁금했다. 이를 위해서는 맥즙을 일정 시간 야외에 노출시켜야 한다. 자칫하면 원치 않는 균이 영향을 미치거나 벌레나 들어갈 수도 있다.
양 대표는 가장 많은 실패를 경험한 부분이라고 털어놨다. 더운 여름은 피해야 하고 늦가을이나 초겨울에만 가능한데 그 타이밍을 잡는 것이 쉽지 않다고 했다. 자세한 건, 태평양조의 비밀이라며 싱긋 웃었다. 그러고 보니 람빅도 비슷했다. 람빅 양조사도 늦가을 밤에 맥즙을 짧은 시간 미생물에 노출시킨 후 나무 배럴에서 발효와 숙성을 진행한다. 불필요한 오염을 막기 위해서다.
앞으로 어떤 맥주를 계획하고 있는지 물으니 '발효의 미학'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지역 나무로 직접 만든 큰 배럴을 이용한 맥주도 그리고 있다고 했다. 실행에 옮겨진다면 한국에서는 쉽게 만날 수 없는 독특한 맥주가 될 것만은 분명하다.
헤쳐 나가야 할 어려움이 눈에 선했지만, 이들에게는 그 또한 즐길 거리다. 태평양조라는 오케스트라의 주인공은 미생물이지만 마에스트로는 양조사였다. 좌충우돌하겠지만 크래프트 맥주는 원래 날 것에서 진주가 나오는 법이다. 이 드림팀이 선사할 즐거움을 고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