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몰트라거. 흑호 단일종으로 만든 생극양조 라거다.
윤한샘
양조장을 둘러본 후 의자에 앉자 허 대표가 맥주를 가져왔다. 갓 만든 생극양조 맥주였다. 맥주를 따르는 그에게 어떻게 보리농사와 맥주 양조장을 시작했는지 물었다. 사명감, 자부심 같은 말이 나올 줄 알았는데 의외의 단어가 나왔다. 할아버지였다.
허 대표의 증조부는 이곳에서 1955년 막걸리 양조장을 운영했다. 조부로 이어진 사업은 1970년 매각했지만 어린 시절 가족 모임에서 양조장은 빠지지 않는 주제였다. 양조장 한구석에 할아버지가 막걸리 담글 때 썼던 항아리가 있었다. 몸에 이미 양조사의 피가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맥주를 만들겠다는 결정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고 했다.
농민이 되겠다는 결심은 아버지의 권유 때문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농사꾼이 아닌 화학공학과 교수다. 농사를 미래 먹거리로 본 혜안도 놀라웠지만 그런 아버지를 믿고 시골로 온 허 대표는 더 놀라웠다.
생극에 할아버지 땅이 있었던 덕에 하드웨어는 문제없었다. 소프트웨어가 고민이었고 시작은 쌀농사였다. 그러나 공부할수록 1차 생산물보다 2~3차 농산가공품을 통해 부가가치를 올려야 한다는 생각이 굳어졌다.
"제 와이프는 스페인 사람이에요. 자연스럽게 유럽에 자주 가게 됐죠. 전통시장에 자주 놀러 갔어요.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확신을 얻은 게 있어요. 농산물에 우열이란 없고 그 지역의 기후와 환경이 고유한 농산물을 만들 뿐이라는 거였죠. 우리 땅에서 나는 농산물은 우리를 담고 있어요. 그런데 마트에 가면 우리 농산물로 만든 가공품을 찾을 수가 없어요. 원물에서도, 가공품에서도 경쟁력이 없는 게 현실이에요."
허 대표는 우리 농업의 미래는 부가가치를 올리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높은 부가가치가 있는, 우리 농산물로 만든 가공품이 필요했다. 오랜 고민 끝에 얻은 답은 국산 보리로 만든 크래프트 맥주였다. 충북 음성은 보리 재배에 적합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그는 가능성을 믿고 2014년 첫 파종을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수확한 보리를 팔 곳이 없었다.
한반도의 떼루아, 한국 맥주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