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6.20 11:06최종 업데이트 24.06.20 11:06
  • 본문듣기

한 고용센터에 마련된 구직상담·구직등록 창구 모습. ⓒ 연합뉴스


저는 분기별로 경기도 부천시의 시니어 클럽에서 고령 구직자들을 상대로 노동법 교육을 합니다. 고령 구직자들이 일자리를 찾기 전에 근로기준법과 최저임금법을 잘 알고 노동시장에 들어가야 자신의 권리를 지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올해 만 66세의 강영숙씨(가명)도 시니어 구직자입니다. 1958년에 태어난 그는 20대 후반에 결혼해 맞벌이했습니다. 강씨 부부가 직장생활을 하던 80년대 후반기는 기름값도 싸고, 물가와 인건비도 싸서 대한민국의 경제가 급속히 발전하던 때였다고 합니다.


강씨 부부는 창동 단칸방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남편은 동대문구 근처의 봉제공장에 다녔습니다. 강씨는 이름을 대면 알만한 식품 가공업체에 생산직으로 일했습니다. 1988년 이후에는 임금이 급격히 올라 차곡차곡 모은 적금에 높은 금리까지 더해져 금방 목돈을 마련했습니다. 물가는 버틸 만했습니다. 1990년대가 되면서 처음으로 자가용을 사고, 방 3개짜리 아파트도 장만했습니다.

이후 남편은 경기도의 시설관리공단에 청소 공무직으로 운 좋게 취업해 25년간 일하다 퇴직했습니다. 강씨 역시 출산 후에도 일을 계속했지만,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자 일을 그만뒀습니다. 강씨의 남편은 정년퇴직 이후 잠시 쉬다가 아이가 대학을 마치면서 다시 일을 시작했습니다. 국내에서 손꼽는 규모의 인력파견업체에 취업하여 빌딩 관리 일을 합니다. 1년 단위로 계약을 반복하는 비정규직입니다.

강씨 역시 55세가 넘어서 일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식당에서 주방 보조로 설거지도 하고 조그만 제조업체 조립공정에서 생산품을 포장하는 일용노동자로 3년 가까이 일했습니다. 강씨 부부 모두 최저임금 수준에 3~6개월 단위 기간제 혹은 일용직 노동자로 불안정 노동을 지속해 왔습니다. 이마저도 65세가 넘어가면서 제조업체에서는 강씨와 같은 고령자를 채용하길 꺼려서 강씨 부부는 고민입니다.

강씨 부부는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대한민국의 산업성장기에 가장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러나 가장 열심히 일하고도 정년을 지난 지금 편하게 연금 생활로 휴식을 맞이하지 못한 채 다시금 저임금 불안정 일자리로 내몰리는 상황입니다. 역설적이지요.

정년을 지나 다시 일해야 하는 사연

강씨 부부가 다시금 일자리를 찾아야 하는 상황은 복합적입니다. 우선 지난해부터 지급되는 국민연금이 과거 근로소득을 크게 대체 하지 못합니다. 부부가 같이 받는 돈이 100만 원 남짓입니다. 가진 재산이라야 집 한 채가 전부인데 강남과 같은 서울의 요지 주택이 아니라 집값이 많이 올랐다고 하지만 마땅히 현금으로 융통해 생활비를 감당할 수준은 안 됩니다. 장성한 자녀는 맞벌이에 자녀 돌보기도 벅차 다시 강씨의 집으로 들어오겠다 합니다.

강씨처럼 노동시장으로 다시 일자리를 찾아 나서는 고령 취업자는 약 630만 명에 달합니다. 통계청 고용동향에 따르면 전체 취업자 수의 약 23%를 차지하는데요. 가장 최근의 자료인 2024.5 통계청의 고용동향에 따르면 60세 이상 취업자는 1년 전에 비해 약 26만 명이 늘어났습니다.

1년 전에 비해 40대가 약 11만 명 줄어들거나 30대가 약 7만 4천 명, 50대가 약 2만 7천 명 증가한 것에 비하면 폭발적이라고 표현해도 과하지 않습니다. 

정년을 지나 다시금 일터에서 고단한 삶을 살아야 하는 사연이 모두 강씨 부부 같지는 않을 겁니다. 고령 구직자 중에는 과거 전문직에 종사하며 자산을 축적하고 큰 경제적 어려움 없이 자신의 재능이 사회에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소일거리를 찾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630만의 고령 노동자 중 대다수는 가정생활을 지탱하기 위한 생계의 목적으로 일터로 나섭니다. 2021년 통계청의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약 52% 고령 노동자가 '생활비를 위해 일 한다'라고 답했습니다. 이처럼 고령자의 노동은 이제 노동시장에서 보편적인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이들이 안전하게 일하고 정당한 노동의 가치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나 노동시장의 법과 제도는 여전히 고령 노동자에게 불리합니다. 사용자가 55세 이상 고령 노동자에 대해 무한정 비정규직으로 쓸 수 있는 제도가 대표적입니다.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비정규직이라 불리는 기간제 노동자의 경우 2년을 넘겨 사용할 수 없습니다. 비정규직 기간이 너무 길게 반복되면 노동자의 지위가 불안정해지기 때문입니다.

늙었으니 계속 비정규직?
 

지난 4월 19일 가사-돌봄유니온, 노후희망유니온, 이음나눔유니온, 전국시니어노조, 한국노총 전국연대노조, 한국가사노동자협회 주최로 서울 중구 서울시의회 앞에서 '65세 이상 최저임금 제외하는 최저임금법 개악 건의안 폐기 촉구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 이정민

 
그러나 55세 이상 고령 노동자에 대해서는 기간제 사용 제한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즉 근로계약 기간이 3개월이건, 1년이건 비정규직 계약이 계속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당연히 근속연수가 늘어나도 임금을 비롯한 근로조건은 처음으로 돌아갑니다. 갈수록 나이가 들어 노쇠한데 당연한 거 아니냐고요. 고령 노동자들이 일하는 직종은 대부분 단순 반복 업무이거나 사회적 약자를 보살피는 돌봄 노동, 청소와 미화 등 젊은 구직자가 피하는 분야입니다.

성실성과 사회활동에서 축적된 경험만 있다면 직무역량은 충분할 겁니다. 더욱이 이러한 직종은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필수 노동이지요. 실제 고령 노동자를 채용한 사용자들도 책임감 있게 맡은 업무를 수행하며 연륜으로 업무처리가 능숙하여 중장년 이상의 아르바이트 고용에 대해 긍정적이었다는 조사도 있습니다.

이를 고려하면 이들의 노동에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근속에 따른 적정한 승급과 보상이 이뤄지는 체계가 필수적입니다. 지금처럼 고령 노동자에 대해 몇 년이 되건 비정규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면 여기저기 몇 개월 단위로 옮겨 다니는 불안정 일자리만 양산될 것이며 이들의 일자리는 기피 일자리로 낙인찍히게 될 것입니다.

또한 65세 이상 고령 노동자에 대한 일터에서의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고령 노동자가 상용직으로 일하는 환경미화 경비, 가사노동 및 돌봄 요양 서비스 등의 직종에서 만 65세의 나이는 많은 나이가 아닙니다. 실제 노동 상담을 하다 보면 이들 직종에 대한 정년이 취업규칙을 통해 만 65세 이상으로 정해진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데 현재 65세 이상으로 새롭게 취업한 고령 노동자는 계약기간이 만료되거나, 해고나 권고사직을 당하더라도 구직급여(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습니다. 반복되는 비정규 계약을 허용하여 쉬운 해고로 일자리를 잃거나 건강이 악화하여 일을 할 수 없더라도 실업급여를 통해 안정적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워집니다. 결국 다시금 비정규직 저임금 불안정 일자리로 내몰리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만 65세를 넘었다고 하더라도 고령 노동자의 입직과 이직이 활발한 이들 업종에 대해서는 비자발적 이직시 구직급여 지급을 통해 실업의 예방과 구직의 촉진을 원활하게 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고령 노동자들의 일자리 질을 높이는 것도 중요한 과제입니다. 고령 노동자들에게 주어지는 일자리를 보면 저임금에 단기간의 불안정 일자리가 대부분입니다. 화단에 꽃을 심고, 건널목에서 길 건너는 행인을 보조하고, 지하철 혼잡시 승객에게 길을 안내하는 등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계절적·단기적 공공일자리가 대표적입니다.

물론 코로나19 감염병 확산으로 인한 경제위기가 확산하면서 이런 공공일자리는 취약계층에는 가뭄의 단비와도 같은 소득원이 됩니다. 그러나 상담하다 보면 고령 노동자들이 하나 같이 공공일자리에서 보람을 느끼기 어렵다 하소연합니다.

정부 주도의 공공일자리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합니다. 2021년 통계청의 '고령자 통계' 조사에 따르면 고령 노동자들은 일터로 나가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일하는 즐거움을 느끼고 싶어서"라고 답하며 경제적 이유만큼이나 자아실현 욕구를 중시했습니다.

이러한 고령 노동자의 욕구를 존중해 단기적으로 저임금·불안정 일자리로 이들을 몰아넣기보다는 스스로 직업탐색을 유도해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역설적이지만 구직 지원 프로그램에서 '가장 늦은 나이에 정말 내가 원하는 일이 어떤 것인지' 사색하는 시간을 마련해 줘야 합니다. 지역의 근로자복지관 등을 중심으로 고령 노동자들에게 새로운 노동환경에 대해 이해시키고 이들의 욕구를 탐색하여 정부에 고령자 친화적 일자리의 모델을 제시하면 좋겠습니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