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국무총리가 지난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31차 사회보장위원회에 참석해 회의 의제를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연령, 소득, 가족 상황 등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은 돌봄이 필요하다는 사회서비스 공공성의 근본적 원칙과 방향을 천명한 것이라면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대상이 확대되는 과정에서 나타날 부작용을 충분히 고려했는지 의문이다. 재정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거나 질 좋은 서비스 접근이 실질적으로 보장되는 전달체계가 구축되지 않으면 이용자가 체감할 만큼 서비스가 확충되었다고 느끼기 어렵다. 사업을 몇 개소, 몇 명에서 좀 더 확대하겠다는 계획 말고는, 서비스 접근의 권리와 대상 확대에 필요한 재정을 확보할 법적 근거나 전달 체계를 구축하겠다는 말은 없다.
대신에 정부는 전 국민으로 서비스 제공 대상을 확대하면서 재정 부담 가중을 서비스 이용료의 자부담을 확대하여 해소하려는 것 같다. 나는 서비스 무상 제공이 공공성 강화와 동일한 의미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수용할 만한 수준의 질 좋은 공공 서비스에 접근할 수만 있다면 자부담도 공공성 강화에 어긋나는 방향은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본인 부담 차등화가 자칫 서비스 전반의 시장 가격 상승과 품질 차등화로 이어질까 걱정이다.
돌봄 서비스는 그 특성상 가격과 품질의 연계가 뚜렷하지 않다. 가격이 올라갔다고 해서 품질이 올라가리란 보장이 없다는 뜻이다. 돌봄 서비스의 투입과 산출을 측정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이용자는 실제로 돌봄 서비스를 받기 전에는 돌봄 노동자가 얼마나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지, 어떤 내용의 서비스를 구매했는지 알 수 없다. 공급자가 노동자의 서비스 제공 행위를 쉽게 감독할 수도 없다. 따라서 이용자가 가격을 더 지불한다고 해서 서비스의 질이 올라갔음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근거가 없다. 이럴 경우 공급자는 '눈에 보이는' 품질의 차이에 집착할 가능성이 크며 고가의 설비와 장비 투자에만 열을 올릴 것이다.
정부는 품질평가 지표를 이용자 만족도와 정성 평가 등 이용자 중심으로 개선하여 질 좋은 서비스를 보장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이용자의 만족도로 품질을 온전히 평가할 수 있을까. 이용자를 기분 좋게 만드는 것이 가장 좋은 돌봄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돌봄 노동자가 하는 일이 이용자의 단기적 편안함만을 목적으로 하지는 않는다. 장기적으로 도움이 될 일을 받아들이게끔 단기적으로 이용자와 실랑이를 벌이고 그 과정에서 이용자의 기분이 상하는 경우도 많다.
정부는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품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이용자의 서비스 선택권을 보장하겠다고 한다. 이를 위해 양질의 기관을 육성하고, 역량 있는 공급자의 진입을 촉진하고, 소수 공급자의 부정적인 영향을 방지하겠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정부는 시장에 역량 있는 공급자가 진입을 못 했고 공급자가 적어서 이용자의 선택지가 별로 없는 것이 낮은 서비스 품질의 원인이라고 보고 있다.
사회서비스원법에서 강조하는 공공성 강화는 사회서비스 공급 구조의 민간시장 의존이 야기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보건복지부가 실시한 '2022년 사회서비스 공급 실태조사'에 따르면 사회복지서비스업에 해당하는 3500여 개 사업체 중 종사자 규모가 10인 미만인 소규모 사업체가 절반 이상인 59.4%이었고, 그중 개인사업체가 54.7%를 차지했다. 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답한 사업체는 48.9%였다.
영세 공급자의 시장 진입 문턱을 낮춰 과당 경쟁을 방치한 것은 정작 정부였다. 공급자는 돌봄 인력을 구하기 어렵다고 아우성치고, 돌봄 노동자는 안정적으로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워 생계 불안에 시달리고, 이용자는 필요한 양질의 돌봄을 제때 구하지 못했다.
형식적이고 실효성 없는 품질 평가로 부실 공급자를 퇴출시키지 못했던 정부는 서비스 질 제고를 핑계로 금융자본이 사회서비스 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서 지역사회 소규모 공급기관을 퇴출시키는 역할을 맡기려 한다. 전국 체인망을 갖춘 대기업 공급자가 영세 공급업자들을 밀어내고 자리를 차지해 독과점이 된다면 이용자 선택권을 보장할 수 있을까.
사회서비스 시장에서 소비자 주권은 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