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는 여론조사 등을 거쳐 올 하반기에 외국인 가사노동자 시범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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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지난해 9월 오세훈 서울시장이 국무회의에서 제안하고, 올해 3월 조정훈 의원이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면서 논의가 촉발되었고, 지난 5월 윤석열 대통령이 도입 검토 지시를 내리면서 본격화됐다.
문제는 정책 제안자들이 모두 홍콩이나 싱가포르의 제도를 벤치마크 대상으로 언급하며 저임금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오세훈 시장은 "한국에서 육아도우미를 고용하려면 월 200만~300만 원이 드는데 싱가포르의 외국인 가사도우미는 월 38만~76만 원 수준"이라며 저출생 해결을 위해 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조정훈 의원도 외국인 가사도우미 법안을 발의하면서 최저임금 적용을 없앤 월 100만 원의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활용하여 경력 단절과 저출산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밝혔다.
같은 선상에서 지난 5월 23일 윤석열 대통령은 국무회의 비공개 발언에서 "싱가포르 등에서 채택하고 있는 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을 적극 검토하라"고 관계부처에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고용노동부는 여론조사 등을 거쳐 올 하반기에 외국인 가사노동자 시범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정책 추진자들의 진단과 해법은 단순하다. 현재 육아와 가사부담 때문에 여성 노동자들이 일·가정 양립을 하기 힘드니 저임금의 외국인 육아·가사도우미를 도입하여 경력 단절과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며, 이를 위해 최저임금법을 적용받지 않는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고용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글로벌 인권과 노동 기준의 척도에서 보면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고 국내 노동자들보다 터무니없이 낮은 임금을 지급하겠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이고 반인권적인 차별 조치이다.
이는 "인종, 피부색, 성, 언어, 종교, 정치적 또는 기타의 의견, 민족적 또는 사회적 출신, 재산, 출생 또는 기타의 신분 등에 의한 어떤 차별도 없이 모든 사람의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UN의 세계인권선언, 국제인권조약과 국제연합 헌장의 내용을 무시하는 것임은 물론이고 차별 철폐와 균등 대우를 명시하고 있는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110호를 위반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ILO 핵심협약 110호를 비준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근로기준법 제6조에서 성, 국적, 신앙 또는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한 근로조건에 대한 차별적 처우를 금지하고 있다.
노골적인 반인권적 차별 행위
ESG(Environment, Social, Governance) 경영이 강조되고 있는 오늘날에는 노동권 준수, 차별 금지와 균등 대우가 사회(S) 지표의 핵심이라는 점도 간과하면 안 될 것이다. 싱가포르와 홍콩이 저임금의 외국인 육아·가사도우미를 도입한 시점은 인권과 차별 감수성이 낮은 1970년대였다. 우리는 인권과 노동권 기준이 글로벌 스탠다드인 시대에 살고 있다. 이와 같은 기준에서 보자면 최저임금 적용을 제외한 저임금의 외국인 가사도우미 제도를 도입하자는 것은 국제 규범을 무시하고, ILO의 기본협약과 근로기준법을 위반하자는 노골적인 반인권적 차별 행위이지 않은가.
2023년 5월 25일 고용노동부 주최로 개최된 외국인 가사근로자 관련 공개토론회에서도 이와 같은 우려가 제기되었다. 발제자로 나선 조혁진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비교적 최근 제도를 도입한 일본의 경우 노동인권에 대한 국제 기준을 반영해 내국인과의 임금차별을 금지했다"고 밝혔다.
특히 가구 내 노동이라는 특성상 육아·가사노동자들은 인격 모독과 부당한 대우, 성희롱, 성폭력 등에 노출될 위험이 크기 때문에 더더욱 인권침해와 차별로부터 노동자들을 보호해야 할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절실할 것이다. 그와 같은 기준을 면밀히 검토하여 마련하기도 전에 저임금 반값 노동부터 내세우는 것은 결국 외국인 가사노동자들을 인권과 존엄의 사각지대로 내몰자는 것이나 다름없다.
국내에 고용된 이주노동자들의 차별에 대한 항의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지난 2021년에는 여성가족부 산하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소속 여성 이주노동자들이 임금 체계와 승진 기회에서 차별을 겪고 있다며 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들은 이주민을 값싼 노동력으로 착취하는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차별에 항의하며 다른 센터 직원들과 동등하게 처우해줄 것을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