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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트넘 홋스퍼 선수단, 그 중에서도 에릭 다이어는 한국에서 최고의 시간을 보냈다. K리그 정예 선수단이 모인 팀K리그와의 이벤트 경기에서 끝내주는 중거리슛으로 선제골을 넣었기 때문이다. 가히 예술적이란 표현이 어울리는 이 골을 보고 있자면 에릭 다이어는 어쩌면 예술적인 선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반쯤은 농이지만 반은 진실이다. 다이어는 예술을 이해하는 사람이다. 세계에서 미술을 가장 대접하는 도시인 런던에서 선수생활을 해온 다이어는 방문하는 도시마다 가능하면 미술관을 찾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번 내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가까이 지내는 맷 도허티와 함께 서울의 한 미술관을 찾았는데 그것이 알려지며 해당 전시가 깨나 화제를 모았다.

다이어가 방문한 미술관은 경복궁 인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이고, 그가 찾은 전시는 그곳에서 8월 7일까지 진행하는 '나너의 기억' 전이다.
 
나너의 기억 포스터
▲ 나너의 기억 포스터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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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미술가에게 기억이란?

국립현대미술관 지하1층 제5전시실에서 진행 중인 '나너의 기억'은 기억이라는 대주제로 엮을 수 있는 국내외 현대미술가들의 작품들을 모아둔 전시다. 무엇을, 어떻게, 그리고 왜 기억하는지를 두고서 각자의 방식으로 다종다양한 표현을 해보는 이로 하여금 색다른 감상을 갖도록 한다.

다이어가 사진을 찍어 유명세를 치른 홍순명 작가의 <비스듬한 기억-역설과 연대>를 비롯해 13점의 작품이 전시됐다. 조형물과 영상, 비디오아트 등 다양한 작품들이 즉각적이거나 깊이 있는 인상을 남긴다.

전시 초반에 만나는 명망 높은 앤디 워홀의 <수면>은 대다수 관람객에게 당혹스러움을 안기기 십상이지만, 이후 이어지는 작품들은 전시의 의도와 작가의 다채로운 표현력을 생각하게끔 이끈다.
 
피곤은 언제나 꿈과 함께 작품사진
▲ 피곤은 언제나 꿈과 함께 작품사진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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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이를 사로잡는 작품들, 또 하나의 기억될까

양정욱의 <피곤은 언제나 꿈과 함께>는 뮌의 <오디오토리움>, 박혜수의 <기쁜 우리 젊은 날> 등과 함께 관람객들에게 가장 큰 관심을 받는 작품이다.

작가는 어느 날 찾은 편의점에서 점원이 꾸벅꾸벅 조는 모습을 본 뒤 작품의 영감을 얻었다고 떠올린다. 새벽 편의점에서 피로한 점원이 조는 모습이 작가의 기억을 거쳐 독특한 기계 형태의 조형물로 태어난 것이다. 설명을 듣고 보면 정말 피곤한 점원과 그를 본 날의 기억이 읽히는 듯도 한 이 작품은 전시에서 가장 뜨거운 인기를 누리고 있다.

뮌의 <오디오토리움>도 특별한 관심을 받는다. 김민선과 최문선, 부부사이인 두 현대미술가들이 결성한 예술가 뮌의 작품으로, 여러 문화공간에 놓아둘 공공예술품들을 꾸준히 만들어온 이들에게도 대표작이라 불릴 만한 것이다.

세로로 높이 솟은 다섯 개의 진열장을 반원형태로 배치한 뒤 각각 안에 다양한 물건들을 놓아둔 거대한 작품이다. 장난감이며 인형처럼도 보이는 다양한 물건들이 보는 이의 옛 기억들을 떠올리게 하는 매개로 보이며, 빛과 그림자가 굴절돼 빚어내는 독특한 모습이 미학적으로도 흥미롭다.
 
오디오토리움 작품사진
▲ 오디오토리움 작품사진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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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된 첫사랑, 작품이 된 기억

박혜수의 <기쁜 우리 젊은 날>은 어디서나 인기가 좋은 첫사랑이 주제다. 세대와 장소를 초월해 한국 공업단지 노동자 21명의 첫사랑을 인터뷰해 얻은 결과물로 영상을 찍고 그림을 그렸다. 기억이란 왜곡되게 마련이지만 감정의 기억은, 그중에서도 사랑의 기억은 날조되고 덧칠되며 미화되고 보정되어 더욱 격렬하게 왜곡되기 십상이다. 그러나 그 왜곡조차 때로는 기억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드니 누군가는 그로부터 일상을 살아갈 힘을 얻기도 하는 것이다.

25분짜리 영상 속에서 노동자들은 각자의 첫사랑을 아련하게, 유쾌하게, 세심하게, 슬프게, 즐겁게 떠올린다.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첫사랑이 꼭 하나씩은 있는 것, 모양은 서로 달라도 모두에게 소중한 기억이다. 관람객은 그 기억을 훔쳐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고, 영상이 끝난 뒤 그 기억에서 태어난 그림을 보며 또 다른 감상을 갖기도 한다.

에릭 다이어와 맷 도허티가 한국에서 선택한 곳,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나너의 기억' 전시는 그렇게 오늘도 사람들과 만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시민기자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나너의 기억#토트넘#에릭 다이어#맷 도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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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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