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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가장 재밌었던 부분은 "아빠 개 고생 내가 꿀 빤다"였다. 이 부분을 읽을 때, 마치 동물원에서 꿀통을 들고 있는 판다곰 한 마리가 생각났다. 물론 옆에서 애잔하게 딸 곰을 보는 아빠 곰도 연상됐다.

아빠 곰의 '개 고생'은 1983년 대학에 들어가면서 시작됐다. 할아버지가 좌파 청년들에게 무참히 돌아가신 경북 예천 출신 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난 필자 한석호가 대학에 간 게 이 해다. 가족의 역사라면 당연히 꼴통보수가 되도 시원치 않을 판에 그는 전태일 열사의 가슴을 달고 활동가가 됐다.

이후 좌파 군단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민주노총에서 그 긴 시간 일이 생길 때마다 가장 빨리 달려가는 '발이 바쁜 사람'(이광호 曰)으로 활동했다고 한다. 이 신난한 삶을 살았던 한석호의 책 <누리야 아빠랑 산에 가자>(레디앙 간)는 박근혜 정부 속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대학을 준비하는 딸 누리(실명 한수민)와의 긴 산행과 입시 여정 이야기다.

 <누리야 아빠랑 산에 가자>민주노총 한석호 사회연대위원장의 가난하지만 아름다운 딸 대학입시 동행기다.
 <누리야 아빠랑 산에 가자>민주노총 한석호 사회연대위원장의 가난하지만 아름다운 딸 대학입시 동행기다.
ⓒ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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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 책의 씨줄은 저자 한석호와 딸 수민의 입시 준비다. 네 가족 생활비 대기도 힘든 사회 활동가의 부족한 수입으로 흔한 영어, 수학 과외를 생각하기는 쉽지 않았다.

결국 주변 활동가들을 통해 알음알음으로 동냥과외를 받으면서 험난한 고등학교 과정을 거쳐 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예민한 여고생의 감성과 지친 일정은 필자의 매운 삶과 만나면서 적지 않은 불꽃이 튀긴다.

하지만 곡직한 아버지의 마음이 수민이를 벗어날 수 없다. 차츰 성적도 올라가고 안정도 찾으면서 대한민국 입시에 적응하고, 수민이 희망하던 학교에도 입학하는데 성공한다.

특히 이 과정에서 한석호의 민주화 운동 경력이 '사회기여자 전형'으로 적용되어 수민이가 대학을 지원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 때 "아빠 개 고생 내가 꿀 빤다"라는 말이 나오게 된다.

이 책이 흥미롭게 읽힌 것은 나 역시 곧 다가오는 아이의 대학입시를 앞두고 있어서다. 우리 때랑은 완전히 다른 아이의 대입 준비에 적잖은 도움을 받았다. 요즘은 '할아버지의 경제적 능력, 엄마의 열성, 아빠의 무관심'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정작 아이의 대학입시는 자식을 아끼는 부모의 열정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이 책은 보여준다.

이 책의 날줄은 부녀의 산행 이야기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필자는 아이에게 산행을 권유하고, 아이도 받아들여 자연스럽게 등산을 같이 한다. 2013년 시작된 산행의 주된 무대는 북한산과 도봉산이다. 서울의 인근에 있지만 두 산은 다양한 위험요소까지 안고 있는 명산이다.

이 부녀는 평범한 코스에서 산악인들 부담스러운 코스 등까지 경험하며, 산을 통해 호흡과 기운을 가다듬는다. 물론 수민이 고3이 되는 2015년에는 그다지 큰 산행은 피하고, 입시의 깔딱고개를 넘기 위해 힘든 고역을 치르는 이야기가 잘 나와 있다.

380페이지의 적지 않은 두께를 가진 이 책은 그냥 편하게 읽히지 않는다. 하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꼭 공감해야 할 사회 역사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도 이 책은 도드라진다. 저자는 민주노총에서 부위원장이나 사회연대위원장 같은 일을 하지만, 세월호 사건이나 전태일재단 등 이 사회 필요한 공간에서 가장 앞장 서서 나선 활동가다.

한 사람의 삶이든, 가족의 생활이든, 조직의 운영이든 모든 것은 생명을 갖고 있다. 인간의 발전이란 이런 관계 속에서 한 고비를 넘어 성장해가는 것이다. 필자 한석호는 그런 점에서 딸과의 여정을 통해 부모 자식간의 아름다운 룰을 발견한다.

필자는 아이 고등학교 여정을 통해 "자식을 아이로 남기면, 자식은 부모 인생의 의무고 짐이 된다. 벗으로 세우면, 든든한 동반자가 된다. 자식을 부모의 판단과 지시로 움직이는 객체로 취급하면, 진심을 얻지 못한다.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주체로 존중하면, 자식은 진심을 줄 뿐 아니라 부모의 진심까지 알아준다. 직접 체험하며 깨달았다"고 말한다.

국정농단을 보면서 절망했던 우리는 촛불시위를 통해서 이 사회가 다시 회복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희망을 찾았다. 이런 활동의 이면에는 수많은 활동가의 노력이 같이 한다. 물론 활동가들의 노력이 전적으로 촛불집회와 같은 열기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이런 활동가들이 있고, 그들의 아이들이 자존감 있게 자랄 수 있다면 그래도 희망은 더 길게 오래 지속될 수 있을 거라는 확신도 들었다.

덧붙이는 글 | <누리야 아빠랑 산에가자 / 한석호 지음/레디앙 간/15000원>



누리야, 아빠랑 산에 가자 - 고교생 딸과 함께한 입시산행 3년

한석호 지음, 레디앙(2017)


#한석호#민주노총#대학입시#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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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이아이테크놀로지 상무. 저서 <삶이 고달프면 헤세를 만나라>, <신중년이 온다>, <노마드 라이프>, <달콤한 중국> 등 17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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