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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캠의 밤 별들이 밤새 히말라야 마차푸차례로 쏟아지고 있다.
▲ 오캠의 밤 별들이 밤새 히말라야 마차푸차례로 쏟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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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짐을 꾸려 오스트레일리아 캠프(일명 오캠)로 나섰다. 오캠은 캠핑을 하거나 난방이 되지 않는 산장에서 야영을 하며 설산을 가까이 볼 수 있는 곳이다. 덜컹거리는 시골길을 두 시간 정도 달려 오캠 입구인 까레라는 곳에 도착했다. 목적지를 물어보니 산 하나는 넘어야 했다. 포터에게 짐을 맡기고 카메라만 달랑 들고 산행을 시작했다.

이마에 땀이 나도록 한참을 걸어 올랐다. 산 중턱에 이르자 반갑게도 집 하나가 쓱 나타났다. 마루가 달려 있는 민가였는데, 얼핏 보아도 쉬어가기 딱 좋은 곳이었다. 실례를 무릅쓰고 들어가 보았다. 잘 생겨 보이는 아버지와 아들이 기다렸다는 듯 편안하게 맞아준다. 그들의 표정에는 여유가 있었다. 오랜 경험으로 나그네의 마음을 잘 헤아리고 있는 듯 했다. 마루에 삐쭉 걸터앉아 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더 바랄 것도 없는 최고의 휴식처였다. 사람도 풍경도 최고였다.

드디어 산을 넘었다. 산길을 걸어올라 오며 내내 산 너머 풍경이 무척 궁금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고개를 더 넘어야 하나 아니면 바로 산마루에 근사한 캠핑장이 나타날 것인가?  다행히 더 걷는 수고로움은 없었다. 넓은 마당이 달린 캠핑장과 눈부신 설산이 일어나서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산마루에 올라서서 마주하는 풍경은 가히 압권이었다.

무엇을 먼저 보아야 할지 또 마음이 분주해졌다. 먼저 짐을 숙소에 풀어놓고 사방을 살폈다. 흰옷을 걸친 마차푸차레와 안나푸르나 설산이  마치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와 있다. 말로만 듣던 히말라야 설산을 코앞에서 보게 되니 흥분을 주체할 수 없다. 마차푸차레는 알프스 "마터호른"과 흡사하게 생겼고, 안나푸르나는 큰 형님처럼 듬직한 모습으로 오캠의 풍경을 압도하고 있었다. 

얼른 저녁을 먹고 밖으로 나와 하늘을 보았다. 설산은 어느새 별 빛 속에 몸을 감추었고, 난생 처음 보는 은하수는 눈앞에 그림같이 펼쳐졌다. 얼마나 눈이 부시던지, 처음 보는 황홀함에 마음을 모두 빼앗기고 말았다. 이 멋진 풍경을 그냥 볼 수가 없어 카메라 셔터를 길게 눌렀다. 그러자 은하수가 총총 박혀 그대로 들어왔다.

은하수 오캠의 밤하늘에 은하수가 밤새  펼쳐져 있었다.
▲ 은하수 오캠의 밤하늘에 은하수가 밤새 펼쳐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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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헤아리는 밤, 일출로 분주한 아침

달빛에 비치는 설산도 비경이지만, 오캠의 밤하늘에 펼쳐진 은하수는 환상 그 자체였다. 어릴 적 시골에서 멍석을 깔고 바라보던 밤하늘이 작은 읍이었다면 이곳에서 바라본 하늘은 인구 천만이 넘는 대도시였다.

그렇게 별을 헤아리며 밤을 새우고, 오캠에서 맞이한 아침은 멋진 설산의 풍경과 일출로 인해 더 분주했다. 파란 하늘을 화폭삼아 흰 구름이 쉼 없이 설산으로 날아들고, 태양은 어둠을 지워가며 히말라야 너머로 서서히 떠오르고 있었다.
   
어느 것을 사진에 담아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주저 없이 설산을 향해 카메라를 세웠다. 일출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히말라야의 풍경은 어디서 쉬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다행히 마차푸차레와 안나푸르나는 실망시키지 않고 아침 내내 멋진 모델이 되어 주었다.

오캠에서 오전을 보내고 오전 11시가 넘어, 산 아래 마을 담푸스로 향했다. 길은 험하지 않았고 오솔길처럼 편안했다. 그림 같은 히말라야 설산을 왼편에 두고 한 적한 산길을 걷는 느낌은 천상으로 가는 길처럼 평화로웠다. 특히 맑은 햇빛과 툭 터진 산 아래 풍경은 마음을 시원히 열어 주었고, 시시각각으로 바뀌는 히말라야 설산은 길을 지루하지 않게 해 주었다. 또한 산중호수에서 비친 히말라야의 설산은, 내 얼굴을 호수에 빠트리게 하고 말았다.

담푸스 마을에 이르자 마을 입구에 또 하나의 작은 호수가 히말라야를 빠트려 놓고 기다리고 있다. 잔잔한 호수는 거울이 되어 마차푸차레를 거꾸로 매달아 놓았다. 거꾸로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담푸스 마을  마을입구 호수에 희말라야 설산이 빠져 있다.
▲ 담푸스 마을 마을입구 호수에 희말라야 설산이 빠져 있다.
ⓒ 임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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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푸스 마을은 산 중턱을 따라 옆으로 길게 늘어 서 있었다. 학교도 있고 제법 큰 마을이었다. 숙소 근처에 이르자 마을 한가운데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호기심에 내려가 보았다. 한 민가에서 많은 사람이 모인 가운데 잔치가 열리고 있었다. 마당 한 구석에는 커다란 솥을 걸어 놓고 무언가를 끊이고 있고, 사람들은 마당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다.

그들은 음식을 나누어 먹은 뒤, 춤과 노래로 한 바탕 놀기를 시작했다. 그들의 전통 민요에 맞춰 춤을 추는데. 그냥 막춤이 아니다. 손동작 몸짓하나가 멋스럽고 세련되었다. 오후 내내 쉬지도 않고 해가 넘어갈 때 까지 흥겹게 춤을 추고 또 추웠다. 음악은 곡조가 슬프면서도 흥이 있었다. 네팔의 아리랑이라 할까! 네팔 사람들도 음주 가무를 무척이나 좋아하고 있었다.     

담푸스에서 바라보는 히말라야 설산의 풍경은 또 달랐다. 마차푸차레가 근육질의 몸을 자랑하듯 드러낸다. 어제보다 더 크고 잘 생겼다. 한 조각의 구름도 걸치지 않고 설산의 속살을 그대로 보여 준다.

담푸스 마을에 밤이 되자 또 별들이 무수히 쏟아진다. 어제처럼 은하수가 하늘을 온 통 뒤덮었다. 은하수는 큰 독수리가 날아가는 모습으로 밤하늘 풍경으로는 단연 최고였다. 다른 별자리들은 은하수에 묻혀 존재감이 없었다.

다음날 아침 학생들이 등교하는 길을 따라 마을 속으로 들어가 보았다. 마을을 이어주는 신작로는 차가 교행 할 만큼 넓었다. 차가 한번 지나갈 때 마다 먼지 속에 갇혀 숨을 한참을 멈춰야만 했다. 길가에 사는 아주머니가 열심히 물을 뿌려 보지만 길 먼지는 쉽게 없어지지 않았다.

어제와 달리 오늘은 설산을 오른편에 두고 마을길을 걸어 보았다. 길 아래 가까운 곳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반가움에 얼른 내려가 보았다. 할아버지가 지켜보는 가운데 아이들이 신나게 공놀이를 하고 있다. 그들은 낯선 나를 보고 한참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마스떼"하고 인사를 건네자 "씩" 웃어 보이며  다시 공을 차기 시작한다.

아이들 담푸스마을  어느 민가에서 아이들이 신나게 공을 차고 있다
▲ 아이들 담푸스마을 어느 민가에서 아이들이 신나게 공을 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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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담푸스 마을에 히말라야 설산을 배경으로 있는 학교
▲ 학교 담푸스 마을에 히말라야 설산을 배경으로 있는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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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의 마을, 이런 곳이다

아이들은 공을 "마차푸차레"에 걸릴 만큼 높이 차올리기도 하고, 메시처럼 멋진 드리블도 해 본다. 마치 어릴 때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한참을 앉아 지켜보았다. 할아버지가 손자들을 바라보는 모습이 그렇게 흐뭇해 보일 수가 없었다. 할아버지가 손자를 사랑하는 마음은 어디나 똑 같다.

히말라야 산들이 그림같이 보이는 집 마당에서 맘 놓고 신나게 공을 차는 아이들을 만나니 천상의 세계가 따로 없었다. 바로 "담프스"가 천상의 마을이었다. 아름다운 자연과 해맑은 표정, 그리고 친절한 마음씨, 이 모두가 바로 천상의 모습이 아닐까!   

담프스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반디프르로 향했다. 반디프르는 포카라와 카트만두 사이에 있는 명소로 전망대에 오르면 히말라야 고봉 마나슬로 봉을 가까서 만날 수 있다. 산길을 돌고 돌아 한참을 올라갔다. 산 꼭 때기에는 눈에 믿기지 않을 만큼 큰 마을이 있었다.

저녁을 먹고 창문을 열어보았다. 마을의 불빛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화려한 불빛이 유혹을 한다. 무슨 행사가 있지 싶어 그곳을 따라 들어 가 보았다. 입구에 다다르자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 널따란 중앙로를 모두 돌로 깔아 놓았고, 그 길을 따라 큰 상점들이 줄지어 들어서 있다. 산악마을이 아니라 작은 도시였다.

길에 돌을 깔아 놓은 것을 보면 로마 같고, 이층 건물이 줄지어 서있는 것을 보면 미국 서부영화세트장에 와 있다. 상점, 카페는 물론 호텔도 있다. 이런 고지대에 도시라니 전혀 믿기지가 않는다. 도시 못 지 않는 화려한 거리를 보면서 의문이 일었다. 마을사람들의 애기를 들어보았다. 예전에 티벳과 인도 사람들이 이곳을 교역로로 이용하였는데. 그때 교역의 장소로 매우 번성했던 곳이라 한다.

반디푸르에서 하루 밤을 보내고 새벽 4시에  전망대로 나가보았다. 반디푸르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히말라야 설산 풍경은 또 달랐다. 산 아래로 운해가 바다처럼 깔리고, 그 위로 길게 늘어선 히말라야 산들이 가볍게 떠서 어디론가 유람할 채비를 하고 있었다. 마치 나를 따라 동방으로 갈 것처럼 말이다. 이 또한 비경이 아닐 수 없다.  한 참을 서서 말없이 지켜봐야 만 했다.

반디푸르 마을 중심을 이루는 번화가의 모습
▲ 반디푸르 마을 중심을 이루는 번화가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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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길지 않은 여정이지만 거대한 히말라야 설산의 풍경을 바라보며 자연의 위대함과 경이로움에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었고, 산비탈의 척박한 땅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는 그들의 행복한 모습에서 삶의 여유를 얻게 되어 참으로 귀한 시간이 되었다. 비록 가난하지만 욕심 부리지 않고 살아가는 그들의 소박한 삶을 통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다시 뒤돌아보게 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다음에 시간이 허락된다면 산골마을로 더 깊숙이 들어가 그들의 삶을 온전히 체험하며 그들의 소박한 삶의 세계에 푹 빠져 보고 싶다.


#담프스#반디푸르#오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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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을 다니며 만나고 느껴지는 숨결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 가족여행을 즐겨 하며 앞으로 독자들과 공감하는 기사를 작성하여 기고할 생각입니다.

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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