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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현숙 개인전 허 작가와 <도시계획>
▲ 허현숙 개인전 허 작가와 <도시계획>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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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계획>.
 <도시계획>.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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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현숙(29) 작가의 작품을 보다보면 과거로 돌아가는 것만 같다. 이합장지에 4B연필로 빼곡하게 채워넣은 공간의 모습을 보면 지금은 사라져버린 70년대의 도시 한 구석을 바라보는 것만 같다.

허 작가의 작품은 사람들의 주거공간으로 채워져있다. 그 안에는 기와지붕과 슬레이트지붕의 집들, 지붕을 덮은 천막과 거기에 올려진 돌덩이들이 있다. 오래 전에 뛰어 놀았던 놀이터가 있고 놀이터 한 쪽에는 폐타이어가 박혀있다. 집 한쪽에는 장독대가 있고 고무대야와 에어컨 실외기 등도 놓여있다.

대신에 '주거공간'하면 떠오르는 두 가지, 아파트와 사람이 없다. 오직 주택과 사물뿐. 허 작가의 개인전이 방배동 갤러리토스트(www.gallerytoast.com, 관장 이도영)에서 <도시계획>이라는 제목으로 열리고 있다. 작품 속 공간의 주소는 '서울시 가상구 쑥로 1길'이다.

'쑥로'는 허현숙 작가의 이름 마지막 글자에서 따온 것이다. 관객은 이 그림들을 보면서 현실과 다른 도시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지난 1일 토요일 오후 갤러리 토스트에서 허 작가를 만나보았다. 전시장 안에는 연필로 그린 색다른 도시의 그림 30여 점이 전시되고 있다.

"제가 어렸을 때 살던 곳들이 점점 없어지니까, 그런 것이 안타까워서 그리기 시작했어요. 원래 제가 일반적인 풍경화 그리는 것을 좋아했었는데 어떤 일을 계기로 그림이 바뀌게 되었어요. 예전에 6개월 동안에 친척들 상(喪)을 4차례 치른 적이 있어요. 그런 일을 겪으면서 어린 시절에 좋았던 추억들을 다시 생각하게 되고, 그때로 돌아가고 싶고 그런거에요. 그렇게 과거에 제가 뛰어놀았던 곳을 가상의 도시로 만든거죠."

광활하고 빽빽한 도시의 모습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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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계획>.
 <도시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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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속에 아파트가 없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어렸을 때 주택에서 살았던 허 작가는 할아버지의 아파트를 방문했을 때의 안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 현관의 잠금장치가 망가졌는지 현관문이 열리지 않아서 그 안에서 나오지 못하게 된 것.

"단독주택이라면 그 안에 갇힐 일은 없거든요. 창문을 통해서건 어떻게 해서건 밖으로 나올 수 있으니까요. 대신에 아파트는 현관문이 잠기면서 외부와 단절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단절의 느낌이 싫었던 거죠. 그리고 제가 어린 시절에 살던 상계동에 당시에는 아파트가 없었어요. 단독주택이나 빌라들이었죠. 그러다가 개발이 일어나면서 예전 주택들이 없어지고 아파트가 들어선 거에요. 저는 작품 속에서 당시의 모습을, 아파트는 전부 빼고 그린거에요"

<도시계획> 속 집들의 모습은 다소 비현실적이다. 수많은 집들이 얽히고 설키고 포개어져 있다. 마치 한 무더기를 이루고 있는 것만 같다. 하나의 거대한 성처럼 보일 수도 있다. 대신에 그 안에 사람은 없다. 여기에도 허 작가의 가치관이 담겨 있다.

"집을 하나의 사람으로 보았어요. 옛날에는 옆집하고 친하게 지냈잖아요. 우리집에 부모님이 안 계셔도 옆집에 가서 밥을 먹을 수 있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요즘에는 사실 그럴 수가 없잖아요. 제 그림에서 집들이 모여 있는 게 어떻게 보면 답답하다고 볼 수도 있는데, 저한테는 이렇게 옹기종기 모여있는 모습이 자연스럽고 편안한 거에요. 제가 도시에서 태어나서 그런지 응집된 모습이 좋은 거에요. 이 안에서 제가 보호를 받고 있다는 느낌도 들 수 있구요."

전시된 작품 중에는 <올바른 합집합>이라는 제목의 그림이 있다. 역시 많은 주택과 놀이터, 버려진 공사자재 등이 함께 모여있는 그림이다. 그렇게 모여있는 것을 허 작가는 '올바른 합집합'이라고 보았던 것.

"올바르다. 제가 원하는 모든 건물들이 다 들어가 있는, 아름다운 하나의 공간이라는 거죠. 교집합이라고 하면 빠지는 부분들이 있는데, 그럼 빠지는 부분들이 너무 아쉽잖아요. 누구하나 뒤처지는 경우 없이, 모두가 평등하게 모여있는 공간. 그게 올바른 합집합인 거죠."

작가가 들려주는 어린 시절의 이야기

 <도시계획>.
 <도시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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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작가는 일반 문방구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연필로 작업을 한다. 연필로 무언가를 그리다보면 '잘못되면 지우개로 지우면 되지'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허 작가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장지'라는 용지의 특성상 지우개질을 하면 용지가 파손되거나 변형되기 때문에 지우개는 사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허 작가는 그림을 그리다 한 번 실수를 하면 그 용지는 폐기해 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작업이 아닐 수 없다. 연필, 즉 흑연의 가장 큰 장점은 보존성에 있다. 흑연은 가장 천연에 가까운 재료이면서 동시에 보존성이 뛰어나다. 일반물감이나 잉크로 그린 그림보다 흑연을 사용한 작품이 훨씬 더 오랫동안 유지된다. 흑연도 오래가고 사람의 기억도 오래가는 법이다.

허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굳이 해석해서 관객에게 들려주려고 하지 않는다. 예술작품은 보는 사람에 따라서 수많은 해석을 만들어낼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회는 오는 13일까지 열린다.

"그림에 대한 해석을 작가가 주면 재미 없다고 생각해요. 보는 분들의 관점에 따라, 생각에 따라 상상하면서 즐거움을 느끼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제 작품에 대해서 일일이 설명을 했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렇지 않게 되더라고요. '이건 어떤 의도로 그렸어요?'라고 누가 물어보면, '보시는 관점에 따라서 달라요'라는 식으로 답을 하게 되요. 그럼 이후에도 그 작품에 대해서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올바른 합집합>.
 <올바른 합집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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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허현숙 개인전 - 도시계획
2014. 10. 25. - 11. 13
갤러리토스트 서울시 서초구 방배로42길 46 3층
월요일 휴관, 화-금 11시-18시, 일,공휴일 13시-18시
문의 02 532 6460



#허현숙#도시계획#갤러리토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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