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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가 통합진보당(이하 진보당) 해산을 위해 칼을 뽑아들었다. 정부가 나서서 국회 제3당의 해산을 요구하는 대한민국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앞뒤 안 맞는 진보당 해산심판청구 이유

법무부 장관, 통합진보당 해산안 발표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통합진보당 해산안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 법무부 장관, 통합진보당 해산안 발표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통합진보당 해산안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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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밝힌 진보당 해산 심판 청구 이유는 강령에 있는 '노동자 농민 민중이 주인되는 세상'은 헌법의 국민주권 위반이며, '주한미군철수, 국가보안법 폐지, 6.15공동선언 실천'은 북조선노동당의 주장과 동일하며,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은 북한식 사회주의 정권 수립을 의미하는 것이며, '국가 기간산업 국유화와 소유구조 다양화'는 김일성이 말한 진보적 민주주의이기 때문이란다.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일하는 사람(노동자 농민)이 주인되는 세상'이라는 문구는 2001년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트레이드 마크처럼 사용한 문구다. 왜 그것이 2013년에 와서야  갑자기 국민주권에 대한 부정이 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그럼 우리 헌법에서 말하는 국민주권은 노동자 농민은 세상의 주인이 아니라 '노예 아니면 종'으로 살아야 한단 뜻이라는 말인가?

주한미군 철수 주장이나 국가보안법 폐지 주장이 위헌이라는 주장은 더 황당하다. 우리 헌법 어디에도 주한미군의 주둔 자체에 관한 규정이 없으며, 국가보안법 역시 헌법 위의 법이 아니다. 주한미군의 철수 주장은 백범 김구 선생도 주장했던 내용이고, 국가보안법 폐지는 노무현 대통령이 정부차원에서 추진한 사안이다. 그러면 김구 선생이나 노무현 대통령도 위헌 세력이란 말인가? 국가보안법 폐지는 민주당의 전신인 열린우리당의 당론이었고, 유엔이나 미국 국무부조차도 수 차례 폐지 또는 개정을 권고한 바 있다. 그럼 이들도 위헌세력이라고 해야 맞다.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 강령이 북한식 사회주의 정권 수립을 주장하는 것이라면 그럼 현재 박근혜 정부는 '예속적 독재정부 수립'을 목표로 하는 정권이라고 스스로 인정하는 것인지 되묻고 싶다.

'국가 기간산업 국공유화 등 생산수단의 소유구조 다원화'는 김일성이 1950년 말한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위헌이라는 주장 앞에서는 실소를 금할 수 없다.국가기간산업의 국공유화는 국민 대다수가 지지하는 정책이고,  헌법 제119조의 경제균형발전과 경제민주화 조항이 그 근거다.

우리 헌법이 대한민국의 법통이라고 명시하고 있는 상해임시정부의 건국강령(헌법)에도 광산, 전신, 교통, 수도 등 기간산업과 토지는 국공유화하도록 하고 있다. 토지의 경우는 아예 국유화해 매매와 상속도 금지하고 있다. 국가기간산업의 국공유화 주장이 위헌이라는 박근혜 정부의 논리라면 차라리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위헌이라고 우기는 편이 낫다.

어느 것 하나 이치에 맞는 것이 없다. 이런 주장을 어떻게 일국의 대통령부터 총리, 그리고 장관들이 함께 일사천리로 의결할 수 있는지 한심하기까지 하다.

박근혜 정부가 참고한 독일공산당 해산, 사실은....

박근혜 정부가 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 심판청구를 검토하면서 선례로 참고한 것이 1951년 독일 아데나워 정권의 독일공산당 해산 청구라고 알려지고 있다. 그런데, 정작 독일공산당 해산이 어떤 배경에서 나왔고, 그것으로 독일 민주주의가 얼마나 후퇴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돼 있지 않다. 비슷한 사례는 또 있다. 미국의 매카시즘 또한 반공이라는 미명하에 민주주의와 인권을 무참하게 짓밟았다.

독일과 우리나라는 위헌정당 해산제도가 도입된 배경 자체가 다르고, 그나마 독일사회에서는 공산당 해산이 독일 민주주의의 가장 부끄러운 장면 중의 하나임을 깨닫고, 공산당 재창당을 인정했다.

2차 세계대전 패전 후 독일(서독)은 나치즘의 발호를 막기 위해 '방어적 민주주의' 차원에서 1949년 위헌정당 심판제도를 도입했다. 이 제도에 의해 실제로 1952년 사회주의제국당 등 나치의 후예들이 해산되기도 했다.

이정희 대표 "정당 해산심판 전면무효"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와 시민사회단체 대표, 각계 원로들이 6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열린 '위헌적인 통합진보당 해산 청구 의결 전면무효 시민사회 긴급 기자회견'에 참석해 박근혜 정부의 정당 해산심판 청구를 규탄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이정희 대표 "정당 해산심판 전면무효"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와 시민사회단체 대표, 각계 원로들이 6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열린 '위헌적인 통합진보당 해산 청구 의결 전면무효 시민사회 긴급 기자회견'에 참석해 박근혜 정부의 정당 해산심판 청구를 규탄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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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1956년의 독일공산당 해산은 전혀 다른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해산 청구가 있었던 1951년은 한국전쟁을 기점으로 동서냉전이 본격화되던 시점으로 당시 미국의 필요에 의해서 아데나워 정권에서 서독의 재무장이 추진되고 있었다. 나치와 2차대전의 교훈으로 독일의 재무장에 대해서 가장 강하게 반대했던 정당은 독일공산당이었다. 독일공산당은 독일의 재무장을 반대하고, 평화협정체결을 주장하는 운동을 전국적으로 벌여나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독일연방재판소는 정당해산청구 5년만인 1956년 독일공산당을 위헌정당으로 선언하며 해산을 결정했다. 나치당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위헌정당 심판제도가 거꾸로 나치 부역자였던 정부측 법률대리인과 헌법재판관들에 의해 나치의 최대 피해자였던 정당을 해산하는데 이용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 것이다.

독일공산당 해산 후 독일재무장을 반대하는 모든 세력들에 대한 탄압이 시작됐다. 독일공산당과 관련됐다는 이유로 인쇄소와 출판사, 신문사가 폐쇄됐다. 공산당과 조금이라도 관련 혐의가 있는 운동가들은 모두 수사 대상에 올랐고, 이를 이유로 관련자들은 직장에서, 공직에서 쫓겨났으며, 연금수령권마저 제한 당했다.

노동조합, 농민단체, 여성운동 조직들, 소비자 운동단체들과 청소년 교류단체, 동서 스포츠 교류를 추진했던 스포츠 단체 등 수백개의 단체가 활동을 금지당했다.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유인물을 나눠주는 행위도 금지되고, 동독과의 서신 교류와 스포츠 교류도 감시 또는 금지 대상이 되고, 맑스 등 사회주의 서적의 학습도 금지됐다.

지금의 독일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1950년대 독일공산당 해산 당시 독일 전역에서 벌어졌다.  독일공산당 해산 판결과 함께 불어닥친 후폭풍으로 도래한 이 독일판 공포정치의 시대는 독일 민주주의의 암흑기로 평가받고 있다. 이 사건의 교훈으로 이후 독일인들에게 누군가의 생각이나 의도를 재단해 처벌하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됐다.

1956년 독일공산당 해산 판결도 그후 사문화됐다. 아데나워에 이어 집권한 사민당의 빌리 브란트 정권은 1968년을 기점으로 동방정책을 실시하면서 해산된 독일공산당을 그대로 계승한 공산당 창당을 승인했고, 지금도 그 정당이 독일에서 합법적으로 활동 중이다. 독일공산당 위헌 판결은 10년도 안 되어 존립 근거를 상실한 구시대 판결이 된 것이다.

미국 메카시즘과 대만 공산당 허용의 교훈   

1950년 2월 미국 위스콘신주 출신의 공화당 상원의원 매카시(Joseph McCarthy)의 "국무성 안에는 205명의 공산주의자가 있다"는 폭탄선언에서 시작된 매카시즘은 미국 역사에서 민주주의를 파괴한 가장 부끄러운 장면 중 하나로 기록돼 있다.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서 당선된 매카시는 경력위조, 상대후보 명예훼손, 로비스트 금품 수수, 음주 추태 등으로 정치 생명이 끝날 위기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충격적인 이슈를 들고 나왔다. 우리나라 군사독재 정권들이 선거를 앞두고, 또는 정권의 정통성이 위협받을 때마다, 혹은 부정선거를 덮기 위해서 간첩사건을 조작하고, 북풍을 조작하는 수법과 묘하게 닮아있다.

매카시의 이 폭탄 선언으로 미국 사회는 충격에 휩싸였다. 매카시가 언론 앞에 설 때마다 공산주의자의 숫자가 늘어나고, 거물들의 이름이 쏟아져 나왔다. 사실 여부와는 상관없이 매카시의 말은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했고, 매카시의 대중적 인지도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의회에 특별조사위원회(Committee on Un-American Activity)가 구성되고 미국 사회를 넘어 전세 계를 숨죽이게 만들었다. 중국 공산화와 한국전쟁에 대한 충격으로 가장 먼저 메카시즘의 타깃이 된 것은 중국 관련 외교관과 국무성 정치인과 중국통 정치학자들이었다. 메카시즘의 광풍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영화 등 문화예술계와 과학계에까지 불어닥쳐 미국 핵개발의 아버지라 불리는 오펜하이머, 세계적인 거장 찰리 채플린 등이 희생양이 되었다.

이 광풍은 급기야 당시 국무장관 덜레스를 비롯한 외교정책 담당자를 집어삼키더니 트루먼 전 대통령까지 공격하고 나섰다. 그리고 중국과 전쟁을 진행한 아이젠하워 장군을 비롯한 군인들까지도 공산주의자 명단에 오르내리게 만들었다.

매카시 광풍으로 1933년부터 20년 동안 지속되어왔던 민주당 정권은 막을 내리고, 1952년 대선에서 공화당 아이젠하워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민주당은 자신들이 공산주의자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보이기 위해 마녀사냥에 동조했다. 민주당의 매카시즘 동조는 1950년대 초반 미국 민주주의를 암흑기로 만드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 또한 진보당과 전교조 등을 타깃으로 새누리당과 극우세력이 주도해 몇년째 진행되고 있는 한국판 매카시즘에 민주당이 묘하게 장단을 맞추고 있는 모습과 닮아 있다.

대만사례도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공내전에서 패배해 대만으로 쫓겨난 장개석의 국민당은 이후 계엄령을 선포하고 인민단체법이라는 법으로 '공산(共産)'이라는 말이 들어간 모든 단체의 설립과 활동을 금지시켰다. 당연히 공산당도 금지되고, 공산주의를 표방하는 모든 단체는 허용되지 않았다.

그런데, 60년만인 2008년 6월 대만 사법원(대법원)은 "공산주의를 금지한 인민단체법 규정은 결사와 표현의 자유를 규정한 헌법 위반"이라는 결정을 내려 공산당 창당과 활동이 합법적으로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 대법원 판결은 곧바로 효력을 발휘해 그 해 7월 국공 내전이 종결된 지 59년 만에 대만 공산당 창당대회가 열렸다.

이 대만공산당 창당 대회에는 우리의 안전행정부에 해당하는 대만 내정부 관리들이 참석했고, 정식으로 당 대표도 뽑았다. 인구수에서나 경제규모, 군사력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 공산주의 정권인 중국을 바로 코앞에 둔 섬나라 대만에서도 공산당을 금지하는 것은 위헌판결을 받는 게 현실이다.

사실 우리가 '자유 중국'이라고 불렀던 대만은 국민당이 대륙에서 쫓겨왔던 1950년부터 거의 반세기 동안 계엄령으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탄압했고, 장개석에 이어 그 아들 장경국이 종신으로 총통을 하던 세습독재국가였다.  심지어 야당도 없고 제대로된 선거도 없는 나라였다. 나라 이름 앞에 '자유'라는 수식어를 붙이기가 민망한 수준이었다. 그런 나라에서도 공산당을 법으로 허용했다.

'반공 코스프레'로 생존 모색, 과연 성공할까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8월 6일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기 위해 정홍원 국무총리, 김기춘 신임 비서실장, 박흥렬 경호실장과 회의장으로 입장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8월 6일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기 위해 정홍원 국무총리, 김기춘 신임 비서실장, 박흥렬 경호실장과 회의장으로 입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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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당은 중국, 쿠바, 베트남, 라오스, 북한 같은 사회주의 국가에만 있는게 아니다. 미국, 캐나다, 영국, 프랑스, 핀란드, 일본, 이탈리아, 스웨덴, 브라질, 아르헨티나, 오스트레일리아, 남아공, 일본, 대만, 인도 등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국가 중에서 공산당 혹은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정당을 금지하는 나라는 찾기 힘들다.

공산주의에 대한 찬반을 떠나 민주주의의 기본은 사상과 이념의 자유 보장이다. 이런 이유로 '공산주의'라는 사상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어떤 정당이든 국민이 선택하지 않으면 그만이지, 정권이 나서서 정당 해산 운운하는 것은 정상적 민주주의라고 보기 힘들다.

공산당을 해산한 아데나워와 매카시즘의 목적은 정권 연장과 정권 탈환이었다. 냉전시대 독일과 미국에서 반공 코스프레만큼 선거전략으로 효과적인 내용은 없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가? 1959년 진보당에 대한 해산과 조봉암 당수에 대한 사형은 이승만 정권의 부정선거를 감추고, 강력한 정적을 제거해 독재정권의 영구화를 위한 작업이었음은 부정하기 힘든 역사적 사실이다. 그리고 유신 치하 또는 군사독재 정권 시절에도 수많은 선거에서 선거 전략으로 간첩사건이 조작되고 이른바 북풍, 총풍이 등장했다.

최근의 진보당에 대한 종북공세에서부터 위헌정당 해산청구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반공 코스프레'는 국정원과 국방부, 경찰과 국가보훈처 등 국가기관의 총체적 선거 개입을 물타기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무리수를 무릅쓰고,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부가 한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비상적인 행동을 하는 이유에 대해 많은 이들은 내년 지방선거를 꼽는다. 헌법재판소의 180일 선고 기한은 내년 5월이며, 바로 지방선거 직전이다. 박근혜 새누리당 정권은 내년 지방선거를 '해산을 앞둔 종북 위헌세력을 심판하려는 새누리당'과 '종북 위헌 세력 또는 이를 두둔하는 야당'의 대결구도로 치르고 싶어할 가능성이 높다. 이를 위해 진보당에 대한 해산 청원은 지금이 최적기다.

김기춘 비서실장을 비롯한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는 올드보이들의 화려한 귀환에 이어 새마을운동까지 부활시킨 박근혜 정권이 이제 정당 해산까지 추진하고 나섰다. 군사정권의 유물 중 부활하지 않은 것은 군사쿠데타만 남았다는 비아냥까지 쏟아져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민주주의는 다당제를 기본으로 하고, 그 다당제는 정당설립과 활동의 자유를 바탕으로 한다. 이게 바로 헌법의 기본정신이다. 헌법의 정신을 망각한 채 철 지난 반공 코스프레로 역사의 시계를 꺼꾸로 돌리려는 시도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그게 바로 민주주의 역사의 살아있는 교훈이다.

덧붙이는 글 | 비슷한 기사가 민중의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진보당#박근혜#메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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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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