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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부가 보낸 학교폭력실태조사 결과 통지 공문 20일부터 교과부 누리집에도 올릴 예정이라고 합니다.
▲ 교과부가 보낸 학교폭력실태조사 결과 통지 공문 20일부터 교과부 누리집에도 올릴 예정이라고 합니다.
ⓒ 교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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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각 학교에는 교육과학기술부(장관 이주호) 학교선진화과에서 보낸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 통지' 공문이 왔습니다.

총 26쪽이나 되는 공문에는 우리 학교가 속한 서울시교육청 소속 초·중·고 1303개 학교의 이름이 가나다 순으로 나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는 교과부가 조사했다는 학교폭력 실태에 대한 숫자가 깨알같이 적혀 있었습니다. 이 숫자는 지난해 11월 교과부가 전국의 모든 학교를 대상으로 실시한 '학교폭력실태 전수조사' 결과입니다.

 교과부가 20일 누리집에 공개한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표. 학교 이름과 지역정보 등이 그대로 나와있다.
 교과부가 20일 누리집에 공개한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표. 학교 이름과 지역정보 등이 그대로 나와있다.
ⓒ 교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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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저는 이 공문을 보는 순간, 이게 우리나라 교육을 책임지고 있다는 교육과학기술부의 공문이란 것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또한 학교폭력 실태조사표를 보는 순간 교과부는 교육도, 통계도 모르고, 폭력에 대해서는 더욱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미 수많은 언론에서 '학생 수보다 응답자 수가 더 많다' '응답률이 0% 혹은 응답자가 1명이었다' '전체 응답률이 20%대인 통계는 무의미하다'는 등의 평가를 내놨습니다. 또한, <서울신문>은 이번 실태조사를 두고 25억 원을 들이고도 실효성이 없다며 '깡통 통계'라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교사로서 언론에서 놓치고 있는 부분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학교폭력실태 전수조사'가 가지는 허점

교과부가 내놓은 '학교폭력실태 전수조사'의 가장 큰 허점은 작은 주먹질이라도 폭력을 당했다고 답하면 폭력건수로 잡히지만, 아무리 큰 폭력을 당해도 대답을 하지 않으면 '폭력없음'이 된다는 점입니다.

두 번째 허점은, 이 조사에서 말하는 '폭력'의 기준이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응당 조사는 조사 내용에 대한 기준이 명확해야 합니다. 규격이 정확해야 어느 정도 통계의 의미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이번 교과부가 언급한 '폭력'은 그 기준이 확실하지 않습니다.

같은 주먹질이라도 생각에 따라서 폭력으로 보는 사람도 있고, 장난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번 전수조사 결과, 초등학생 단위에서 폭력건수가 가장 많이 나온 것도 폭력을 인식하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나온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초등학생들은 행동유형이 서로 몸을 부딪히면서 지내는 특징이 많기 때문에 서로 부딪혀서 불쾌한 경험을 '폭력'이라고 인식할 수 있지만, 고등학교에 올라갈수록 서로 주먹질 정도를 '폭력'이라고 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초등학생들은 응답율이 높은 반면 중고등학생의 경우 이런 일에 성실히 대답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 통계는 이런 점을 놓치고 있습니다.

세 번째 허점은, 폭력건수가 복수로 산출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하나의 사건을 보고 여러 아이가 대답을 하면 모두 여러 건으로 잡힐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단지 표에 나타난 숫자가 폭력건수의 절대적 수치는 아닐 수 있습니다.

엉터리 통계 누리집에 공개

 교과부가 내놓은 후속조치 메뉴얼에 따르면 각 학교도 위 양식으로 학교 누리집에 실태조사결과를 공개해야 한다.
 교과부가 내놓은 후속조치 메뉴얼에 따르면 각 학교도 위 양식으로 학교 누리집에 실태조사결과를 공개해야 한다.
ⓒ 교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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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부는 이런 허점투성이 통계를 '용감하게도' 학교 실명을 담아 발표했습니다. 20일 현재 교과부는 전수조사 결과를 교과부 누리집에 올려놨습니다. 조사 결과에 학교 이름이 담겨 있어 이제 학교폭력 순위가 저절로 매겨질 것입니다. 또한, 교과부가 내놓은 '학교폭력 실태조사에 따른 후속 업무처리 메뉴얼'에 따르면 앞으로 학교들도 누리집에 학교별 실태조사 결과를 게시해야 합니다.

이는 교과부가 학교, 학부모, 학생들, 그리고 교사에게 저지르는 '폭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교과부는 지금이라도 누리집 공개를 멈춰야 할 것입니다. 또한, 교과부는 25억 원 혈세를 들여서 한 통계조사에 대한 잘못을 시인하고, 교과부 장관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봅니다.

그렇지않아도 최근 교과부는 마땅히 관심 가져야 할 방과전, 기본 학교 교육에는 관심이 없고, 되레 문화관광부와 행정자치부 쪽에서 더 관심을 가질 법한 토요일 프로그램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관련기사 보기). 이런 상황을 보면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저는 '이런 교과부가 과연 필요할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학교폭력대책결과#학교폭력#교육과학기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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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만에 독립한 프리랜서 초등교사. 일놀이공부연구소 대표, 경기마을교육공동체 일놀이공부꿈의학교장, 서울특별시교육청 시민감사관(학사), 교육연구자, 농부, 작가, 강사. 단독저서, '서울형혁신학교 이야기' 외 열세 권, 공저 '혁신학교, 한국 교육의 미래를 열다.'외 이십여 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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