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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시체가 누워 있는 침대에 한 남자가 걸터앉아 있다."

 

스콧 터로는 자신의 2010년 작품 <이노센트>의 소재를 위와 같은 장면에서 떠올렸다고 한다. 위 문장을 메모지에 적어서 몇 달 동안 책상에 붙여 두었고, 그 이후에 <이노센트>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어찌보면 참으로 기괴한 장면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체에 가까이 가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시체가 누워있는 침대에 걸터앉아 있다면 뭔가 사연이 있을 것이다.

 

자신이 그 시체를 죽인 살인자이기 때문에 증거인멸 및 현장조작을 위해서 남아있을 수도 있다. 아니면 어떤 이유로 죽었건 간에 죽은 사람이 자신의 가족이라서 충격에 빠진 나머지 침대에 앉아 움직이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갑자기 커다란 충격을 받으면 죽은 사람을 앞에두고 119에 전화를 걸거나 경찰을 부를 생각을 못하는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 심지어 죽은 사람 옆에서 아무 말없이 하루를 꼬박 앉아있더라도 마찬가지다. 사람의 죽음을 타인에게 빨리 알리지 못했다고 해서 욕먹을 일도 아니지 않은가.

 

살인사건 용의자가 된 판사

 

<이노센트>에서 여자의 시체는 바바라 사비치이고, 그 옆을 지키는 남자는 바바라의 남편인 러스티 사비치다. 조울증 때문에 매일 일정 분량의 치료약을 복용하던 바바라는 어느날 갑자기 침대에서 죽었고, 이 사실을 알게된 러스티는 그 침대에 앉아서 떠나간 부인을 말없이 지키고 있다. 마치 그렇게 앉아 있으면 다시 바바라가 깨어나기라도 하는 듯이.

 

러스티는 예순한 살의 판사이자 항소법원의 법원장이다. 얼마 후에 있을 대법관 선거에 후보로 출마하기도 했다. 대법관 선거에서 당선된다면 자신의 경력에서 정점에 올라서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렇게 중요한 시기에 아내가 갑자기 숨졌다. 그렇다면 충격을 넘어서 패닉상태에 빠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러스티는 아내가 죽고나서 꼬박 하루가 지난 후에 아들 냇에게 연락을 했고 냇은 급히 집으로 달려온다. 러스티는 냇을 보자마자 "화장실만 몇 번 다녀왔지 네 엄마 곁을 잠시도 떠나지 않았어"라고 말한다. 높은 판사석에 앉아서 수많은 죄인들에게 냉정한 선고를 내렸던 러스티가, 부인의 죽음으로 백치처럼 변해버린 것이다.

 

냇은 슬퍼하면서도 필요한 조치를 취한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경찰을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러스티를 수상한 눈으로 바라본다. 결혼한 사람이 살해당하면 그 배우자가 용의자 1순위에 오른다. 바바라의 사인이 정확히 규명되기도 전에 검찰 측에서는 러스티를 의심한다. 무엇보다도 시체를 24시간 동안 방치해 두었다는 것이 이상하다.

 

게다가 러스티는 과거에도 비슷한 전력이 있었다. 20년 전 검사이던 시절, 러스티는 동료 여성 검사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되었었다. 당시에 무죄로 풀려나기는 했지만 그런 과거가 있는 남자라면 사람들이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는 것도 당연하다. 20년 전에 그 사건을 담당했던 검사인 토미 몰리도 바바라의 사망소식을 듣는다. 토미의 측근은 이 사건을 철저하게 수사하자고 말한다. 이번에야말로 러스티를 잡아넣을 절호의 기회라는 것이다.

 

조금씩 드러나는 사건의 진실

 

결국 이 사건은 법정으로 가게 된다. 검찰에서는 살인이라는 것을 명확히 입증하지도 못하면서 러스티에게 다시 한 번 살인 혐의를 씌운다. 검사 토미 몰리는 20년 전의 사건에서도 러스티가 진범이라고 믿고 있다.

 

작가의 말처럼 삶의 가장 심오한 진실 중의 하나는, 사람들이 이유도 알지 못한 채 때로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 한다는 사실이다. 한번 불에 데면 두 번째는 조심하는 법인데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많다. 검찰과 러스티도 20년 전과 똑같은 상황에 놓였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쪽은 검찰일까 러스티일까?

 

<이노센트>에서는 흥미진진한 법정 공방전이 펼쳐진다. 야구에서 이닝이 바뀌면 공격과 수비가 교체되듯이, 법정에서도 검사와 변호사가 교대로 등장하며 피의자를 추궁하고 변호한다. 작품에서는 법정에서 일어나는 공방을 빠르고 긴장감있게 묘사하면서 동시에 등장인물들의 심리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러스티의 아들 냇은 법정에 참석하면서 조금씩 진실을 알아간다. 아버지가 엄마를 죽이지는 않았을지 몰라도 뭔가를 숨기는 것은 사실이다. 냇은 시간이 지나면서 아버지에게 분통을 터뜨리기도 하고 아이처럼 울기도 한다. 부모가 가지고 있던 숨겨진 비밀이 아들의 남은 인생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진실을 받아들이는 일은 종종 인간이 마주하는 가장 힘든 임무다.

덧붙이는 글 | <이노센트> 스콧 터로 지음 / 신예경 옮김. 황금가지 펴냄.


이노센트

스콧 터로 지음, 신예경 옮김, 황금가지(2011)


#이노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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