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경북 경산은 대구의 위성도시면서 문화적 체취가 가득한 곳이다. 일연, 설총, 원효가 태어난 곳이란 점을 가장 강조해서 문화관광정책을 펼치는 이곳의 또 다른 특징은 시골과 도시의 풍광을 동시에 가진 곳이란 것에도 있다. 그 중 서상동은 도시 곁의 작은 시골 마을이다. 서옥교 하나를 건너면 우람한 성암산을 배경으로 고층 아파트가 우뚝 서 있고, 강 건너 이편에는 시골스런 정취가 가득한 서상동이 펼쳐진다. 그곳의 옛 건축물과 시골 정서를 소개한다 - 기자 말

요즘은 다들 마트에서 김치를 사다먹지만 서상동 집집엔 김장들을 하느라 바쁘다. 여자들은 마당 수돗가에 주저앉아 배추를 씻어대기 바쁘고, 덩달아 곁에 쭈그려 앉은 딸이나 며느리는 무 썰고 양념 버무리느라 정신이 없다. 주머니에 손 넣고 어슬렁대는 사내가 있을라치면 '거, 고무 다라이! 비니루 좀!'하면서 연신 심부름 시켜대니, 담 아래서 담배 한 대 피워 물던 사내들은 마님의 부름 받은 돌쇠마냥 사방팔방 뛰어다니기 바쁘다.

뒷방 노인이라고 뒷짐만 지고 있을 순 없다. 노인은 무시래기 꿰어서 마루로 나왔는데 처마 밑에 고것 하나 감아보려 하지만 잘 되덜 않는다. 모내기 하랴, 대식구 가마솥 밥 지어먹이랴 정신없던 젊은 날의 흔적인양 굽은 허리를 일껏 펴본들 감당도 안 되겠다. 짐짓 포기하곤 개창자처럼 축축 처진 빨래 곁에 그것들을 줄줄이 걸어 본다. 바쁜 철, 도울 게 없는 바둑이는 낯선 객의 발소리에 목청 돋워 짖어댈 뿐이고.

"누구냣!냣!냣!냣! 가거랏!랏!랏!랏!"

한옥 카페 .
▲ 한옥 카페 .
ⓒ 조을영

관련사진보기


벽화가 그려진 어느 한옥 마당엔 커피 향이 한 가득이다. 새까만 맥문동 열매가 졸졸이 달린 정원 곁에서 담배 피던 놈들은 취업 얘기로 한숨 섞인 커피를 마신다. 여긴 한 30년 된 한옥을 고쳐서 카페가 됐단다. 커피 볶는 곳도 있고 어디서 들여오는지 연탄도 마당 가득 쌓아 놨다. 댓돌에 신발 벗고 올라서니 주인이 방으로 앉으란다. 통기타에 나지막한 서랍장도 있는 것이, 꼭 시골 여고생 방 같다.

한옥카페 .
▲ 한옥카페 .
ⓒ 조을영

관련사진보기


친정 얘기, 아이 얘기로 꽃 피우던 새댁 손님들이 나가자, 손금을 봐주겠다고 옥신각신 수상한 중년 커플이 와 앉았다. 여자의 소곤대는 소리는 객이 앉은 방으로도 주책없이 새어든다.

"아이... 다른 사람 본다, 본다, 보오온다."

옛날 이발관 .
▲ 옛날 이발관 .
ⓒ 조을영

관련사진보기


척척 걸어가니 세상 구경하는 노인 마냥 낡은 이용소 하나가 앉았다. 간판하며 창문하며 요즘과는 너무 다른 저 모양새 좀 보라. 문 밀고 들어서니 오래 되서 반질한 이용실 의자며, 면도칼 가는 가죽띠며, 잘 쓸고 닦은 사각형 타일 세면대가 단정하고 반듯하다. 티비 보던 사내는 문소리에도 꿈쩍 않는다. '사진을 찍고 싶소' 하니까 뚱한 얼굴로 '찍지 마소' 딱 한마디다. 뭣이 이리 야박하노 싶지만 휑한 얼굴하며 뭔가 우환이 있는 듯한데, 붙어서 떠들어봐야 소용없을 터 다른 곳으로 가보자.

경산 서상동의 옛건물 .
▲ 경산 서상동의 옛건물 .
ⓒ 조을영

관련사진보기


경산서상동의 옛건물 .
▲ 경산서상동의 옛건물 .
ⓒ 조을영

관련사진보기


오, 저기 찌그러지고 덕지덕지 기운 건물은 또 뭣인고? 떡집이라 써있는 낡은 간판 달고, 안에는 낡은 의자며 먼지가 한 가득이다. 원래는 근방에 70년 넘은 경일백화점 이란 곳도 있었단다. 요새 슈퍼마켓 정도 크기지만 '화란 나르당의 천연향! 칠성사이다' 이 광고 한창일 때 꺼정 장사를 했더란다. 철로 된 문을 끼워 넣고 빼내는 그 옛날 가게로 말이다.

보리비빔밥 .
▲ 보리비빔밥 .
ⓒ 조을영

관련사진보기


자, 이제 촌집 보리밥을 먹어 볼란다. 두둑하게 살찐 여편네가 된장찌개, 상추 겉절이, 고봉 보리밥 얹은 상을 놓는데, 훅 끼치는 냄새가 달디 달다. 미역과 무가 들어간 초무침은 새큼하고, 콩잎장아찌는 어찌 담갔는지 제법 까슬한데 맛이 깊고 향도 눅진하다. 보리밥에 된장찌개 척척 쏟아 붓고 무생채, 시래기 볶음 넣어 쓱쓱 비벼 한입 우물우물, 된장에 박아 푹 삭힌 고추도 어석 베문다. 정지(부엌)쪽에서 여자가 목만 쏙 빼고 먹는 것을 본다.

초등학교 앞에선 동글동글한 녀석 둘이가 뭔가를 오물거리고 있다. 낡고 다 떨어진 문방구아래서 녀석들 손에 저것은? 오호! 쫀듸기 아닌가! 너들도 이런 것 먹누나! 어디 보자... 쫄쫄이, 오란다...

옛날 과자 .
▲ 옛날 과자 .
ⓒ 조을영

관련사진보기


그 시절, 콧물 질질 흘리던 것들은 방과 후면 문방구 앞에 쪼롬이 둘러앉았다. 그러면 문방구 여자는 연탄 풍로 위에 쪼꼬만 후라이팬을 달궈서 마가린을 지글지글 녹여냈다. 그윽한 냄새가 겨울바람에 스며들었고 어린 것들은 코를 벌름대며 히히거렸다. 요리조리 바싹 구워진 쫀듸기를 신문지 조각에 둘둘 말아주면 녀석들은 기름이 잔뜩 배고 잉크 냄새가 가득한 그것을 열심히 먹어댔다. 놈들 틈에 흉측해 싫다 하면 사내 짝꿍이 대신 사다주던 그 불량식품들. 이제는 그립고 그리운 추억들이다.

아직은 완전한 도시가 안 됐기에 이럭저럭 촌 냄새가 많은 경산 서상동. 그래서 더 정겨운 곳. 근처 경산역에서 퍼지는 기적소리가 선명히 들리는 곳이기도 하다. 겨울바람에 다가오는 그 기적 소리는 뭔가 잘 안 풀리던 것들도 확 쓸어가 버릴 것 같은 기대감을 갖게 만들고, 무언지 모르지만 그 짜릿한 순간을 오늘 기필로 잡아보리라 다짐을 하게 한다. 그것이 삶이건 추억이건, 미래 목표건 자신을 일으키는 그 무엇이기에 또다시 생의 카메라를 다잡는다.

"온다, 온다.... 와았다!"

기차 .
▲ 기차 .
ⓒ 조을영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12월 1일에 다녀왔습니다.



#경산 서상동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