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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포스터 황윤 감독의 '어느 날 그 길에서'와 첫작품 '작별'의 동시 상영회 포스터
▲ 영화 포스터 황윤 감독의 '어느 날 그 길에서'와 첫작품 '작별'의 동시 상영회 포스터
ⓒ 황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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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렬하는 태양빛보다 흐린 날씨와 지루한 장마가 계절의 키워드가 되어 버린 올해 여름, 그 휴가길에서는 나는 인간의 편의와 안락을 위해 고통을 당하고 목숨마저 위협받는 생명체들을 만났다. 그리고 한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가 전하고자 했던 이야기들이 머리에 떠 올랐다. 

8월 초 모처럼 일주일 휴가를 내서 가족과 강원도 홍천의 한 리조트를 찾았다. 서울에서 출발해서 100킬로미터 정도의 여정이었다. 차로 올림픽대로를 타고 가다가 새로 뚫린 경춘고속도로를 탔다. 정말 환상이었다. 이전에 서울에서 춘천으로 가는 경춘선은 구리를 지나 남양주로 가서 복잡한 길을 타야만 진입할 수 있었다면 도시 고속도로에서 바로 고속도로로 연결되는 환상적인 변화였다. 뿐만 아니라 기존 국도가 아니라 고속도로로 태어난 경춘고속도로는 국도와는 비교가 안 되는 속도롤 보장해 주었다. 그야말로 휴가의 여정이 몇 배는 편해진 것 같았다.

하지만 조금 가다 보니 황윤 감독이 만든 <어느 날 그 길에서>(2008)라는 다큐멘터리가 보여준 비극들을 눈으로 확인하게 되었다. 서울과 남춘천간 경춘고속도로 및 남춘천에서 목적지까지 국도를 이용하는 동안 도로 위에 죽어 있는 동물을 세 번이나 보았다. 들고양이로 보이는 한 녀석, 그리고 도로 바닥에 말라 붙어 있던 뱀 한 마리와 두꺼비인지 황소개구리인지 분간이 안 되는 녀석, 이렇게 세 녀석의 사체를 도로 위에서 발견했다. 바로 '로드킬'의 현장이었다.

이 죽음, 당신은 책임이 없나요

허망한 죽음 작품 속의 한장면으로 도로에서 죽어 있는 삵의 모습
▲ 허망한 죽음 작품 속의 한장면으로 도로에서 죽어 있는 삵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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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킬이란 동물이 도로에 나왔다가 자동차 등에 치여 사망하는 것을 말한다. 자료를 좀 찾아보니 이미 심각한 환경문제가 되어 있었다. 강원도에는 야생동물구조센터가 만들어져 있었고, 환경부나 각 지방환경청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 듯 이런 저런 예방책을 마련하고 있었다.

황윤 감독은 아마도 서울대공원 우리 속에서 사람들의 관람을 위해 길러지는 야생동물의 슬픈 이야기를 다루었던 첫작품 <작별>(2001년) 이후 자신의 작업 분야를 자연과 생태, 그리고 자연과 인간의 관계로 잡은 것 같다. 본인도 도시 매미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이를 바탕으로 어린이 논픽션 생태동화 <매미, 여름 내내 무슨 일이 있었을까?>(사계절 출판사)를 쓸 때 결국 자연 그 자체의 숭고함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해 우리가 관심을 가질 때 공생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런 메시지를 담고자 노력했다.

'지속 가능한 개발'이라는 새로운 개발 논리 혹은 환경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단순히 인간이 살아가는 지구가 아니라 인간과 다른 생명체 모두에게 삶의 터전이 지구라는 관점에 맞추어져야 한다. 결국 황 감독의 다큐멘터리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메시지도 결국 인간과 자연, 자연의 동식물과 인간의 공생인 것 같다.

<어느 날 그 길에서>는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호랑이로 인해 피해를 보고 있는 농민들과 호랑이를 보호하려는 중국정부와의 갈등, 천지를 찾는 사람의 편의를 위해 깎아버린 백두산, 한국인 관광객들의 보양식을 위해 죽어 가는 야생동물들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두 번 째 작품 <침묵의 숲>(2004)의 메시지와 닿아 있다. <침묵의 숲>이나 <어느 날 그 길에서>는 <작별>에서 보여진 동물원 우리에 갇힌 동물의 비애가 아니라 인간과 한 공간에서 살아가야 하는 동물들의 비애를 담고 있다. <어느 날 그 길에서> 야생동물들이 살아가는 공간은 동물원이 아니라 야생이지만 그들이 다니는 길이 인간들의 길과 겹쳐 있었고 그것이 비극의 원인이었다.

촬영의 배경인 지리산은 서울의 남산처럼 도로로 둘러싸인 고립된 섬과 같은 산이다. 상대적으로 야생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산이지만 2004년부터 2007년까지 4년간 촬영된 이 작품을 보면 지리산 주변에서 천연기념물인 삵, 너구리, 고라니, 유혈목이, 살모사, 수리 부엉이 등 온갖 동물들이 죽어 가고 있다.

바로 인간이 만들어 놓은 도로가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 넣고 있었다. 차에 치여 죽거나, 도로를 건너야 하는데 도로구조가 건너편 야생지로 갈 수 없게 되어 있어 죽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기존에 그들의 생태통로 혹은 그들의 삶의 공간이었던 곳에 도로가 들어오게 되고 그 도로의 구조나 차량의 통행량은 야생동물들이 극복할 수 없는 인공의 환경이 되어 있는 것이다. 

지리산에서만 5767마리... 끊임없이 죽었다 

로드킬 사례에 대한 기록 현장 작품 속에 등장하는 최태영 박사가 로드킬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있는 모습
▲ 로드킬 사례에 대한 기록 현장 작품 속에 등장하는 최태영 박사가 로드킬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있는 모습
ⓒ 황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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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은 지리산 일대의 로드킬의 실태를 조사하고 있는 연구팀 최태영씨와 최천권, 최동기씨 세 사람의 목숨을 건 로드킬 조사를 따라 다닌다. 작품에서는 자세히 나오지 않았지만 이들의 로드킬 실태조사는 서울대 환경계획연구소의 연구 프로젝트였다.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한 최태영씨가 구례로 내려와 조사를 하면서 '지리산 생태보존회' 멤버인 최동기씨와 최천권씨가 조사에 합류한 것이었다.

2004년부터 2007년까지 2년 6개월 동안 이들이 조사한 지리산 인근 120킬로미터 도로에서 발견된 로드킬은 5767건이었다. 즉 5767마리의 동물들이 도로 위에서 삶을 달리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연구팀이 이틀 동안 전국의 고속도로 3000킬로미터를 달리면서 발견한 로드킬도 1000여 건이었다. 그동안 빠르고 편안하게 고속도로를 달리면서도 대한민국 사람들은 얼마나 로드킬에 대해 생각해 보았을까? 지리산 인근이 이 정도라면 전국적으로는 엄청난 야생동물들이 도로에서 죽어가고 있을 것이다.

작품은 처음부터 끊임없이 로드킬의 현장을 보여준다. 그리고 끊임없이 도로 위를 고속으로 질주하는 차량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연구원들의 인터뷰와 짧고 간결한 자막 몇 개가 스토리 전개에 대한 이해를 도와주고 있다. 하지만 짧은 로드킬 사례들이 반복적으로 보여지는 전반부는 상당히 지루하다. 방송 다큐멘터리라면 단 몇 분으로 처리될 만한 내용들이다. 하지만 황 감독에게는 이유 있는 반복이었다.

작품의 중반을 넘어서면서 작품의 무게와 힘이 수면 위로 올라온다. 결국 이 다큐멘터리의 핵심은 반복되는 로드킬 현장 화면이다. 죽고 죽고 또 죽어 가는 동물들을 반복해서 보면서 나 자신도 모르게 이제 그만 보여줬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반복되는 로드킬 화면은 인간이 자신들의 안락과 편의성을 포기하지 않는 한 또 다른 생명체들의 희생은 반복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한 가장 다큐멘터리적인 구성이 아니었을까 싶다.

밤에는 커다란 불빛 두 개를 달고 질주하는 자동차들과 이를 바라보는 야생동물들의 시선을 반복적으로 교차시켜 보여준다. 언제나 도로를 건너갈 수 있을까 상황파악을 하고 있는 녀석들의 긴장된 눈 빛에서 우리가 읽게 되는 것은 녀석들의 공포가 아니다.

밀렵꾼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평범하게 도로를 질주하는 인간 혹은 자동차가 생태계에서 혹은 지리산에서 최상위 포식자일 수도 있다는 새로운 사실이다. 과연 운전을 하는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들이 한 해에 수천 수만 마리의 야생동물들을 죽이는 장본인이라는 사실을 알고나 있을까? 로드킬로 죽어가는 동물들 중에는 멸종위기 동물이나 희귀 동물도 있을 테고 그러면 우리는 밀렵꾼이나 다름 없는 존재인 셈이다.

이 작품은 자연과 동물을 다루지만 정통 자연다큐멘터리라기 보다 르포의 형식에 가깝다. 그리고 작품의 메시지는 자연의 아름다움이나 신비감이 아니라 인류문명 특히 대한민국의 무분별한 개발논리에 대한 반성이다. 형식이 정통 자연다큐멘터리가 아니라 르포 형태를 띠게 된 것도 그 때문인 듯한다. 사회적 이슈에 대한 르포의 메시지는 통상 무겁고 화면은 비극적이다. 그러나 관객을 빨아들이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이 영화의 호소력은 비극적인 화면과 무거운 메시지에서 나오는 것만은 아니다.

팔팔이의 죽음...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촬영현장 로드킬의 사례를 찰영하고 있는 있는 촬영팀
▲ 촬영현장 로드킬의 사례를 찰영하고 있는 있는 촬영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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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감독이 전하는 무거운 메시지에는 결국 동물원 우리 속의 야생동물들을 다른 <작별>과 마찬가지로 슬픈 이야기들이 깔려 있다. 그 슬픈 이야기가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이 작품의 힘이다. 즉 이 작품은 우리의 이성뿐만 아니라 감성을 자극하고 감성에 호소하고 있기도 하다.

작품 속 로드킬 연구팀은 교통사고로 다친 삵을 구해서 치료를 하고 적응기를 거쳐 다시 야생으로 방사를 시키지만 녀석은 결국 다시 도로 위에 죽어 있었다. 그것도 처음 다쳐서 발견된 곳 바로 그곳에서 죽은 채 다시 발견되었다. 연구팀 세 사람은 88고속도로에서 발견된 녀석에게 '팔팔이'라는 이름까지 지어주고 극진하게 치료하고 보살폈건만 그런 정성과 애정이 물거품이 된 것이다.

애완 동물이 그렇듯 아무리 사람이 아닌 야생동물이라지만 사람과 관계를 맺고 애정을 가지게 되면 생태계 차원의 인간과 동물의 관계가 아니라 나 혹은 우리와 어떤 대상과의 특별한 관계가 된다. 작품 속에서 팔팔이의 죽음은 관객으로 하여금 로드킬의 심각성을 인식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로드킬, 즉 인간에 의한 생명체의 죽음을 슬픔으로 받아들이게 하고 있다. 장기간 촬영을 하지 않는다면 르포식 다큐멘터리에서 쉽게 담아내기 힘든 이 작품의 힘인 것이다.

로드킬 연구자 중 한 사람인 최천권씨는 팔팔이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담은 편지를 녀석과 함께 땅에 묻어 주었다.

'팔팔아 미안하다. 너를 지켜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하다. 하늘 나라에서는 행복하고 다음 세상에 태어나서는 교통사고 없는 좋은 초원에서 행복하게 잘살기 바란다.'

최천권씨의 눈물 어린 편지는 길 위에서 만난 한 야생동물에게 전하는 것이라기 보다 친하디 친한 친구나 어린 자식의 죽음 앞에서 오열하는 우리들 혹은 부모의 편지 같다. 그들에게 팔팔이는 수천 마리가 죽어 가는 길 위에서 발견한 한 마리의 삵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았다. 이를 지켜보는 나에게도 팔팔이의 죽음은 그냥 한 건의 로드킬이 아니라 인간과 다르지 않는 살아 숨쉬는 한 생명의 슬프디 슬핀 죽음으로 다가왔다. 팔팔이의 죽음은 뚜렷한 이유도 없이 고속으로 도로를 질주하던 나를 되돌아보게 했다.

이 작품에 대해 다큐멘터리로서 작품의 완성도를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완성도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혹은 관객으로 하여금 로드킬의 심각성과 그런 문제가 발생한 배경에 인간이 있으며 그 원인을 제공한 인간은 삶의 편의성을 포기하더라도 이제 뭔가 그들을 위한 배려를 해야 한다고 설득을 하기에 충분한 작품이다.

작품 속 로드킬 연구팀의 프로젝트는 환경부의 차세대핵심기술개발사업 과제의 하나로 진행중인 것이었다. 분명 우리 사회가 로드킬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 사회도 이제 도로 하나를 건설하더라도 필수적으로 환경영향평가 등을 해야 할 정도로 변화되었지만 그런 평가 속에서 이들 동물들의 죽음을 고려하거나 그에 대한 배려를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래서 연구를 진행한 태영씨가 모 언론에서 제시한 해결책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토 면적당 도로 비율 세계 1위... 당신이 달릴 때 누군가는

도로 위 두더지의 힘겨운 삶 도로를 건너다 도로의 턱을 넘지 못하고 있는 두더지 한마리
▲ 도로 위 두더지의 힘겨운 삶 도로를 건너다 도로의 턱을 넘지 못하고 있는 두더지 한마리
ⓒ 황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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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국은 전세계 국토 면적당 도로 비율이 가장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는 2020년까지 전국의 도로를 현재보다 두 배나 되는 20만 킬로미터를 더 확장할 계획이라고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대한민국은 거미줄 같은 도로망이 야생의 공간들을 휘휘 감아 버릴 전망이다. 뿐만 아니라 이 작품에 등장하는 섬진강변 도로의 경우 연중 따져봐야 벛꽃철에나 막히는데도 불구하고 확장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가장 먼저 로드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필요 없는 도로의 건설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 방법은 도로를 건설하더라도 동물이 이동할 수 있는 생태통로를 만드는 것인데 문제는 2차로에 생태통로 한 곳 설치하는 데 20억 원 가까운 공사비가 들기 때문에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태영씨는 사람이 도로를 건너 다닐 수 있도록 만들어진 통로들을 동물과 같이 이용할 수 있도록 배려한 도로 설계가 필요하다고 한다. 태영씨는 실례로 최근에 뚫린 4차로 산업도로를 살펴보니 6킬로미터 구간에 농로나 수로 등 도로를 건너 왕래 가능한 공간이 35개나 되므로 이들 통로를 동물과 인간이 같이 이용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보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운전자들이 시골길이나 숲 속 길을 달릴 땐 계기판을 살펴보기를 당부한다. 속도를 낮추면 생명이 보이고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로드킬로 삶을 마감하는 야생동물의 수를 줄이려면 결국 생명을 살필 줄 아는 운전자들의 여유로운 마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직 끝나지 않은 2011년 여름, 잦은 비로 미루어져서인지 휴가는 아직도 피크라고 한다. 오늘도 누군가는 너무나 편해진 대한민국의 도로를 이용해 고달픈 일상에서 탈출해 휴가를 떠날 것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길 위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야생동물들은 그들의 삶을 포기해야만 한다. 휴가 떠나는 길 그들의 삶을 배려하는 사람들을 기대해 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드가의 다큐멘터리 이야기 www.degadocu.com' 에서 제공합니다.



#어느 날 길 위에서#다큐멘터리#로드킬#지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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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료방송 채널에서 교양다큐멘터리를 주로 연출했, 1998년부터 다큐멘터리 웹진 '드가의 다큐멘터리 이야기'를 운영. 자연다큐멘터리 도시 매미에 대한 9년간의 관찰일기 '매미, 여름 내내 무슨 일이 있었을까' 2016년 공개, 동명의 논픽션 생태동화(2004,사계절출판사)도 출간. 현재 모 방송사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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