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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7일 집중 폭우로 우면산 산사태가 발생한 가운데, 28일 오전 서울 서초구 방배동 일대 남부순환도로에서 현장 복구에 동원된 중장비들이 토사와 뿌리 뽑힌 나무 등을 제거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지난 27일 집중 폭우로 우면산 산사태가 발생한 가운데, 28일 오전 서울 서초구 방배동 일대 남부순환도로에서 현장 복구에 동원된 중장비들이 토사와 뿌리 뽑힌 나무 등을 제거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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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시장이 서울 수해 피해와 잘못된 치수 정책에 대해 사과한 것은 늦은 감이 있으나 다행이다. 끊임없이 문제를 감추고, 책임을 미루는 태도에 지쳤을 시민에게 작게나마 위로가 됐다고 본다. 다만 "이번 폭우의 특징이 과거와 전혀 다르다" "피해를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예측이 힘든 기상 이변 앞에서..." 등의 발언은 여전히 수해 원인을 하늘에 돌리는 것이어서, 사과의 진정성을 의심케 한다.

서울시 수방대책의 골자는 이상기후 대비 체제로 전환한다는 것이고, 현재 시간 당 75mm의 강수에 대응해 설계된 시설을 100mm 집중호우에 견딜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서울 전역에 대한 하수관거 용량확대를 최우선 추진해 배수 기능을 강화'하고, '상습침수지역, 산사태 우려지역 등에 10년간 5조 원 집중 투자'하겠다는 것이다.

10년 동안 22조 원 투자?

서울환경연합은 서울시의 대책에서 정책의 진정성을 찾기 어렵다고 본다. 서울시의 계획은 2007년 <수방시설능력 4개년 추진계획>, 2009년 9월 <서울시 중장기 수방대책>, 2011년 2월 <기후변화대응 침수피해 저감대책> 등 기존 계획의 재탕일 뿐, 변화가 거의 없다. 사업 규모만 엄청나게 커졌다. 이에 우리 단체는 문제점이 심각한 몇 가지만 우선 지적하고, 나머지는 기존의 자료로 대신하고자 한다.

첫째, 하수관거에 대한 집착이 과도하다. 하수관거는 전체 구간(10500km) 교체 계획이 있고, 상습침수지역 해소 대책에서도 핵심을 차지하고 있어, 전체 사업비의 80% 이상에 해당한다. 하지만 지난 해(2010년)와 올해(2011년) 사고 현황을 분석할 때, 하수관거의 용량이 부족한 지역은 많지 않았다. 지난해 강서, 양천, 광화문 모두 시간당 75mm를 넘은 곳이 없었고, 올해 역시 관악구 신림동과 서초구 일부를 제외하고는 모두 75mm/h 이내였다. 관거의 신설과 개량이 필요한 곳이 있겠지만, 이토록 전면적인 교체를 서두를 일이 아니다.

더 우선인 것은 하수관거의 실태를 조사하고, 불량한 설계나 관리 현황을 개선하기 위해 대책을 세우는 것이다. 이러한 연구와 조사에는 100억 원도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서울시는 막무가내 공사를 벌이겠다고 하기 전에, 비판적 전문가들에게도 문을 열어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조사해 현황과 문제를 분명히 밝히는 것부터 해야 한다.

특히 서울시 주요 도로에 매설된 10500km의 하수관거를 몽땅 교체하겠다는 것은 또 다른 도시문제를 야기하게 된다는 점에서 쉬운 일이 아니다.

둘째, 재정 계획이 비현실적이다. 서울시의 대책에 따르면, 하수관거 교체 17조 원, 상습침수지역 대책 5조 원 등 필요 예산이 22조 원을 넘는다(연 평균 2조2000억 원). 이는 서울시민 1인당 220만 원, 가구당 600만 원을 부담해야 한다는 뜻이 된다.

최근 논란에서 확인됐듯이, 서울시의 치수 관련 예산은 일반예산(물관리국), 재난관리기금, 하수도특별회계 등이 있다. 재난관리기금은 보통세 수입의 1%로 조성되므로 연간 2500억 원 수준이고, 서울시의 일반예산은 약 60억 원에 불과하다. 재난기금의 추가 조성은 법적으로 불가능하고, 서울시의 방만한 예산 운영 때문에 일반예산에서도 여지가 없다. 그렇다면 서울시가 시민들에게 하수도 요금의 대폭적인 인상을 요구하는 것 외에는 재정 계획이 나올 수가 없다. (하수도 이용자들에게 치수 기금을 물리는 것이 불합리하다는 것과 별도로 서울시의 계획을 분석하면 그렇다는 것이다.)

현재 하수도요금이 가구당 월 7000~8000원, 연간으로는 8~10만 원이다. 그런데 이를 50만 원 선까지 올리려 한다면, 약 500%를 인상해야 한다. 수도요금은 1톤당 320원인데, 하수도요금은 1톤에 1만5000원이 넘는 기형적 구조를 갖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가격 체계에 대해 시민의 동의는 불가능할 것이다. 

'삽질'이 아닌 민주주의로 해결하라

셋째, 양천·강서지역 등 6개소에 대심도 빗물저류배수시설을 구축하는데 1조원을 들이겠다는 계획도 무모하다. 대심도 터널의 효용성에 대한 연구도 없는 상태에서,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붙겠다는 서울시의 주장은 아마추어스럽다. 더 급한 사업, 더 효율적인 사업이 널려 있는데, 검증 안 된 사업 남발은 곤란하다.

넷째, 수해에 취약한 도시 계획에 대해 거론하지 않은 것도 아쉽다. '도시계획, 개발 사업 시 시행중인 사전재해영향성 검토 제도를 내실 있게 운영'하겠다는 취지만 있지, 구체적 계획이 없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4일 오전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서울지역 폭우로 인한 산사태와 수해에 대해 "시민여러분들에게 닥칠 고통과 불편, 불안을 미리 예측하고 대비하지 못한 점, 깊이 사과드린다"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4일 오전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서울지역 폭우로 인한 산사태와 수해에 대해 "시민여러분들에게 닥칠 고통과 불편, 불안을 미리 예측하고 대비하지 못한 점, 깊이 사과드린다"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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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는 1962년 7.8%였던 불투수층이 2009년 47.9%까지 늘어나면서, 홍수 유출량이 5배가량 증가한 상태다. 따라서 하수관거를 아무리 늘려봐야, 도시화에 따른 유출량의 증가가 지속된다면 대책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지구단위별로 (또는 건물별로) 우수 유출 총량제를 도입하는 등 홍수의 유출을 줄이는 시설들이 도시계획 과정에서부터 의무화되어야 한다.

100mm/h 강우 대책이 하수관거를 통한 배수만이 아니라, 빗물의 저류, 지하수의 충전 등을 통해서도 모색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번 홍수 피해의 상당부분이 관로와 무관한 곳에서 발생했다는 것을 고려하면, 하수관거에서 도시계획과 빗물 유출 저류에 관심을 돌려야 할 때다.

다섯째, 사방댐을 대대적으로 건설하겠다는 것도 우려스럽다. 최근 수년간 전국에 걸쳐 조성된 수천 개의 사방댐들이 흉물로 전락한 채, 사실상 유명무실한 상태로 방치되어 있다. 한국의 지질과 지형 특성상 토사유출량이 막대하기 때문에, 한 해를 넘기지 못하고 토사로 가득 차 버리기 때문이다. 계단식 계곡을 만든다는 것 등도 산지에서의 불필요한 공사만 남발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특히 fast track(동시 설계·시공)을 하겠다는 데, 이는 사회적 감시와 견제조차 불가능하게 할 가능성이 크다. (우면산 산사태 현장에는, 서울시가 사업을 시행케 하겠다는 산림조합중앙회의 공사장도 포함되어 있었다)

여섯째, 서울시는 졸속의 대책을 발표하기에 앞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원인 조사를 실시하고, 수해 대책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었어야 했다. 서울시에 가까운 전문가들로 피해조사를 일방적으로 실시하고, 납득되지 않는 대책을 강행하면서 시민의 동의를 구하기는 어렵다. 이런 절차라면 사업의 결과도 역시 긍정적이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서울시의 조급한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10년 동안 22조 원이 들어가는 계획을 며칠 만에 발표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 이런 상투적인 대책들은 수해 대책도 되기 어려울뿐더러, 거대한 토목 공사판이 되어 세금만 축낼 것이라는 점에서 여러 가지로 해악이다.

거듭 요청드리는데, 서울시는 수해 대책에 대한 부담과 책임을 내려놓고 시민들과 함께, 사회적 합의를 통해 극복하겠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과도하게 집중된 서울시의 정책 결정과 집행에 대한 권한을 기초 지자체로 대폭 넘기고, 시민들의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 이를 통해 수해대책의 현장 대응 능력을 키우고, 지역에 맞는 정책을 세워야 한다. 치수정책에서도 민주화, 분권화는 추세다. 우면산 대책을 서울시 물관리국에서 세우는 것보다, 구청과 지역주민들이 나서 함께 고민하고, 계획하고, 집행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또한 비판적인 전문가들, 다양한 전문분야들의 협조를 구하기 위한 열린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보도자료로도 배포되었습니다.



#서울환경연합#오세훈#홍수#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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