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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977년 6월부터 1978년 6월까지 1년 동안 한국 DMZ에 주한미군으로 근무했다. 당시 그는 고엽제에 관련한 임무에 직접 관여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고엽제 후유증으로 심한 고통에 시달리고 장애자 판정을 받았다.

 

그는 다음 달 한국의 한 정당의 초청으로 입국하여 자신의 고엽제 피해상황에 대해 기자회견 등을 통해 한국 사회에 알릴 예정이었다. 그러나 그는 미국에서 자신의 고엽제 관련 질환 수술이 앞당겨져서 부득이 한국행을 연기해야 했다. 그래서 나는 당분간 한국에 올 수 없는 데이빗씨와 지난 며칠간 이메일로 그의 고엽제 피해와 관련하여 인터뷰를 했다. 다음은 그 인터뷰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 한국에서 군 생활은 언제, 어디서, 얼마나 했나?

"경기도 파주에 있는 캠프 하우즈에서 1977년 6월 13일부터 1978년 6월 13일까지 1년간 복무했다."

 

- 당시 당신의 계급과 임무는 무엇이었나?

"1959년 9월 3일생인 나는 당시 17살이었고 이등병이었다. 7개월은 유닛 폴리스(Unit Police)로 근무했고 나머지 5개월은 DMZ에서 야간 순찰업무와 기관총 사수를 했다. 나는 당시 보병연대에서 스티븐 실베시 중령과 리처드 키드 중사의 지시를 받고 있었다. 내 임무는 한국으로 침투를 노리는 북한군을 훼방하기 위해 전방관측소(GP)에서 한 달 동안 야간 순찰을 하는 것이었다."

 

- 언제부터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이 시작되었나?

"한국에서 돌아온 후 얼마 안 된 1979년부터 몸에 이상이 생기고 고통과 장애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 어떤 병인가?

"주치의 진단에 따르면, 지금 겪고 있는 장애는 100% 말초신경 장애질환과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가 원인이다."

 

- 한국에서의 군 생활과 연관이 있다는 근거가 있나?

"물론이다. 나는 100% 확신을 갖고 있다. 내 주치의인 안토니 포니토씨와 다른 의사들도 내 질환이 한국에서의 군 생활과 끊을 수 없는 관계에 있다고 확인해 주었다."

 

- 그런데 한국에서 당신 임무는 고엽제 살포와 직접 관련된 일이 아니었는데 왜 당신이 고엽제와 관련된 질환을 얻었다고 생각하나?

"고엽제의 수명은 14년까지 간다. 그래서 비록 내 임무가 고엽제 살포와 직접 관련 되지는 않았지만 나와 전우들은 DMZ에서 하루에 2시간 이상을 땅에 먼지와 뒹굴며 생활했다. 이것은 고엽제의 독성이 그만큼 심하다는 것을 방증한다."

 

- 이번 고엽제 사건과 관련하여 한국인들에게 당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리기로 마음먹은 때는 언제이고 그렇게 마음먹은 계기가 있었나?

"나는 5년 전부터 특별히 큰 통증에 시달렸는데 당시 내 주치의는 통증의 원인이 내가 한국에서 고엽제에 노출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 후 18개월 동안 정밀 검사를 받았는데 내 병명은 말초신경 장애질환으로 판명되었고, 이 질환은 사람이 고엽제에 노출될 때 생긴다고 주치의가 진단했다. 그래서 나는 이 일을 언론에 알리기로 마음먹었다."

 

- 고엽제에 노출된 것이 원인이라는 것에 대해 더 자세히 설명하면?

"지난 3년간 나는 고엽제에 노출되면 어떤 후유증이 생기는지 공부했다. 지난달엔 다른 주한미군 출신들과 1978년 캠프 캐롤(경북 왜관)에서 당시 미군들이 고엽제와 제초제 드럼통을 땅에 매장했고 1979년과 1980년엔 그것을 제거 했을 가능성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처음에 우리는 이 가정이 그럴 듯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다른 주한미군 전역자들과 이 주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수록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당시 어떤 사람들은 한 한국기자에게 한국에 미군이 핵 쓰레기를 매장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때 나는 다른 주한미군전역자들이 이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핵 쓰레기 드럼통엔 핵 쓰레기라고 표시되어 있고 이것을 매장할 때는 군 문서에 기록해야 한다) 관련 문서도 없는 상황에서 이 주장은 신뢰할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반면 당시 DMZ에 고엽제가 사용되었다는 기록은 확보할 수 있었다. 2006년 12월 미 국무부 차관보실에 제출된 보고서 <전술적 제초제의 시험, 평가, 저장에 관한 미 국방부 프로그램의 역사>를 보면 고엽제를 한국에서 1968년 '전술적 제초제'로 사용했다는 기록이 미 국무부와 보훈처의 기록에 나와 있다. 고엽제의 수명이 14년까지 가는 것을 고려할 때 내가 한국 DMZ에서 근무하던 1977∼1978년은 이 고엽제 수명의 영향 하에 든다."

 

"이 보고서는 전술적 제초제의 발전 역사를 논의한다. 이 전술적 제초제가 일반 상업용 제초제와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이 전술적 제초제가 베트남 외의 지역으로써 어느 나라에서 실험, 평가, 저장되고 사용되었는지를 논의할 것이다." - 위 보고서 3페이지

 

"동남아 이외 지역에서 전술적 제초제를 '군사목적'으로 사용한 것은 1968년 한국에서이다. 당시 한국과 미국은 DMZ 부근에 초목을 관리하기 위해 고엽제(Herbicide Orange와 Herbicide Blue)를 사용하는 데 동의했다." - 위 보고서 5페이지

 

"1968년 3월 4일 주한미군사령관은 한국의 초목을 조절하기 위한 프로그램의 하나로 전술적 제초제를 사용하도록 허가했다." - 위 보고서 51페이지

 

"한국군은 제초제를 뿌리는 임무를 할당 받았다. 한국군은 손과 기계를 이용해 1968년 4월 15일부터 28일까지 제초제를 뿌렸다... 이런식으로 약 7800 드럼(39만7800 파운드)의 제초제가 1560에이커에 살포되었다." - 위 보고서 52페이지

 

- "주한미군전역자 가운데 8500명 이상이 한국에서 근무한 것과 관련해 소송을 요구하고 있다"는데, 이 소송을 요구하는 이들의 소송사유가 대부분 한국에 있을 때 그들이 걸린 고엽제 관련 질환 때문이라고 보나?

"맞다. 내가 현재까지 얻은 정보에 의하면 이 소송을 요구하는 주한미군전역자들 대부분은 한국 DMZ 근무시 고엽제에 노출되었기 때문에 현재 고통을 받고 있고 그래서 소송을 요구 하는 것이다."

 

- 당신은 미 보훈처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한 지 6년 되었고, 당신의 주장을 검토하기 위한 공청회가 금년 8월 11일에 예정된 것으로 안다. 이 공청회에 대해 좀 더 설명해 달라.

"보훈처와의 공청회는 하나의 과정이다. 전역자들은 군대에서 얻은 질병과 관련하여 항소심에 가기 전에 보훈처를 상대로 소송을 해야 한다. 그래서 이번 건과 관련하여 항소심에서 최후판결을 얻기 까지는 향후 3∼5년이 더 걸린다."

 

- 당신의 질병과 DMZ 근무와의 상관관계를 증명할 수 있나?

"텍사스 전역자위원회가 보훈처를 상대로 내 사건을 다뤄줄 것이다. 또 내 주치의 안토니 포니토가 내 건강 상태를 증명해주는 4가지 의료문서를 갖고 있다. 또한 한국 근무 당시 내 상관이었던 실베시 장군과 리처드 키드 중사가 한국에서 내 임무에 대해 증명해 준 진술서를 갖고 있다."

 

- DMZ에서 당신의 군 동료였던 토마스 워커는 암으로 인해 피부에서 살을 40군데 제거했다는데 한국에서 고엽제 임무와 관련 있다고 생각하나?

"내가 워커로부터 들은 바에 의하면 현재 그는 보훈처 제도 안에서 누구보다도 많이 암 때문에 살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그의 암 발병은 DMZ 근무 시 고엽제에 노출된 것 이외에 다른 이유를 생각할 수 없다. 그러나 내가 한국에서 쓰인 고엽제의 후유증에 대해 알려주기 전에 그는 자기가 왜 이렇게 심한 암에 걸렸는지 몰랐다. 토마스의 부친은 장성 출신으로 명예를 중요시하는 분이다. 나는 토마스가 DMZ 근무 때문에 이러한 고통을 받고 있다고 확신한다."

 

- 당신은 "한 때 나는 전 세계에 (헌병이 아닌) 보병이 비무장지대에 들어 갈 수 없도록 제네바협약이 금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릴까 생각했다. 내가 한국 DMZ 근무 당시 미군들 중엔 보병이었음에도 북한군과 일반인들에게 은폐하고 속이기 위해서 팔에 헌병(MP: Military Police)완장을 차게 했다"고 진술한 적이 있는데?

"유엔 문서에 의하면 DMZ에 보병은 출입할 수 없고 헌병(MP)만이 할 수 있게 되어있다. 그러나 당시 보병들은 헌병완장을 지급받아 왼팔에 차고 헌병인 것처럼 행세했다. 그러나 당시 DMZ 전방관측소 GP 115와 GP 116에 근무했던 군인들은 보병이었고 헌병으로 훈련받은 적도 없다. 나는 당시 유닛 폴리스(UP)였지만 나 역시 폴리스 임무에 관한 훈련을 받은 적이 없다."

 

- 왜 미군은 보병을 헌병으로 위장시켜 DMZ에 출입시키려고 했나?

"북한군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더 많은 아군병력이 DMZ 안에 있으면 안정감을 느껴서 그런 것 같다고 추정할 뿐이다."

 

- 한국과 미국 정부에 고엽제 사용과 관련해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남은 고엽제를 제대로 옮기고 깨끗이 청소하라. 주둔군지휘협정(SOFA)을 개정해 한국인들이 미군 고엽제와 관련해 아무 제약 없이 조사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러한 사항은 한국과 미국 두 정부가 논의하여 결정해야 할 것이다."


#고엽제#주둔군지휘협정(SOFA),DMZ,비무장지대,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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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영국통신원,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폭력의 역사], [김성수의 영국 이야기], [조작된 간첩들], [함석헌평전],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저자. 퀘이커교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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