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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갯벌체험'이란 신조어(新造語)를 싫어한다. '갯벌체험'이란 미명(美名)을 붙여놓았지만, 거개가 갯벌에 '소금 뿌려 맛조개 잡기'를 이르기 때문이다.

 

'문화관광해설사'인 나는 관광철이 지난 요즘도 '갯벌체험' 문의 전화를 많이 받는다. 태안군청에 문의하면 나에게 떠넘기기도 하지만, 군청에서 발행되는 각종 관광 안내문에 내 연락 전화번호가 인쇄돼 있기 때문이다.

 

나는 친절 본위로 관광안내를 하며, '소금 뿌려 맛 잡기'의 부당성도 첨언(添言)한다. 태안군 내 펜션들의 홈피를 열어보면 거개가 '소금 뿌려 맛잡기'로 관광객을 유인한다. 내가 사는 '바람아래해수욕장'의 일부 펜션은 금방 달려가 '맛 잡기'를 하고 싶도록 광고를 하고 있다.

 

일설(一說)에 따르면 '맛 구멍'에 소금을 한번 뿌리면 그 주변 사방 1㎡의 갯벌이 죽는다고 한다. 언뜻 생각해도 개펄(펄땅) 깊숙한 구멍 속에 숨어 사는 '맛'의 머리에 그 짠 맛소금을 뿌려대는 건 마치 사람의 머리에 염산(鹽酸)을 뿌려대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소금 폭탄을 맞은 '맛'이 참다못해, 죽지 못해 머리를 내밀고, 죽기 살기로 치솟아 올라오는 것을 인간들이 잡아채는 것이다.

 

내가 사는 마을의 '바람아래해수욕장' 갯벌 아래엔 무려 8개의 마을 공동양식장이 있다. 해마다 호당(戶當) 수십 만 원의 경비를 투자해, 종패(種貝=바지락 새끼)를 넣는다. 그런데 많은 조개가 죽는다고 마을 사람들이 걱정을 한다.

 

나는 외지인들이 몰려와 '맛잡기'하면서 뿌린 그 많은 양의 소금 가루가 갯벌을 죽여 바지락도 죽는데 일조(一助)를 한다고 생각한다. 논어에 이르기를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했다. 즉 '지나 친 것은 아니함만 못하다'는 말로, 쉽게 풀이해 '매사(每事)가 지나친 것은 좋지 않다'는 뜻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나치게 뿌려대는 맛소금에 갯벌이 염도(鹽度)의 균형을 잃어, 그 일대의 어패류가 죽고, 갯벌의 생태계를 망친다는 걸 우리 모두가 인식해야 한다. 몇몇 사람이 소금 뿌려 '맛잡기'를 한다며야 '한강에 침 뱉기'로 문제가 없다지만, 날이면 날마다 많은 인파가 몰려와 갯벌에 많은 양의 소금을 뿌려댄다면 이건 심각한 문제다.

 

한 예로 내가 사는 마을의 '바람아래해수욕장'엔 거의 매일 수십 명에서 수백 명의 외지인이 몰려와 갯벌에 엎드려, 소금 뿌려 '맛 잡기'를 한다. 이제 갯벌을 죽이는 '소금 뿌려 맛잡기'는 권유하기보다 단속해야 할 때다.

 

이젠 장구한 미래를 생각해, 기름피해만 걱정 할 일이 아니고, 내 마을의 젖줄인 양식장과 갯벌을 보전(保全)하기 위해 '맛 잡기' 단속도 펼칠 때다. 내가 사는 '바람아래해수욕장' 마을에 내가 귀향하던 5년 전만 해도 맛의 크기가 보통 엄지손가락 크기였는데, 날마다 외지인들이 철새 떼처럼 달려들어 소금치고 잡아대니 요즘엔 갓난 애기 새끼손가락 크기만 한 것만 잡힌다. 

 

긴말 필요 없이 민․관이 나서 '소금 뿌려 맛 잡기'는 단속하고, 삽으로 파서 잡게 홍보하고, 마을양식장이나 어촌계에선 갯벌 입구에 경고게시판을 세워야 한다. 갯벌에 소금 뿌리기는 갯벌의 생물을 죽이고, 갯벌 생물의 먹이인 프랑크톤의 생성을 막아 주변 양식장에 위해(危害)가 된다. '소금 뿌려 맛 잡기'는 '갯벌체험'이 아닌  '갯벌 죽이기' 작전임을 재강조 해야겠다.

 

노파심에서 첨언(添言)한다면 소금 뿌려 '갯벌 죽이기'와 '맛 종자 말리기'에 내 경고가 '바다 살리기' 운동임을 우리 모두가 인식해야 할 때다.

덧붙이는 글 | 편완범 기자는 서산.태안환경연합 자문위원이자, 해양환경지킴이 태안군단장(해양경찰청)입니다. 


#원두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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