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근·현대 국가들은 개발과 재개발을 통해 몸집을 키웠다. 식민지 주민들의 삶터를 파괴하

고 철도를 부설하고 신작로를 개설했던 제국주의 국가도, 달동네 판자촌을 부숴버리고 고층 아파트 건설을 주도했던 독립국가도, 개발과 발전이란 명분 앞세워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했다.                                                                                                         

                                                                                                                      

철도 건설로 삶터를 상실하고 저항하던 사람들은 제국주의 군경의 총칼에 처형당했고, 판자촌 철거로 삶터를 잃은 사람들은 생존권을 외치다 전경들의 공권력 앞에 무너지고 말았다. 국가란 무엇이고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걸까. 법은 무엇이고 누구를 위해 필요한 걸까.

 

서울 도심 재개발 지구의 망루에서 벌어진 두 건의 살인 사건. 16세 철거민 소년과 20대 전경의 죽음.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로 기소된 소년의 아버지. 민변을 유령처럼 떠돌던 사건을 맡게 된 국선변호사. 피고 대한민국, 청구금액 100원. '21세기 낙원구 행복동'에서 벌어지는 첨예한 대립. 각종 법규로 업그레이드된 권력과 신념으로 뭉친 변호인단이 법정에서 마주 선다. (책 속에서)

 

<소수의견>은 실화가 아니다. 등장인물 역시 실존했던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산 참사'란 실화가 생각난다. 망루에서 희생된 사람들이 떠오른다. 그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그들은 왜 죽어야했을까. 대한민국 국민이었던 그들은 국가로부터 어떤 보호를 받았을까. 21세기 난장이들은 왜 망루 위에 서지 않으면 안 되었을까.

 

낙원구를 낙원이라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 행복동에서 행복을 누리며 사는 사람들도 어느 날 갑자기 삶터에서 밀려나 망루로 올라갈 수 있는 사회. 경제와 이윤을 앞세우고 개발과 재개발의 장밋빛 미래에 현혹되다 보면 어느 날 갑자기 난장이가 되어버린 사람들의 삶은 일반인들의 관심 밖에 있다. 그들도 우리들처럼 가족들과 오순도순 살아왔고, 자신의 삶터가 낙원이길 바라고 행복을 꿈꾸며 살았던 사람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소설은 망루에서 시작된다. 망루 꼭대기에서 경찰의 집단 폭행을 당하는 아들을 구하려다 전경을 죽게 만든 아버지, 경찰에 폭행당했던 아들 또한 병원에서 숨을 거둔다. 사건 현장은 누군가의 지시에 의해 흔적이 지워지고, 아들의 죽음 또한 경찰이 아닌 용역깡패의 행위로 둔갑을 한다. 아들을 구하려다 전경을 죽인 아버지는 구속 된다.

 

망루 위에서 아들을 잃고 철창에 수감된 아버지의 말에 귀 기울이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힘없는 이들의 <소수의견>이 맥없이 허공으로 흩어져 사라져버리는 일은 일상적으로 되풀이되기 때문에.

 

소설 속의 변호사는 '내 아들을 죽인 건 경찰'임을 밝혀달라는 아버지의 말을 뿌리칠 수 없어서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건다. 경찰에 의해 은폐되고 검찰에 의해 조작되고 권력에 의해 묻혀버린 진실을 밝혀내기까지 숨 막히는 법정 공방이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감 있게 이어진다. 숨 막히는 공방과 반전을 거듭하다가 마지막에 어렵사리 승리를 거둔다.

 

하지만 그 승리의 기쁨은 잠시 뿐. 경찰의 죄를 덮기 위해 폭력배를 회유한 검사는 법정 공방에서 패배한 후 검찰을 나와 '전관예우' 덕에 성공적인 변화사의 길을 걸어가고, 억울한 죽음의 실체가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뉴타운 공사는 계속된다.

 

70년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의 주인공들이 겪었던 고초가 21세기 현실 속에서도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 1970년대 '낙원구 행복동'의 난장이 아버지는 벽돌공장 굴뚝에서 자살을 하고, 21세기 은평구 난장이 아버지는 는 망루 위에서 경찰에 맞서 저항하다 구속된다.

 

70년대 난장이들의 후예인 21세기 난장이들은 망루 위에서 묻는다. 국가란 무엇인가. 법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공권력은 왜 난장이들을 포위하고 있을까. 재개발을 위해서 난장이들의 삶의 터전쯤은 산산이 부서져버려도 좋은 것인가.

덧붙이는 글 | 손아람 / 들녘 / 2010.4 / 12,000원


소수의견

손아람 지음, 들녘(2015)


#용산#재개발#철거민#난장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