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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①] 지난 17대 대선 당시,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와 대통합 민주신당 정동영 후보 그리고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교육정책 노선은 극렬히 대비되었다. 권영길 후보는 "학벌, 학력차별금지법 제정으로 학벌사회를 해소하고 교육재정을 7%로 확충"하는 등 정부의 규제와 역할을 크게 강조했던 반면, 정동영 후보는 중도 좌파적인 입장에서 "자율과 규제"를, 이명박 후보는 "시장원리를 통해 교육경쟁력을 강화"하겠다고 주장했다.

2003년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서 '학벌주의 타파 주장이 질 높은 교육을 포기하자는 주장이므로 적절치 않다'는 주장에 대한 동의 정도를 조사한 결과 전체 집단의 25.9%가 찬성했고 47.4%는 반대하였다. 또 2007년 사회동향연구소 대국민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 63%가 국공립대학 통합전형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었다. 교육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이 같은 인식에도 불구하고, 당시 국민들이 이명박 후보를 택했던 배경으로 다수의 언론들은 노무현 정부의 실정에 대한 반감을 지적했다.

[사례②] 한국에서는 정치 논리에 따라 교과부장관의 임명과 임기가 결정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양정호의 '한국 교육부 장관에 관한 연구'(한국교육행정학회 제22권, 제4호, 2004)에 따르면 다른 부처와 마찬가지로 역대 교과부 장관에 임명되는 경우나 경질되는 경우에 그 이유가 명확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대통령으로부터 아무런 연락도 없이 임명 발표 직전에 구두로 연락이 되거나 또는 경질되는 경우에도 갑자기 언론을 통해서 알게 되는 경우도 자주 발생하였다. 그러다보니 교육부 장관은 원래 임기가 길지 않은 자리라는 인상을 주며, 장관으로 임명된 후에도 업무수행에 적극적이지 못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지적되었다.

[사례③] "서울시교육청의 원안에 따르면 고교선택제 1단계(서울 전 지역 지원·정원 20%)와 마찬가지로 2단계(거주 학군 내 지원)도 '무작위 추첨'을 실시할 방침이었다. 그러다 보니, 1단계 추첨에서 양천구 한가람고의 경우 일반전형 9.1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하면서 13개 자율고 중 가장 높은 경쟁률을 보이는 등 교육특구 쏠림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명문고를 노리고 목동으로 전입해 온 학부모 및 학생들의 원성이 빗발쳤다.

이에, 서울시교육청은 2단계 추첨 열흘 전인 4일 돌연 학부모들에게 가정통신문을 보내 2단계 배정방식을 '교통 편의를 고려한 추첨'으로 변경한다고 고지했다. 시교육청은 갑작스런 변경 사유에 대해 "원거리 학교에 배정받는 학생이 너무 많아 통학 혼란이 예상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지만 목동·중계동 주민들의 원성에 떠밀렸다는 추측이 지배적이다." - <강서양천일보> 2009년 12월15일자 '고교선택제 '급커브'에 목동주민 '반색''

위 내용은 교육문제가 교육적 접근이 아닌 정치적인 논리로 처리되었던 대표적인 몇 가지 사례다. 흔히 교육은 '중립성'을 갖춰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즉, 교육이 정치·종교권력이나 사상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하며 자주성과 독립성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교육기본법 제6조에서는 "교육은 교육 본래의 목적에 따라 그 기능을 다하도록 운영되어야 하며, 정치적 파당적 또는 개인적 편견을 전파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용되어서는 아니 된다"라고 교육의 중립성을 명시하고 있다. 이는 교육 본연의 목적과 기능에 충실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 들어서 한국 사회의 교육문제가 정치적 문제로 귀결되는 사태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물론, 각 정당의 교육정책 및 철학들을 고려했을 때 교육문제에 있어 정치적인 판단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도 중요한 것은 정책의 내용이지, 정치논리나 정당 그 자체가 교육제도의 호불호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불붙은 교육감 선거 출마자격 완화 문제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이 지난 14일 오전 경기도 수원 경기도교육청에서 신년 기자회견을 갖고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이 지난 14일 오전 경기도 수원 경기도교육청에서 신년 기자회견을 갖고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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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 뽑는 각 지자체 교육감 선거 출마 자격을 대폭 완화하려는 정치권의 움직임이 가시화 되면서 교육계가 뜨거워지고 있다. 오는 2월,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될 지방교육자치법 개정안에 따르면, 교육감과 교육위원 출마자의 교육 경력 자격이 대폭 완화되고, 교육 행정가나 학부모도 일정 기간 활동하면 출마할 수 있게 된다.

<세계일보>는 지난 26일 '[어떻게 보십니까] 교육감 출마자격 완화'란 기사를 통해 교육감 출마자격과 관련된 찬반 입장을 조명했다. 기사에서 김장중 교육사회연구소 소장은 "오늘날 필요한 교육감은 단순히 오랜 교육경력자보다 전문성을 가진 CEO형 인물"이라며 "고작 5년 경력의 풋내기 교사와 학교 행정실 직원도 교육감이 될 수 있다는 현 제도는 객관성과 합리성, 타당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 모임 대표 최미숙씨 역시, "교육의 전문성과 교육행정의 전문성은 구별되어야 한다"며 "교육에 열의와 청렴하고 도덕성이 검증된 개혁적이며 추진력이 겸비된 유능한 인사들이 입후보할 수 있도록 교육감의 문호를 개방해야 한다"고 이야기 했다.

반면, 송기창 숙명여대 교육학부 교수는 "교육감 후보자의 자격으로 5년 이상의 교육경력을 요구하는 것은 교육의 전문성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라며 "교육감의 자격기준을 폐지하면 교육을 다른 지방사무로부터 분리할 필요가 없어지고, 교육감을 따로 뽑아야 할 이유도 없어지며, 결국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지방교육자치도 불가능해진다"고 설명했다.

이명균 한국교육정책연구소 연구실장 또한, "교육의원 및 교육감 후보자의 정당경력 제한 폐지 및 축소, 교육의원의 정당추천 비례대표제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법리를 위배"하는 것이라며 개정안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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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찬성과 반대 입장의 논리는 분명하다. 교육감 출마자격 완화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교육경쟁력 강화'라는 목적 하에 유능한 CEO형 인재를 도입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최근 마이스터고인 수도전기공고 교장에 별다른 교육경력이 없는, 한국 전력에 입사해 기술기획부장-통신운영팀장-배전운영처장 등을 역임한 '한전맨' 강희태씨가 임명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에 반해, 반대쪽 입장은 교육감 자격기준이 바로 '교육의 전문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최근 정부는 마이스터고를 유망 분야의 특화된 산업수요와 연계하여 청년 명장(Young Meister)을 양성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마이스터고와 같은 특수목적고가 청년명장이라는 도구적 목적 달성이라는 명제 하에 '전인교육'이라는 교육 본연의 기능을 상실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다시 말해, 학교 교육의 형평성을 갖추기 위해 이를 중재할 수 있는 교장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난 23일자 <조선일보> '마이스터고에 또 '경영인 교장''기사에 따르면, "현실은 점차 'CEO교장 모시기'가 마이스터고로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교육감 출마자격 완화, 이념 대결의 불씨 될까

더 심각한 것은 교육의 '중립성 확보' 문제이다. 지난 4일 <한겨레>는 '교육감 출마 자격완화' 논란 확산'이란 기사를 통해 "교육감 후보의 자격 요건이 완화됨에 따라 정치인 등 상대적으로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인사들이 대거 교육감 후보로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고 밝혔다. 이 기사는 여당에는 황우여 의원이나, 야당에서는 장상 전 이화여대 총장 또는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이 거론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작년 서울시교육감 선거에서도, 교육 정책대결이 아니라 '보수 대 진보'의 지나친 이념 대결로 치닫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 바 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나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자신에게 유리한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이념선거를 부추기면서, '정치선전장'을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만약, 이번 교육자치법 개정안이 통과되어 교육감 출마자격이 대폭 완화될 경우 교육감 선거의 정치화가 크게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정치적 인지도가 높은 인사가 교육감으로 출마할 경우, 정책보다는 인물과 정당의 이념 대결로 선거가 흐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교육경쟁력, 중립성 확보해야 가능하다

 지난 19일 오후 경기 수원시 경기도교육청에서 열린 '2010 경기도학생인권조례 종합 공청회'에서 참석한 학생과 학부모들이 조례 제정에 대한 토론자들의 토론을 경청하고 있다.
 지난 19일 오후 경기 수원시 경기도교육청에서 열린 '2010 경기도학생인권조례 종합 공청회'에서 참석한 학생과 학부모들이 조례 제정에 대한 토론자들의 토론을 경청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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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우리는 지난 대선을 통해, 교육정책의 수렴과정이 정치적 논리로 결정되어 버리는 현상을 목도했다. 국공립 통합전형이나, 학벌주의 타파를 위한 교육정책이 필요하다고 수긍하면서도 단지 노무현 정부에 대한 심판이라는 이유로 전혀 다른 교육 노선을 택했던 것이다.

정치논리가 교육현장을 지배하고 있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교육경쟁력 확보를 위해 교육감 선거 자격을 완화해야 한다는 보수진영의 주장은 다시 한 번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교육행정의 전문성과 추진력을 갖춘 인재를 통해 교육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것인데, 이것은 교육이 정치적·이념적 판단으로부터 일정부분 중립성을 확보할 수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최근 불거지고 있는 경기도교육청의 학생인권조례와 같이 정치적·이념적 갈등으로 인해 교육정책이 제대로 추진되지 못했던 사례는 한두 번이 아니다. 학생인권조례 사항의 구체적인 문제점과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전교조의 논리'니 '정치적 행보'라는 이념적 비난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단지 5년이라는 교직 경력이 교육 행정의 전문성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다. 1년 남짓한 경력이라도, 교육에 대한 열정과 소신 있는 철학을 갖춘 인재도 있을 수 있다. 문제는 이번 개정안이 교육경쟁력 강화라는 눈앞의 성과에 매달려 교육 본래의 목적 상실과 교육의 정치화를 초래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방교육자치법 개정안은 자기 파괴적 논리

교육감이나 교육위원 후보 지원자격 완화를 통해 교육행정 전문성을 갖춘 인재를 확보하겠다는 보수진영의 취지는 공감할 만하다. 하지만 이를 논하기에 앞서, 과연 우리사회가 교육행정과 교육현장에 대한 경험과 감각을 두루 갖춘 인재를 선발 할 수 있는 충분한 기반을 갖추고 있는지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보수진영의 말마따나 교육감 출마 자격을 완화하고 교육위원 정당추천비례제를 추진할 경우, 과거의 사례를 돌이켜 보았을 때 교육정책 대결이 아니라 정치적·이념적 대결로 치닫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 같은 상황에서 과연 개정안의 취지처럼 교육행정의 전문성을 갖춘 인재가 선출될 수 있을 것인가. 오히려, 정치적인 수완이나 인지도가 높은 인물이 당선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즉, 지금의 보수진영의 주장은 교육행정의 전문성을 갖춘 인재를 뽑겠다는 자신의 말조차 뒤집어 버리는 '자기 파괴적인' 논리이다. 교육행정의 전문성을 갖춘 CEO형 인재를 뽑겠다는 애초의 취지를 달성하기 위해 지금 필요한 것은, 후보 자격의 완화나 교육의원 비례대표제의 추진이 아니라 바로 정책대결을 통해 사회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하는 일이다. 개정안 추진 여부를 논의하는 데 급급해 할 것이 아니라, 이러한 사회적 기반 확보를 위한 대안 마련이 적극적으로 검토되어야 한다. 


#지방교육자치법개정안#교육의중립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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