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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우도(尋牛圖)는 소를 찾는 그림이다. 소를 '자신의 본디'로 비유한 불교(佛敎)의 대표적인 선종화(禪宗畵)로 대웅전 등 절의 주요한 건축물 바깥벽에 그려진다. 길 떠난 동자(童子)가 얼마간 헤매다 소를 찾아 끌고 집에 돌아오는 여정(旅程)에서 마침내 소도 자신도 모두 빈 것, 즉 공(空)임을 인식한다는 얘기가 10개의 그림에 차례로 그려져 있다.
고문의 尋자 손[又]이 3개 들어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한대자전에 실린 찾을 심자의 옛글자.
▲ 고문의 尋자 손[又]이 3개 들어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한대자전에 실린 찾을 심자의 옛글자.
ⓒ 강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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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송광사의 어느 절집에서 기억도 아득한 어린 시절 이 그림을 보고 오래 그윽한 느낌에 사로잡혔던 기억이 있다. 소를 찾아 길들여 기쁜 마음으로 귀가(歸家)하는 것이 이야기의 전부가 아니라는 점이 당시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소가 스러지더니 마침내 아이마저 사라지고, 물 흐르고 꽃 피는 수류화개(水流花開)의 신비로운 경지가 펼쳐지는 그 아찔한 반전(反轉)은 그 후로도 자주 머릿속에 떠올랐다. 자주 쓰이는 글자는 아니지만 그런 까닭에서인지 이 찾을 심(尋)자가 지금까지도 늘 곁에 있는 어떤 것인 양 필자에겐 친근하다.

'심상치 않다'는 말을 우리는 많이 쓴다. 대수롭지 않고 예사롭다는 뜻의 '심상하다'의 반대되는 말이다. 뭔가 범상(凡常)하지 않다는 '심상치 않다'의 말 뿌리 즉 어근(語根)이 심상(尋常)이다. 보통이고 일상적인, 평범하다는 단어다. '심상하다'는 말보다는 '심상치 않다'가 주로 활용된다.

심우도에서와 달리 이 심상에서 심(尋)자는 '보통, 평소'등의 뜻이다. 쓰다, 생각하다, 토벌(討伐)하다, 거듭하다 등과 함께 '깊다'는 뜻도 있다. 가리키는 바가 퍽 넓다. 또 깊을 심(深)자와 발음이 같아 왠지 유현(幽玄)한 정서를 갖게 한다.

자원(字源)을 살피면 이런 까닭을 짐작할 수 있을까? 지금 우리가 쓰는 해서체(楷書體)의 심(尋)자는 '좌우(左右)를 헤아린다'는 뜻이다. 그 전 글자인 전문(篆文)의 모습은 해서체 글씨에 '여러 번 거듭하다'는 의미를 가진 부호(符號)가 더 들어있다.

좌고우면(左顧右眄)이라는 숙어(熟語)가 있다. '왼쪽을 돌아보고, 오른 쪽을 곁눈질한다'는 뜻으로 망설이다 해야 할 바를 이루지 못한다는 투의 부정적인 의미를 품는다. 이와는 달리 좌우를 헤아린다는 심(尋)자는 뭔가를 이루기 위한 탐구적인 뉘앙스까지를 능히 보듬었다. 탐우도(探牛圖) 또는 색우도(索牛圖)가 아닌 이유를 알겠다.

마저 마디 촌(寸)자까지를 살펴야 이 심(尋)자의 제 맛을 볼 수 있다. 손목에서 맥박(脈搏)이 뛰는 곳까지의 한 치 길이를 이르는 이 글자는 손의 뜻인 우(又)에 점 한 개, 또는 한 일(一)자를 더한 모양이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의 길처럼 사람 몸이 길이의 단위가 되는 글자다.

길이 단위의 본디라고 할 이 촌(寸)자는 당연히 척도(尺度), 자 등의 뜻을 겸한다. 헤아리다, 작다는 뜻부터 '마음'이라는 뜻도 포괄한다. 뇌물(賂物)의 의미로까지 오염된 촌지(寸志)는 실은 마음의 뜻이라는 예쁜 단어다.

토막해설-찾을 심(尋)
 지금과 달리 옛글자에만 붙어있는 터럭 삼(彡)자는 세 번 또는 여러 차례 거듭한다는 의미를 더해 이 글자의 속뜻을 형성했다.
손의 모습인 돼지머리 계(彐)에 장인 공(工)이 붙어 왼쪽 좌(左)가 되고, 입 구(口)가 붙어 오른쪽 우(右)가 되는 것을 보자. 그 아래 마디 촌(寸)까지 합쳐져 절묘한 형상의 글씨가 생겼다. 심사(心思) 깊은 능란한 화가가 빚어놓은 추상화 한 폭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러난 기발(奇拔)한 착상(着想)과 뛰어난 형상의 글씨가 '평범함'을 기린다면, 정녕 평범함은 더 참한 속을 담고 있는 것이겠다. 간체자는 寻, 손으로 헤아리는 모습으로 읽을 수 있다.


암중모색(暗中摸索)하듯 오리무중(五里霧中)의 혼돈 속을 양손 끝없이 휘저으며 헤아려 옳은 것, 의로운 것을 찾는 진지한 모습이 오롯이 스민 이 단어 심(尋)이 즉물적(卽物的)이고 현시적(顯示的)인 현대의 흐름과 어떤 대조(對照) 또는 조화(調和)를 빚을지 생각한다.

생활과 교육에서 한자(漢字)를 보기 어려워진 요즘 이런 '착한 뜻' 품은 글자, 다양한 스펙트럼을 펼치는 글자를 아는 이가 갈수록 드물어질 터다. '찾는다'는 우리말은 완전하고 깔끔하다. 또 우리말 한자어 심인(尋人), 심사(尋思) 등으로 아울러 쓸 수 있는 찾을 심(尋)자도 너끈히 거느린다면 얼마나 국어(國語)가 깊고 향기로울까.

'님의 침묵'의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 1879~1944) 선생이 일제 치하(治下) 서울 성북동에 집을 짓고 붙인 이름이 심우장(尋牛莊)이다. 조선총독부 건물을 보기 싫어 남향(南向)을 버리고 부러 북향집으로 지었다는 얘기도 있는 이 집에서 만해가 결국 찾은 소는 무엇이었을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민사회신문 한자교육원 예지서원(www.yejiseowon.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이 신문의 논설주간으로 한자교육원 원장을 겸임하고 있습니다.



#심우도#불교#한자학#문자학#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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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등에서 일했던 언론인으로 생명문화를 공부하고, 대학 등에서 언론과 어문 관련 강의를 합니다. 이런 과정에서 얻은 생각을 여러 분들과 나누기 위해 신문 등에 글을 씁니다. (사)우리글진흥원 원장 직책을 맡고 있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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