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비정규교수 부당해고를 철회하라."
"대학은 단체협약 위반에 대해 사과하라."

비정규직 근로자의 계약기간을 2년으로 제한한 법이 지난 1일부터 시행돼 보완책 마련이 시급했지만, 국회에선 미디어법에 밀려 논의가 아예 중단됐다. 이 바람에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불안정한 신분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난관에 봉착한 비정규직 해법은 한 치 앞도 나가지 못한 채 곳곳이 암운에 갇혀 있다. 대학도 예외는 아니다.   

"비박사 시간강사 임용 않겠다" vs. "즉각 사과하고 철회하라"  

비정규교수들의 1인시위 영남대 비정규교수노조가 22일부터 '비박사 부당해고 철회' 1인 시위를 펼치고 있다.
▲ 비정규교수들의 1인시위 영남대 비정규교수노조가 22일부터 '비박사 부당해고 철회' 1인 시위를 펼치고 있다.
ⓒ 영남대 비정규교수노조

관련사진보기


긴 여름방학에 들어갔지만 대학사회가 술렁이고 있다. "비정규보호법 악용으로 졸지에 수많은 강사들이 길바닥에 나앉게 됐다"며 한 지방대학 비정규교수들의 1인 시위가 일주일째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지역 언론조차 온통 미디어법에 굳게 갇혀 삶과 학문을 둘러싼 대학사회의 '시간강사 부조리극'에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여름방학으로 캠퍼스가 비교적 한산한 영남대학교가 최근 비정규교수들과 대학 간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다. 대학 측이 지난 9일 각 단과대학과 독립학부에 발송한 '2009학년도 제2학기 시간강사 임용추천 요청' 공문이 발단이 됐다.   

영남대는 공문을 통해 '최근 4학기 연속 재임용자 중 강의시간 주 5시간 이상자, 박사 학위 미소지자 등은 강사로 임용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밝힌 것.

대학 측은 "최근 시간강사의 한 시간 수업은 세 시간 노동에 해당된다는 판례를 원용하면 비정규보호법 위반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있어 이러한 규정을 만들었다"며 "나머지 규정은 강의의 질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시행 취지를 일부 언론에 흘렸지만 영남대 비정규교수노조(분회장 하재철)가 발끈하고 나섰다.

이 대학 비정규교수노조는 20일 대학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비박사 부당해고 철회' 성명을 내고 2학기 시간강사 임용추천 규정철회를 요구하는 1인 릴레이 시위에 돌입했다. 영남대 비정규교수노조 측은 "대학의 비정규보호법 악용, 단협위반, 부당해고 조치로 인해 졸지에 100명 이상의 비정규교수가 길바닥에 나 앉게 됐다"며 비정규교수 부당해고 철회를 촉구하는 1인 시위를 22일부터 펼치고 나섰다.

전국 비정규교수노조 "철회하지 않을 경우 총장 퇴진까지 투쟁"

바빠진 영남대 비정규교수노조 홈페이지 최근 대학 측의 '2학기 시간강사 임용추천 요청' 공문과 관련해 영남대 비정규교수노조의 투쟁활동이 활발해졌다.
▲ 바빠진 영남대 비정규교수노조 홈페이지 최근 대학 측의 '2학기 시간강사 임용추천 요청' 공문과 관련해 영남대 비정규교수노조의 투쟁활동이 활발해졌다.
ⓒ 영남대 비정규교수노조

관련사진보기


이 대학 700여 비정규교수를 대표한 비정규교수노조 대표들은 성명에서 "대학의 조치는 비정규보호법의 취지와 전혀 맞지 않는 불합리한 것"이라며 "대학 측의 비정규 보호법 악용과 단협 위반, 부당해고 조치로 수많은 비정규교수가 길바닥에 나앉게 됐다"고 주장했다.

또한 노조 측은 "면담에서 학교 측이 주 5시간 이상 강의자는 단시간 근로자에 해당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이유로 들었다"며 "학교 주장을 따른다면 불가피한 사유가 없이 재임용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명백한 부당해고"라고 덧붙였다.

한국비정규교수노조도 가세했다. 20일 '영남대학의 비정규교수 부당해고 철회를 촉구한다'는 성명에서 "'기간제 및 단시간노동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은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불합리한 차별을 시정하고 그들의 노동조건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며 "그러나 영남대학은 오히려 교묘하게 법을 악용하여 사회적 모순을 심화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고 비난했다.

또한 성명은 "계약기간이 정해져 있다고 할지라도 재계약이 이루어진 경우에는 불가피한 사유가 없는 한 해고할 수 없으며, 만약 해고했을 경우 이는 부당해고에 해당한다"며 철회를 강력히 요구했다. 비정규교수노조는 "만약 철회하지 않을 경우 대학총장 퇴진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노조 사무국장 "비정규교수 바라보는 천박한 시각에서 비롯"

윤병태 영남대 비정규교수노조 사무국장은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지난 2001년에 체결한 대학과의 단협과정에서 근로조건, 특히 근로기간을 변경하고자 할 때는 사전에 협의 또는 합의하도록 한 조항을 학교 측이 명백히 위반했다"며 "대학이 일방적으로 강사들을 해촉한다면 모든 수단을 동원해 강력히 저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일부 학과에서도 이번 학교 측의 방침에 불만을 표시하는 사례가 있을 정도로 학교가 지나치게 오버하는 경향이 나타났다"며 "실용학문을 다루는 일부 예술학과의 경우 부분 철회가 이뤄지고 있지만 한 학기 강의하는 비정규교수가 평균 700여 명임을 감안하면 학교 측 안이 관철될 경우 미치는 영향과 그로 인한 저항은 매우 클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교무처장에 이어 총장과도 면담을 했지만 이렇다 할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회적 약자인 비정규교수 문제를 바라보는 천박한 시각에서 비롯된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며 "다른 대학 비정규교수노조 분회와 시민사회단체들과도 연대해 투쟁을 지속해 나갈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이는 비단 영남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비정규교수노조가 구성되어 있지 않은 다른 대학들은 유사한 학내 문제가 외부로 노출되지 않고 있을 뿐, 벙어리 냉가슴 앓듯 고민만 하는 시간강사들이 많다.

최근 비정규직 문제가 전 사회적으로 이슈화되면서 한국비정규교수노조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이 같은 고민의 글이 자주 눈에 띈다. 비정규직법을 악용하고 있는 대학들이 있음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시간강사들 "너무 황당하고 억울... 누구라도 붙잡고 매달리고 싶다"

비정규직법에 갇힌 시간강사들 어떡해... 한국비정규교수노조 홈페이지 게시판.
▲ 비정규직법에 갇힌 시간강사들 어떡해... 한국비정규교수노조 홈페이지 게시판.
ⓒ 한국비정규교수노조

관련사진보기


한 시간강사는 "학과장으로부터 비정규직법안으로 인해 다음 학기 배정받은 강의를 취소해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며 "학교의 방침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는 문제를 공론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하소연했다.

"2학기 강의를 맡을 수 없을 것 같다는 통보를 받은 시간강사"라고 신분을 밝힌 또 다른 강사도 불안한 심정을 이렇게 피력했다. 

"강의가 좋아서 강의를 하고 있고, 학생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 누구보다도 열심히 강의하고 있는 사람들이 전업강사 아닐까요? 그런데,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 강의도 병행하는 비전업강사들은 주당 몇 시간을 하든 상관없고, 강의를 주업으로 알고, 누구보다 열심히 하고 있는(유일한 생계수입원이기도 한) 사람들은 무조건 내쫓는 지금의 현실이 너무 원망스럽고 억울합니다."

이밖에 "너무도 황당하고 억울한 마음에 누구라도 붙잡고 매달리고 싶다. 속이 타들어 간다"는 이 시간강사의 절규에 가까운 호소는 비정규직법에 갇힌 많은 시간강사들의 마음을 대변해 주는 듯했다.   

영남대처럼 미리 학과에 통보하거나 공론화하는 경우는 그래도 나은 편이라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한 지방 국립대 시간강사(4년차)는 "대학들은 비정규직 해법을 박사급으로 한 '무기계약' 전환에서 찾으려 하고 있다"며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음 학기 강사명단에서 제외시키면 그만인 현행 시간강사 임용방식이 큰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무늬만 교수인 시간강사들, 죄다 값싼 박사로 임용해 어쩌려고...

이 같은 문제는 지난 2007년 비정규직보호법이 마련되면서 예견됐다. '박사학위 보유자가 해당 분야에 종사할 때는 법 적용에서 제외된다'는 조항을 둔 때문이다. 당시 시간강사의 기간제법 적용과 관련하여 여러 가지 문제가 제기됐었다.

2007년 6월 11일 제정된 비정규직보호법 시행령에서 2년이 지나면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법 제4조 제1항의 예외를 정하면서 '박사 학위(외국에서 수여받은 박사 학위를 포함한다)를 소지하고 해당 분야에 종사하는 경우'를 포함한 것.

그런데 2년이 흐른 지금, 늘 '돈이 없다'며 시간강사를 줄이지 않던 대학들이 이를 교묘히 악용하고 있다. 박봉에 시달리는 시간강사나 연구원이라도 박사학위가 있으면 비정규직법 보호를 받지 못하기 때문. 이런 문제가 야기될 때마다 대학들은 "비정규교수 문제는 교육문제로 접근해야지 노동문제로 풀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도 뒤로는 비정규직 강사들을 값싼 지식노동자로 취급하며 대학사회에 고착화시키려 든다.     

실제는 강사이면서 무늬만 교수인 비정규교수들을 죄다 박사로 임용해 학력수준을 높이는 대신 값싼 무기계약으로 생색내려 하고 있다. 이는 사회적 보상 논리와 가장 먼 거리에서 삶의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연구와 교육을 실천해 온 7만여 비정규교수들이 30여 년간 주장해 온 '대학강사 교원 법적지위 회복과 대학교육 정상화'에 반하는 것이다. 깊게 뿌리 내린 대학사회의 부조리 척결을 요원하게 하는 것이다.

"생존권을 박탈하고 고용불안을 조성하는 것보다 더 심한 노동탄압은 없다. 강한 자에게는 떡 하나 더 주고, 약한 자에게는 채찍을 휘둘러 악랄하게 쥐어짜보겠다는 이효수 (영남대) 총장의 행태는 근본적으로 반 교육적이다. 이효수 총장 취임 이후 이미 영남대학 내 제 민주세력들은 반민주적, 반민족적, 반인권적 대학경영관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지난 20일 한국비정규교수노조가 '영남대학의 비정규교수 부당해고 철회를 촉구한다'는 성명에서도 골 깊은 대학사회의 절망이 짙게 묻어난다.


#영남대#1인시위#비정규교수노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정의가 패배하고,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의 빛과 공기가 존재하는 한.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