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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기농 화장품 '로고나' 이진민 대표.
 유기농 화장품 '로고나' 이진민 대표.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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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민(47) 대표이사는 천연·유기농 화장품 회사인 ㈜로고나코리아 외에 마케팅 종합 컨설팅 업체인 ㈜자연인의 대표이사도 맡고 있다. 사실 이 대표는 마케팅 전문가다. 금강기획과 제일기획에서 14년간 카피라이터로 일했다. '한국 지형에 강하다, 애니콜', '나는 나 톰보이' 등 숱한 히트작이 그의 손에서 나왔다.

여성포털 마이클럽닷컴으로 옮겨서는 '선영아 사랑해'라는 티저 광고로 화제를 몰고 다녔다. 당시 쌓아놓은 광고 기획 노하우에 힘입어 지금도 ㈜자연인의 주 고객은 SK, 삼성, 현대홈쇼핑 등 굵직굵직한 대기업들이다.

'잘 나가던' 카피라이터가 척박하기 그지없는 천연·유기농 화장품 사업에 뛰어든 이유는 무엇일까? 이진민 대표는 "돈 중에도 착하게 버는 돈과 나쁘게 버는 돈이 있다"며 "개 같이 벌어서 정승처럼 쓰면 절대 안 된다. 돈 벌 때 정말 착하게 벌고, 쓸 때도 착하게 쓰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작지만 착한 돈을 벌고 싶다"

이진민 대표의 목표는 국내에서 생산한 천연·유기농 화장품을 가지고 세계 시장으로 진출하는 것이다. 지난 10년간 독일 로고나 본사로부터 전수받은 노하우를 활용해 최근에 출시한 '아이소이(isoi)' 브랜드가 바로 세계로 향한 이 대표의 첫 도전작인 셈이다.

지난 20일 서울 종로구 부암동 사무실에서 이진민 대표를 만났다. 국내 첫 브랜드 출시로 한창 들떠 있어야 할 이 대표였지만, 최근 소비자시민모임에서 발표한 유해 성분 유아용품 명단에 ㈜로고나코리아가 포함되는 바람에 맥이 빠져 있었다. 한글로 된 전성분 표시에 식약청 표기법에 따라 '향료'라고만 적었더니, 시민단체에서 화학 성분으로 오해를 한 것이다. 실제 제품에는 '천연 에센셜오일'에서 추출한 천연 향료가 들어있다.

이진민 대표의 마케팅 전략은 무엇일까? 이 대표의 답변은 의외로 담담했다. 그는 "로고나에 대한 마케팅이 아니라 천연 화장품에 대한 마케팅을 하고 있다"며 "좋은 화장품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것이 로고나도 살고, 새로운 천연 제품이 들어올 수 있는 시장도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작지만 착한 돈을 벌고 싶다"는 이 대표가 제 2의 '선영아, 사랑해'를 만들어 낼 수 있을 지 주목된다. 다음은 이진민 대표와의 인터뷰 일문일답 요지이다.

"세상의 누군가는 바보짓을 해야 한다"

 유기농 화장품 '로고나' 이진민 대표.
 유기농 화장품 '로고나' 이진민 대표.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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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로고나는 어떤 회사인가?
"30~40년 전 독일에서 문화 운동이 일어나면서 그린에 대한 향수가 생기기 시작했다. 당시 독일은 공해와 아토피 문제 등이 심각했다. 녹생당 출신 환경주의자들이 모여서 처음으로 만든 게 베이비 로션이었다. 이 사람들의 10대 철학 중 하나가 재미있다. 마케팅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화장품 안에서의 마케팅 비용이 너무 크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차라리 마케팅 비용을 원료에 집어넣겠다는 취지였다."

- 독일 로고나 화장품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
"남편이 1999년 사람이 먹는 것 외에는 인체에 바르는 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원래 국내에서 천연 화장품을 만들어보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굉장히 어렵더라. 천연 화장품을 제일 잘 만드는 회사를 찾아 나섰고, 그게 독일에 있는 로고나였다. 이미 국내 대기업이 찾아가 '많이 팔아주겠다'며 판매권을 달라고 요청했지만 모두 거절했다고 하더라. 그들의 목적은 제품을 많이 파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많이 팔아줄 자신은 없지만, 로고나의 철학을 왜곡시키지 않고 지켜나가겠다'고 설득했다. 그래서 지금도 로고나에 로열티를 전혀 내지 않는다."

- 천연 화장품 시장은 아직 척박하다. '잘 나가던' 마케팅 전문가였는데, 어려운 길로 뛰어든 이유가 뭔가?
"안다. 광고 일을 했던 사람인데 왜 모르겠나. 바보짓인데, 세상의 누군가는 바보짓을 해야 한다. 영악하게, 똑똑하게만 살면 세상이 뭐가 되겠나. 때로는 (바보짓도) 필요한 것 같다. 그리고 행복하다. 돈 중에는 착하게 버는 돈과 나쁘게 버는 돈이 있다. 개 같이 벌어서 정승처럼 쓰면 절대 안 된다. 돈 벌 때 정말 착하게 벌고, 쓸 때도 착하게 쓰는 게 중요하다.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면서 돈을 버는 게 중요하다. 마이클럽 나온 뒤에, 돈 많이 주겠다는 여러 제안을 받았다. 그런데 돈에 의해서 모든 가치가 평가되는 머니게임 같은 것을 또 겪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까, 너무 두렵더라.

작지만 착한 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무엇을 해서 돈을 버느냐가 중요했다. 이것을 해서 돈을 벌면 부끄럽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후회는 없다. 아직도 시장이 작고, 지난한 싸움이다. 그러나 좋은 일 하면서 돈을 버는 것이니까, 아이들에게도 자랑스럽다."

- 마케팅은 어떻게 하고 있나? '제2의 선영아'라도 준비하고 있나?
"온라인에서 판매를 많이 하고, 오프라인은 백화점으로 들어간다. 저희는 로고나에 대한 마케팅이 아니라 천연 화장품에 대한 마케팅을 한다. 화장품을 자꾸 써도 피부가 점점 더 마르고 더 당기는 이유가 뭘까? 화학 화장품에 들어있는 성분이 피부의 자생력을 빼앗기 때문에 그렇다. 로고나에 대한 얘기보다 화장품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한다. 파라벤(합성 방부제)에 대한 얘기, 타르 색소나 자외선 차단제의 문제점에 대한 얘기 등……. 좋은 화장품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것이 결국 로고나가 살 길이고, 새로운 천연 제품이 들어올 수 있는 시장을 만드는 길이다."

"마케팅은 돈 싸움, 옳은 말 해도 돈 없으면 진다"

- 어려운 점은 없나?
"마케팅은 돈의 싸움 아닌가. 어렵다. 옳은 말을 하더라도 마케팅비가 적으면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일 때가 있다. 파스퇴르 우유가 업계에 처음 진출할 때처럼 돈과 용감성이 있다면 나도 한 번 저질러 볼 수도 있겠지만…….(웃음) 나는 그 정도로 용감하지는 않다. 세상에 혁명이 그렇게 쉽게 일어나겠나. 조용한 혁명이라도 일어났으면 좋겠다. 옳은 길을 아니까, 세상의 변화라는 게 서서히 오고 있으니까, 앞서나가는 사람으로서 최선을 다 하고 있다."

- 소비자시민모임으로부터 유해 물질이 들어간 화장품이라는 지적을 받았는데.
"제품에는 '벤질 알코올'은 전혀 들어가 있지 않고, 향료의 경우 '천연 에센셜오일'에서 추출한 천연 향료가 들어가 있다. 영문으로 된 전성분 표시에도 그렇게 돼 있다. 다만 한글 표기에서 식약청 표기법상 '향료'라고만 쓰게 돼 있는데, 그것이 문제가 된 것 같다. 소비자시민모임에서도 우리에게 '벤질 알코올' 부분은 일부 언론의 명맥한 오보임을 확인해 주었다. 제품에 한글로 '향료'라고만 표시되어 있으면 소비자들은 '천연 향료'인지 '화학 향료'인지 알 수 없다. 다른 회사 제품에서 쓰는 향료의 99.9%는 화학 향료다. 천연 향료를 쓰는 곳이 거의 없다.

그래서 앞으로는 소비자에게 좀더 정확한 제품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우리 제품에 '향료(천연에센셜오일)'이라고 표시하기로 했다. 소비자시민모임에서도 소비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주려는 우리 회사의 노력을 '소비자 리포트' 다음호에 소개해 주기로 했다. 우리 입장에서는 소비자시민모임이 활동을 많이 했으면 좋겠다. 굉장히 바람직한 운동이고, 계속 확산되어야 한다."

- 앞으로 목표는?
"마케팅도 하고 '아이소이'를 갖고 세계적으로 나갈 생각이 있다. 여러 가지 브랜드를 준비 중이다. '아이소이' 라인에서도 여러 가지 상품이 나올 예정이다. 원가가 비싼 불가리아 로즈를 빼서 소비자들이 (가격도) 편안하고 착한 화장품을 쓸 수 있게 만들 것이다."

- 그동안 국내 화장품이 해외로 진출하지 못하는 이유가 뭔가? 해외 브랜드에 비해 품질이 떨어지나?
"아니다. 다국적기업 때문이다. 품질은 떨어지지 않는다. 다국적 기업보다 우리 기업 제품이 훨씬 좋다. 외국 명품, 비싼 것 찾는 사람들이 많은데, 차라리 아모레퍼시픽이나 엘지생활건강 것 쓰라고 권유한다. 쓰면 안 되는 화학 성분이 들어간 외국 화장품을 보면 대부분 외국 명품들이다. 화장품을 담는 용기의 수준도 우리가 굉장히 높다. 화장품이 세계로 나갈 수 있는 모든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다. 다만 국내 화장품 업체가 욕심을 더 부려서 나쁜 성분을 조금 더 뺐으면 좋겠다."

- 최근 희망제작소 등과 함께 친환경상품 전문 쇼핑몰 '이로운몰'을 오픈했는데.
"우리나라 유통이 제일 문제다. 중소기업이 힘든 게 유통 채널이 없기 때문이다. 이로운몰 MD(상품기획자)들은 까다로운 사람들이고, 올바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많이 팔겠다는 생각보다는 좋은 제품을, 특히 시장 안에서 친환경이라는 기준이 모호한데, 그런 것을 까다롭게 골라내서 팔겠다는 것이다. 이로운몰에서 팔면 다 믿을 수 있다는 인식을 심으려고 한다. 실제 야채, 고기, 과일을 사 먹어보면 안다.

화장품도 이로운몰에 들어가려면 엄청나게 까다로운 조건을 거쳐야 한다. 20개 브랜드에서 신청이 오지만 1개 정도가 입점이 가능하다. MD들이 '아는 게 병이라서 함부로 입점을 못 시킨다'고 하더라. 로고나와 아이소이는 입점했지만, 아모레퍼시픽이나 엘지생활건강 등은 아직 못 들어갔다. 파라벤 등 MD들이 설정한 기준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이 좋은 제품을 만들어놓고 유통이 안돼서 망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독일에서 로고나가 살 수 있었던 딱 하나의 이유는 유통 때문이었다. 친환경 매장이 동네 곳곳에 슈퍼마켓처럼 어디에나 들어가 있다. 우리나라도 그런 것이 살아나면 얼마나 좋겠나. 일본도 천연 화장품들이 유기농 매장에서 살아나고 있더라. 그런데 한국은 천연 화장품을 넣을 만한 유통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천연 화장품#화학 화장품#이진민 대표#로고나코리아#아이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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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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