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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딩동'하고 벨이 울린다. 액정화면으로 보니 낯선 얼굴이다. '누구지? 뭘 팔러 오셨나?'

그래도 바로 문을 열어주었다. 다짜고짜 상담할 것이 있다고 하신다. '내 이름이 유명해져 여기까지 상담 받으러 오셨나?'하는 생각으로 우쭐해졌다.

 

'아래층에 사는 사람인데, 우리 집이 너무 시끄러워서 고민 고민하다고 올라왔다'고 하신다.

 

'아, 민망해라-.-;;;;;;대략난감. OTL--_--;;;'

 

아파트 층간 소음으로 마음 고생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로 인해 이웃간 뿐 아니라 가족끼리도 삭막해지고 있다. 문제는 사회전체로 이 삭막함이 퍼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행정당국은 이런 서민들의 고충에 손놓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우려가 든다. 내가 겪은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사회에 따뜻함이 깃들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을 가져보며 이 글을 쓴다.

 

 

이사 오자마자 내가 없을 때 어른들에게 찾아와 시끄럽다고 주의를 주고 내려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나름대로 조심하려고 했는데, 4살짜리 둘째 공주님이 거의 뛰어다니는 수준이라 제대로 버릇을 고치지 못했다. 아래층에 계신 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 아저씨는 자신은 층간 소음을 아주 유의한다고 말씀해주셨다. 평소에도 자신은 아랫집에 영향이 있을까봐 집안에서 발을 질질 끌고 다닐 정도로 조심한다고 하신다. 자신도 아이들이 있는데, 아이들이 뛰면 발목을 묶어버린다고 한다. 조금은 과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미안한 마음은 감출 수 없었다.

 

덕분에 아이들에게 잔소리 하나가 추가되었다. 평소에도 뜀박질하듯이 걷는 유진이를 바로 잡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뛰고 싶을 때 마음껏 뛰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도 마음 아픈 일이다. 요즘은 거의 매일 매시간 잔소리다. 아이들에게 미안할 정도다. 유진이 뿐 아니라 준영이에게도 잔소리가 늘었다. 아내에게도 잔소리가 추가되었다.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다.

 

사실 이사 후 만날 때마다 미안하다고 몇 번 말씀도 드리고 찾아가서 사과도 드렸다. 그쪽도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니, 우리도 솔직히 민망해서 마주치기도 싫었던 경우도 있었다.

 

이전 아파트에서는 층간 소음이 거의 없어서 이런 고민을 안했다. 그런데 이사한 이곳 아파트는 불과 3년 정도밖에 안 된 아파트임에도 아이들 뛰는 소리까지 심하게 들리니 이해가 안 간다.

 

관리사무소로 전화를 걸었다. 그것은 주민의 문제라고 한다. '서로 주의를 하는 방법 밖에 없다'고 한다. 너무 원론적인 대답이었다. 사실 그 분들이 할 수 있는 권한이 뭐가 있을까. 따지고 보면 그 분들의 잘못은 없다.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시공사 쪽의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건축을 한 곳이나 건축 행정을 담당하는 기관에서 보다 근본적으로 조취를 할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건축법을 만들 때 건물의 소음도를 측정해서 그런 건설사에게는 행정제재를 가하도록 했으면 좋겠다. (실제로는 기준치가 마련되었지만, 그 기준치가 낮고, 또한 기준치를 맞추더라도 소음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행정적으로 보다 강화해야 될 이유는 이런 층간 소음이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삭막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위층도 소음도 심하다. 아이가 거의 새벽 1시경에 잠든다. 나도 그 정도 시간에 잠들기 때문에 윗집 잠드는 시간을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로서도 아이 키우는 입장이라 아무 말도 못했다. 또 엘리베이터에서 만날 때 미안하다고 이야기하시니 '괜찮다, 걱정 마시라'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아랫집은 평소에 밤  10시면 주무신다고 한다. 음, 우리 집 아이들도 그 때 잠재울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아이들 자는 시간이 대중이 없다. 대개 11시 넘어야 잠들기 때문이다. 아마도 우리부부 모두 일을 하다보니 시간이 일정치 못한 탓도 있을게다.

 

이웃과 이웃이 따뜻하게 온정을 나눠도 모자랄 판에 서로 얼굴을 붉히고 살아야 되다니 안타까운 마음이 많이 든다.

 

층간 소음에 대한 아래층, 위층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내가 떠오른 문구는 신영복씨가 20여 년간의 수감생활을 기록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중의 한 문구였다.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여름 징역의 열 가지, 스무 가지 장점을 일시에 무색케 해버리는 결정적인 사실 '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 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 사람은 단지 37도의 열 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 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중의 형벌입니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미워한다는 사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미움 받는다는 사실은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더욱이 그 미움의 원인이 자신의 고의적인 소행에서 연유된 것이 아니고 자신의 존재 그 자체 때문이라는 사실은 그 불행을 매우 절망적인 것으로 만듭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을 불행하게 하는 것은 우리가 미워하는 대상이 이성적으로 옳게 파악되지 못하고 말초감각에 의하여 그릇되게 파악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알면서도 증오의 감정과 대상을 바로잡지 못하고 있다는 자기혐오에 있습니다.

 

-신영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중에서

 

 

결론적으로 말해 '아파트 층간 소음'으로 인해서 '우리 자신의 존재조차가 이웃에게 불편을 준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불행한 일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잔소리가 늘다보니 가족관계마저 삭막해지고 소원해지는 느낌마저 든다. 그래서 우리 사회가 이웃에 대해 더 무관심해지고, 삭막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국가가 나서지 않는다면 국민들 서로가 서로의 존재에 대한 증오와 미움의 대상이 되어버리지는 않을까하는 비약적인 결론까지 다다랐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제 개인 블로그 <정철상의 커리어노트(www.careernote.co.kr)>과 미디어다음에게 게재되었습니다.


#층간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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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개발연구소 대표로 대구대, 나사렛대 취업전담교수를 거쳐 대학, 기업, 기관 등 연간 200여회 강연하고 있다. 《대한민국 진로백서》 등 다수 도서를 집필하며 청춘의 진로방향을 제시해 언론과 네티즌으로부터 ‘젊은이들의 무릎팍도사’라는 닉네임을 얻었다. ‘정교수의 인생수업’이라는 유튜브를 운영하며 대한민국의 진로성숙도를 높이기 위해 맹렬히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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