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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국내에서 각광받기 시작한 미국 작가 조이스 캐롤 오츠가 '장난'스러운 '문학'같은 소설을 선보였다. '작가와 죽음'이라는 테마로 실존 작가들을 등장시켜 소설을 쓴 것이다. 그렇게 쓴 소설 다섯 편을 모은 것이 바로 <소녀 수집하는 노인>이다. 우리로써는 상당히 보기 드문 글인 만큼 흥미가 생길 수밖에 없다.

 

<소녀 수집하는 노인>의 첫 번째 주인공은 '마크 트웨인'이라는 필명으로 알려진 새뮤얼 클레멘스다. <허클베리 핀>이라는 명작을 남긴 그는 '소녀 수집하는 노인'에서 당황스러운 취미를 갖고 있다. 젊은 것, 아름다운 것 그리고 싱싱한 것에 대한 어떤 집착과 욕망으로 인해 소녀를 수집하는 것이다.

 

그는 사인회하던 중에 자신의 취향에 맞는 소녀를 만나게 된다. 그래서 참으로 민망한 편지들을 보낸다. 지금 같은 때에 그런 편지가 공개되면 감당하기 어려운 스캔들이 날 정도다. 그도 이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소녀를 수집하는 것에 대한 집착을 버릴 수가 없다.

 

마크 트웨인이 이렇게 등장하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거장에 대한 어떤 신화적인 이미지 때문인지 민망한데, 한편으로는 재밌다. 읽는 재미가 쏠쏠하기에 그럴까? 아니면 인생의 끝에서도 인간으로써의 욕망을 분출하는 거장의 모습이 인간적으로 여겨지기에 그런 걸까? 마크 트웨인에 이어 등장하는, 헤밍웨이가 등장하는 '아이다호에서 보낸 헤밍웨이의 마지막 나날들'도 비슷한 느낌을 준다.

 

소설 속에서 '헤밍웨이'는 죽음을 앞두고 있다. 그런데 이 남자가 별나다. 아내가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도 자신을 '불온'하게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늙은 몸을 혐오하는 것도 심각하다. 그래서 자살을 결심한다. 총으로 자살하려고 하지만, 이게 웬걸? 그게 또 싶지가 않다.

 

그래서 도망친다. 그 와중에도 고민하고 괴로워하는데, 소설 속의 거장에게는 미안하지만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홀로 오해하면서, 동시에 죽음을 앞둔 시점에서도 더욱 강렬하게 욕구 분출하는 모습이 재밌다. 달콤하다고 할 정도로 조이스 캐롤 오츠가 재밌게 썼다.

 

세계대전이 벌어지던 그때, 병원에서 자원봉사를 하던 노년의 '헨리 제임스'를 보는 건 어떤가. 소설 속의 작가는 동성애적인 것에 취해 있다. 그래서 그는 남들이 싫어하는 일까지 하고 기어코 국적까지 포기하고 만다. 이러한 대목들은 발칙하다. 헨리 제임스의 실제 삶과 닿아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스릴이 느껴진다. 조이스 캐롤 오츠의 장난은 어디까지 진행될 것인가, 하는 궁금증이 소설의 흡인력을 배가 시킨다.

 

'영혼'만 복제된 채 일종의 마네킹으로 태어난 위대한 시인 '에밀리 디킨스'나 등대에서 고립된 채 신인류를 만드는 '애드거 앨런 포'를 볼 수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SF나 호러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소설은 다채로운 빛을 발한다. 이쯤 되면 조이스 캐롤 오츠의 재능에 탄복할 수밖에 없을 정도의 소설의 힘이 느껴진다.

 

그런데 작가는 왜 이런 글을 쓴 것일까? 앞서 '장난'스러운 '문학'같은 소설이라고 표현했는데, 정말 그런 것일까? 겉보기에 그리 보일지 모르지만, 속내는 진지하다. 왜 그런가? 소설은 죽음 앞에서 더욱 집착하고 욕망을 분출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린다. 그래서 가장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려 한다. 체면을 가릴 겨를도 없이, 더 솔직하고 더 본능적인 모습을 그려 추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인간적인 것을 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거장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건 왜일까? 추측해 보건데, 이것을 잘 보여주기 위해서였을 게다. '거장'이라는 꼬리표조차 그것을 막을 수 없다는 걸 보여주는 게다.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현실과 가상을 교묘하게 엮은 솜씨가 발군이다. 유머러스한 입담도 돋보인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 뒤에서 가장 인간다운 모습을 그만의 솜씨로 그려낸 것이 단연 눈에 띈다. 이 정도라면 소설 속에서 민망하게 등장하는 거장들도 조이스 캐롤 오츠를 용서해주지 않을까? 오히려 기뻐할 것 같다.


소녀 수집하는 노인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이현정 옮김, 아고라(2009)


#미국 작가#조이스 캐롤 오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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