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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초에 전국의 대학이 일제히 개강을 했습니다.

하지만 군색한 형편으로 말미암아

아들은 등록금 납부를 예정보다 늦게 하게 되었지요.

 

한 사무실엔 역시도 딸이 대학생인 선배님이 한 분 같이 근무 중입니다.

"선배님은 따님 등록금 내셨어요?" 물으니

쪼들리는 형편으로 말미암아 저의 경우처럼 늦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푸념으로 이은 말이 바로

"부모는 자식에게 있어선 그야말로 '문서 없는 종' 이라지만

어서 이 종의 신세를 면해야 할 텐데...!"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심전심과 동병상련에 냉큼 맞장구를 쳤지요.

"맞아요! 선배님이나 저나 어서 아이(들)가

대학을 졸업해야 그나마 한시름을 놓을 것인데 말입니다."

 

'종'이란 남의 집에서 대대로 천한 일을 하던 사람을 일컫습니다.

그러므로 '문서 없는 종'이란 자조적 표현은

아무런 계약 문서조차 없이 부리는 종과 같다 하여

매우 험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우리네 서민을 뜻하기도 하지요.

 

아무튼 오늘 아침에 출근할 때 도시락을 챙겨 집을 나섰습니다.

반찬이라고 해 봤자 허구한 날 똑같은 메뉴인 김치 한 가지뿐이지요.

그렇긴 하더라도 벌써 수년 째 싸 가지고 다니는

이 도시락으로 말미암아 어쨌든 아들에 이어 딸까지도

대학에 보낼 수 있었다는 게 나름대로의 어떤 자긍심이자 안도감입니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도시락을 지참하는 직장인들이 많이 늘었다고 합니다.

근데 이따금 TV에 소개되는 직장인들의 점심 도시락을 보자면

사 먹는 밥보다 되레 더 풍성하여 돈이 더 드는 경우도 있어 보이곤 하더군요.

 

여하간 아이들이 대학을 마치는 때까지는 지금의 도시락을 계속하여 챙길 요량입니다.

가뜩이나 평소에 돈도 잘 못 버는데 다만 한 푼이라도

아껴야만 그게 바로 당연한 노릇일 테니까 말입니다.

 

'샤방샤방'이란 노래로 스타덤에 오른

가수 박현빈이 부른 또 다른 노래로 '오빠 한 번 믿어봐' 라는 곡이 있습니다.

 

이 노래의 가사를 보면 '오빠 한번 믿어봐 / (중략)

너 때문에 웃는다 / 너 없이는 나도 없다'는 구절이 나옵니다.

 

헌데 이 노래를 듣자면 저는 문득문득

'김치 한 번 믿어봐!'라는 나름대로의 표절 가사가 떠오르곤 한답니다.

왜냐면 그 노래의 가사와는 약간 다르되 그러나

본질은 거의 비슷함으로 귀결되는 때문이죠.

 

즉 '김치 한번 믿어봐 / (중략) 너 때문에 웃는다

/ 너 없이는 나도 없다'는 건 여전히 김치를

믿고 있는(!) 제 나름대로의 어떤 투철한 신앙심이 발로인 때문입니다.

 

왜냐면 우선 김치는 아내가 손수 정성으로

버무린 '가족사랑'의 양념이 그 안에 가득합니다.

고로 달랑 김치 한 가지만의 점심 도시락이긴 하되

여태껏 영양실조엔 걸리지 않았으니 말입니다.

 

또한 딱히 반찬이 필요 없으므로 별도의 돈이 들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제가 어찌 김치를 보자면 웃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기에 '김치 없이는 나도 없다'는 당연지사의 주장을 하고픈 것입니다.

 

누구라도 희망을 품으며 이 풍진 세상을 살아갑니다.

어제도 열심히 생업에 매진했지만

결과는 지지부진의 허탈함이었습니다.

 

그렇긴 하더라도 희망의 끈은 결코 놓지 않고 있습니다.

희망을 버린다는 건 모든 걸 잃는 것이니까 말입니다.

 

남 보기엔 비록 달랑 반찬이 하나뿐인 우스운 김치이긴 해도

제가 보기론 그 어떤 진수성찬에 다름 아닌 게 바로 김치입니다.

 

도시락의 영원한 친구이자 파트너이기도 한 김치는

제게 있어 또한 제 아이들의 보랏빛

미래까지를 담보하는 어떤 희망의 조건이기도 합니다.

덧붙이는 글 | 여성시대에도 송고했습니다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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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서: [초경서반]&[사자성어는 인생 플랫폼]&[사자성어를 알면 성공이 보인다]&[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 대전자원봉사센터 기자단 단장 ▣ 月刊 [청풍] 편집위원 ▣ 대전시청 명예기자 ▣ [중도일보] 칼럼니스트 ▣ 한국해외문화협회 감사 / ▣ 한남대학교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CEO) 수강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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