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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수가 양산되는 2008년의 대한민국

 

세상이 어지럽고 혼란스러워 나자빠지면 지구를 떠받치던 아틀라스처럼 짐을 내려놓고 만다. 그 짐을 짊어지는 사람이 생겨나는데 그것이 양심수의 탄생신화다. 양심수가 양산되던 시절이 있었다. 그들이 민주주의의 새벽을 알렸다. 민주주의의 아침이 찾아오면 양심수의 짐을 많은 사람이 가져간다. 부와 권력뿐만 아니라 기쁨도 슬픔도 고통도 좌절도 나누는 것이 민주주의다.

 

하지만 2008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시계는 아직도 새벽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양심수'가 양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2005년 세상이 다 아는 삼성그룹의 부당행위를 세상에 알린 죄로 3년 5개월의 형을 받고 수감되었다가 2007년 12월 말이 되어야 석방된 김성환 삼성일반노조위원장은 근래의 대표적인 양심수다. 그는 스스로를 '노동양심수'라고 부른다.

 

언론소비자주권국민캠페인(이하 '언소주')의 회원인 아이디 '노로이세이'와 '쭈니'는 올해 8월 21일 조중동과 정치검찰에 의해 구속된 이후 61일만인 10월 21일 '보석'으로 석방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도 '불구속 기소' 상태다. 이 외에 언소주에서 불구속으로 기소중인 회원은 22명에 이른다. 두 회원의 석방경위를 보면 '조건부'임을 알 수 있다. 석방 자체만으로 광고주불매운동에 대한 판단에 영향을 줄 사안은 아니라는 말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단독(부장판사 이림)은 21일 열린 첫 공판에서 "아직 이 사건은 법리적인 논쟁이 필요해 장기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두 사람의 방어권을 위해 석방을 결정한다"고 밝히면서도  "이것이 두 사람의 유무죄 및 양형에 대한 재판부의 결론과 관계있는 것은 아니다. 사법부의 판단이 있기까지는 자중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이들은 요즘 유행하는 '배후세력'도 아니고 월급 받고 생활하는 봉급자이거나 소박한 자영업자들이다. 글로벌 스탠다드에 따르면 존경을 받아 마땅하지만(실제로 광고주불매운동을 건드리는 광고주와 권력은 없다), 우리나라의 특성상 '죄인'이라는 오해를 쓰고 있다.

 

하긴, 세상이 좀 민주화되긴 했다. 그 많은 언론인이나 학자들, 정치인들이 감히 닿지 못할 '양심수'라는 영광스러운 이름을 소박한 생활인들이 얻게 되었으니 말이다.

 

세상에서는 양심수, 가족에게만은 '죄인'

 

10월 21일 저녁 서울구치소에 모인 30명 가량의 언소주 회원들은 함께 구속회원을 기다리는 한편 '출소자가족대기실'에서 운영위원회의를 했다. 저녁 9시에서 10시 사이에 30분 간격으로 구속회원은 입구까지 걸어나왔다. 회의를 하다가 구속회원이 풀려나오면 회의는 중단되기를 반복했다. 아이디 '쭈니'는 현장에서 회원들에게 소감을 말하다가 목이 메었다. 집에 있는 가족들을 이야기하는 순간이었다.

 

"2달여의 시간 동안 제가 가장 힘들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아직 한참이나 어린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 생각이었습니다. 제가 보고 싶은 마음이야 좀 참고 구슬리면 되겠지만, 아빠를 찾는 아이들의 마음을 생각하면 너무나도 답답해짐을 어찌할 길이 없었습니다."

- 아이디 쭈니의 석방 소감(언소주 카페)

 

쭈니는 무죄를 확신한다고 말했다. "경제적 이익을 취한 사람이 없고, 폭력을 행사한 바 없기" 때문이다. 함께 수감생활을 하던 사람들은 한결같이 이들의 구속이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개탄했다고 말했다. 같은 구속자도 구속을 어이없어 하는 상황이 현재 우리들의 모습이다.

 

아이디 '노로세이'는 비교적 담담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보석 석방'에 대한 기대감은 누구보다 더 강했음을 숨기지 않았다.

 

"공판준비 기일(예비공판) 때마다 변호사님들께서 보석 언급하셨을 때 저는 눈시울이 붉어졌었죠. 재판장님도 일단 이 사건에 대해서 보석을 기각할 사안은 아닌 듯이 언뜻 의중을 말씀하셔서 내심 기대했는데, 상황은 여의치 못해 보석 결정이 보류되어 다음 공판기일로 넘어가서 섭섭하고 안타까웠습니다.

 

재판장님께서 어제 정식 첫 공판 말미에 갑자기 두 사람을 어제부로 보석을 허락한다고 하셨을 때 매번 출정(법정출두)할 때마다 기대했다가 허망해지는 것 때문에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그날따라 별로 기대하지도 않았던 일이 벌어져서 약간은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피고인석에 동석한 카페회원들의 기쁜 표정들을 보고 기분이 좋았습니다. 눈시울이 불거진 쭈니님과 손을 꼭 잡고 들뜬 표정을 지었습니다." - 아이디 노로세이의 석방 소감(언소주 카페)

 

민주주의란 무거운 짐을 나눠서 짊어지는 것

 

한편 구속회원의 석방 순간을 함께 하기 위해 광주·전남과 부산에서도 많은 회원이 찾아왔다. 밤 10시가 넘는 시간 동안 가지 않고 기다린 남도의 회원들은 '어떻게 집에 가려고 지금까지 있느냐'는 물음에 아예 차를 가져왔다고 했다. 몇몇 회원은 아예 회사에 휴가를 내기도 했다. 재판을 받는 회원들도 직장인이기 때문에 재판일은 자동 휴가일이다. 재판을 받지 않는 회원들은 일부러 월차를 쓰거나 휴가를 내서라도 재판정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현재 NGO와 카페를 통한 구속자 후원금은 1200여만 원이며 언소주는 구속회원에게 매달 생활비를 보조해 주고 있다. 구속회원의 보석금 2000여 만원은 언소주 회원들의 후원금으로 부담했으며, 24명의 재판 비용도 후원금을 통해서 부담하고 있다. 하지만 요즘 회원수의 감소로 후원금액이 줄어들지 않을까 걱정하는 회원들이 많다. 아무리 좋은 취지의 활동이라도 활동비 없이는 사상누각이기 때문이다.

 

이번 취재를 하면서 민주주의에 대한 실질적인 진전을 보는 듯했다. 회원이 구속되면 당사자뿐만 아니라 5만여 명의 회원이 함께 아파했고, 이들이 풀려나던 날 5만명이 함께 웃었다. 석방의 순간을 함께 하지 못한 회원들은 카페에 미안한 마음을 담은 글을 수도 없이 남겼다.

 

월급을 주는 것도 아닌데 고생을 자처하겠다고 나선 열성 회원들은 NGO 설립을 위한 준비위원회부터 NGO 설립 이후의 운영위원회까지 저마다의 할일을 맡아주고 있었다. 개중에서는 집과 회사에서 미운털이 박히는 경우도 있었으나 그것은 더욱 더 이들을 단련하는 역할을 할 뿐이었다. 이제는 소수의 몇몇이 언론자유화와 민주주의의 무거운 짐을 지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나눠서 가져가는 언소주, 이것이 민주주의가 아니고 무엇인가.

덧붙이는 글 | 블로그뉴스에도 올렸습니다. 언소주카페(http://cafe.daum.net/stopcjd)와 언소주 공식블로그(http://pressngo.tistory.com/)에서 두 회원의 석방소감 전문을 볼 수 있습니다. 


#언소주#조중동#광고주불매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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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놀이 책>,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 <공자, 사람답게 사는 인의 세상을 열다> 이제 세 권째네요. 네 번째는 사마천이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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