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시] 두 밥상

 

저녁 밥상을 차려 왔는데

어머니가 안 드시겠다고 하면서

자리에 누워 버리셨다.

 

막 한 밥이어서 냄새도 구수한 게

아주 딱인데

한 술 드시고는 숟가락을 내려 놓으셨다

 

"너나 다 먹어라."

 

자리에 누우시면서 하신 말씀이다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게 있었다.

'떡국 안 끓여 오고 웬 이따위 밥이냐'하는 심정이신가 싶었다.

 

밥이 다 돼서 밥상을 차려야겠다 싶은 때에

누워 있던 어머니가 역정 섞인 채근을 하셨었다.

 

"어서 나가서 떡국 안 끓여오고 뭐 하노?"

"떡국요? 웬 떡국을…."

 

난데없는 떡국 이야기에

밥이 지금 다 됐으니

저녁은 밥을 드시고 떡국 드시고 싶으면

내일 해드리겠다고 했는데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낮에 경남 안의에 사시는 외사촌 형님네 부부가 와서

어머니 드실 한과랑 곶감을 내놓으시면서 설 가래떡도 주고 가셨다 

어머니가 그걸 썰고 싶다고 하셔서

부엌칼을 숫돌에 쓱쓱 갈아가지고 방에 도마랑 갖다 드렸다

그런데 두 줄을 써시고 너무 딱딱해 못 썰겠다면서

내일 삼발이 놓고 쪄서 말랑말랑해지면 다시 썰자고 하셔서

그러자고 했었다.

 

어머니는 저녁에 떡국 드실 생각을 하면서 떡을 써신 게 분명했다.

 

그런데 떡국을 안 해 주고 밥을 해 왔으니

기분이 많이 상하신 것 같다 

어머니는 누워 있는데

나 혼자서 밥을 먹을 수는 없는 법

 

다시 부엌으로 나가

어머니 혼자 드실 떡국을 끓였다

며칠 전 아내가 손수 만들어서 갖다 준

만두도 하나 넣었다

멸치 빻아 놓은 것 반 숟갈 넣고

파 썰어 넣고, 김 넣고

조선간장으로 간을 맞췄다.

 

국물 맛이 제법이었다

떡도 아주 정확한 때에 넣어서 쫄깃한 상태가 되었을 때

퍼왔다

 

떡국 끓여 왔다는 말에 어머니가 부스스 일어나셨다.

 

그리고는 밥그릇은 "너나 먹어라" 하면서

내쪽으로 밀어 놓으셨다

나는 밥그릇이 두 개가 됐다.

 

어머니는 정신없이 드시다가

갑자기 내 생각이 났나 보다

큼직한 만두를 하나 건져 내시더니

나에게 주셨다.

 

식사가 다 끝날 때까지 한 말씀도 안 하셨다

"간 잘 맞췄죠?"라고 해도 묵묵부답.

"대홍이 형님네 떡국이 쫀득쫀득한 게 맛있죠?"해도 묵묵부답.

"내일 또 끓여 드릴게요"해도 묵묵부답.

 

아까 화냈던 일이

멋쩍으신 걸까

그렇겠지

떡 하니 차려진 밥상 놔두고

새삼스레 떡국 끓이느라 왔다 갔다 하는 나를

다 보셨으니

뭐라 대꾸하기가 좀 그러시겠지.

 

국물 한 방울도 안 남기고 떡국을 다 드신 어머니.

마지막을 멋진 사고(?)로 장식하셨다

설거지를 하고 탈수가 된 빨래를 한 아름 안고 방에 들어오는데

어머니가 옷에 잔뜩 오줌 실수를 하신 것이었다.

학수고대하던 떡국 상을 받았겠다

후룩후룩 정신없이 드시다

오줌 나오는 것도 잊으신 거다.

 

아들이 들어오기 전에 수습을 하려고 했던 것 같다

젖은 옷을 벗어 방바닥을 닦고

옷장에서 새 옷을 꺼내 입으시려는 순간 아들이 방에 들어 온 것이다

"내가 옷에 오줌 쌀까 봐 물 한 잔도 조심하고 국은 아예 입에 대지도 않고 밥만 먹는 사람인데…."

하시다가 말을 뚝 그치셨다.

차린 밥을 물리고 

떼를 써서 (떡)국을 드시고는

바로 오줌을 눠 버렸다는 생각을 하신 것이다.

 

멈칫 하고 나를 쳐다보는 어머니.

젖은 옷과 어머니를 손가락질 하며 폭소를 터뜨리는 나.

 

우리 모자는 오줌 묻은 옷을 사이에 두고

한참을 웃었다

두 종류의 웃음을.


#어머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농(農)을 중심으로 연결과 회복의 삶을 꾸립니다. 생태영성의 길로 나아갑니다. '마음치유농장'을 일굽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