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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겐 영혼이 있을까? 영혼이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입증할 수 있을까?

 

오래된 호기심이고, 오래된 질문이다. 영혼의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미국 매사추세츠병원장 출신의 단칸 맥두걸 박사는 1907년 사자의 몸무게를 측정해 영혼의 무게는 '21g'이라는 주장을 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영혼의 문제는 현대과학이 여전히 숙제로 갖고 있는 주된 호기심의 대상 가운데 하나지만, 딱 부러지게 '과학적 설명'을 내놓은 사람은 아직 없다.

 

하지만 영혼의 존재, 그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도 딱히 없다. 영혼은 인류의 가장 주된 관심사 가운데 하나다. 시장주의적으로 말하자면 영혼을 다루는 사업(?)은 번창 일로에 있다. 영혼을 다루는 사업은 말할 나위 없이 영혼을 온전히 지키기 위한 각종 서비스 제공이 주를 이룬다.

 

이는 현대국가·복지국가의 주된 역할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국민들의 마음과 영혼을 평안하게 하는 것, 국민들이 인간다운 영혼을 지킬 수 있게 하는 것이야말로 국가와 정부가 국민들에게 제공해야 할 가장 근본적이며 인간적인 서비스이기 때문이다.

 

국가권력에 맞서 자신의 영혼을 지킨 과학자

 

그런데 국가 권력은 현실적으로는 이와 거꾸로 가는 경향이 있다. '국가'와 '사회'의 이름으로 개인의 희생을 강제하거나,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경우가 고전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혹은 다수의 영혼을 위해 소수의 영혼을 억누르거나 해치는 것을 정당화하는 경우도 있다. 그 어떤 경우에도 국가나 정부의 이름으로 과연 이런 일들이 정당화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더구나 그것이 '정권'의 이름으로 행해질 때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 김이태 연구원의 양심선언은 이명박 정부 '영혼정책'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김이태 연구원은 정부의 대운하 추진 정책과 관련해 "아무리 머리를 짜내도 반대논리를 뒤집을 대안을 찾을 수 없었는데도, 반대논리에 대한 정답을 내놓으라는 국토해양부 태스크포스팀의 요구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는 "영혼없는 과학자가 되라고 몰아치는 것 같다"고도 했다. "불이익이 예상되지만 자식 보기가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되지 않기 위해서" 인터넷에 양심선언 한다고 밝혔다.

 

국토해양부는 그러나 김이태 연구원의 양심선언을 현실적응력이 부족한 한 연구원의 '자기변명' 정도로 치부하는 반응을 보였다. 대운하 추진에 찬성하는 한 대학교수는 "자신이 반론을 낼 수 없으면 다른 사람의 반론이라도 듣고 정리해 제출하면 되지 않느냐"고 김 연구원을 타박했다.

 

이 대학교수는 전문가는 전문적 지식이나 정보를 갖춘 사람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최종적으로는 인간으로서 자신의 양심과 전문성에 기반해 '종합적 판단'을 내리는 존재라는 사실을, 즉 인간은 영혼을 가진 존재라는 사실 자체를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다.

 

사실 한국 사회는 그런 점에서 영혼을 존중하는 사회라고 보기는 어렵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과거 정부에서도 이런 일은 적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 때만 하더라도 고위 공무원들에게 인터뷰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등 '영혼 관리'에 나선 사례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처럼 영혼을 아예 '청소'할 것까지를 요구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명박 정부는 인수위 시절부터 모든 공무원들에게 영혼을 내놓을 것을 공공연하게 요구했다. 영혼이 없는 존재가 될 것을 강압적으로 촉구했다. 김이태 연구원은 그런 영혼 교체 작업에 최초로 문제를 제기한 사례라고 할 만 하다.

 

영혼이 없는 공무원들에게 '자발성' 기대할 수 없다

 

영혼은 상처받기 쉽다. 민감하다. 또 사람마다 색깔도 다르다. 그래서 쉽지 않다. 어떤 이들의 영혼은 김이태 연구원보다 훨씬 더 '강압적인 상황'에서도 멀쩡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보통의 경우는 그렇지 못하다. 한 번 판 영혼은 다시 되찾기 힘들다. 치명적인 상흔을 남긴다.

 

그것이 조직적으로 이뤄질 때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개방 파문은 그 영혼을 지켰어야 할 농림수산식품부 고위 공무원들이 집단으로 영혼을 버렸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들은 얼마 전까지 자신들의 펴왔던 주장과 입장을 완전히 바꾸었다.

 

과거의 영혼을 팔고 새 정부 맞춤형으로 새 영혼을 구입한 셈이다. 하지만 그들이 판 것은 비단 그들의 영혼뿐만이 아니었음은 오늘의 현실이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국가의 검역주권도, 국민의 선택권도 그들의 영혼과 함께 사라졌다.

 

공무원들의 신분 보장을 헌법이 명문화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공무원들의 영혼을 보호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헌법 정신의 표현이다. 공무원들이 영혼을 제대로 지킬 수 있어야 국가와 사회를 위해 공무원으로서 그 소임을 제대로 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무릇 모든 생명체들이 그렇듯이 영혼은 원초적으로 그 누가 대신 지켜줄 수 없다. 영혼은 영혼의 담지자가 지키고자 하지 않을 경우 결코 지킬 수 없는 위태로운 존재다.

 

그런 점에서 상당수의 고위 공무원들이 자신들의 영혼을 그렇게 쉽게 포기하고, 내던지고 있는 것은 인간적으로도 서글픈 일이지만, 한국 사회로서는 지극히 불행한 일이다. 시장주의적으로 말하자면 OECD 선도국가들 가운데 영혼 없는 고위공무원들이 국가 정책을 담당하고 있는 나라는 없다. 그렇게 OECD 선도국가들이 된 나라도 없다.

 

그런 점에서 이명박 정부가 공공연하게 공무원들의 영혼 세탁에 나선 것은 처음부터 빗나간 길이다. 그것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개방 파문에서 드러나듯이 결정적인 자충수가 될 것이다. 생각해보라. 영혼 없는 존재들에게 무슨 자발성을 기대할 것이며, 무슨 책임을 물을 수 있겠는가.

 

영혼을 빼앗는 문화, 영혼을 지켜내는 문화

 

김이태 연구원이 양심선언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촛불의 힘이 컸을 것이다. 불 밝힌 촛불들이 김이태 연구원에게 영혼을 지킬 힘을, 영혼을 지키기 위해 많을 것을 희생할 용기를 주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 점에서 촛불은 흔들리는 영혼들, 위태로운 영혼들의 안식처이자 지킴이가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촛불들을 끄기 위해 부심하는 존재들도 있다. 이들 영혼의 길잡이가 돼주어야 할 상당수 신문들이 되레 촛불을 끄기 위해 앞장 서 나서고 있는 것은 이미 그들이 '어둠의 세력'과 손을 잡았다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상당수 신문들은 김이태 연구원의 양심선언 자체를 아예 외면했을 정도다. 자신들의 영혼마저 이미 악마와 거래해버린 것일까?

 

2008년 5월, 대한민국은 지금 영혼을 지키려는 문화와 영혼을 빼앗으려는 문화, 영혼을 지켜내는 문화와 영혼을 팔아치우는 문화가 일대접전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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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태#양심선언#촛불집회#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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