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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겹이 똬리를 튼 업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장마를 자르듯 주가지수가 2천을 훌쩍 넘던 날은 책먼지를 털다가 그대로 덮었다. 한 푼도 축내지 않고 월급을 꼬박 8년을 모아야 겨우 개미집 같은 아파트 한 채 마련할 수 있다는 앵커의 귀띔이 있던 밤은 별스럽게 길었다. 그렇듯 앞으로 달릴 줄밖에 모르는 시간이 선물한 기름진 살과 더없이 달콤한 피 앞에 웃고만 있는 내게 어느날 누이 손처럼 따스한 곰취가 말했다. 앞으로만 가지 말고 이제 뒤를 돌아볼 때가 되었다고. 힘 붙이라며 떼어다 준 살집 좋은 고기와 신통하다는 약 한 줌으로도 걸러지지 않던 달콤한 피가 보잘것없는 나물 몇 가지에 맑아졌다.

-62쪽 '나물은 힘이 세다' 몇 토막

 

시골 구석구석까지 천민자본주의가 활개치고 있는 시대. 사상과 철학, 도덕윤리마저 깡그리 무너진 것만 같은 이러한 시대, 시인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남북으로 갈라진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과연 시는 무엇이며 어떻게 와 닿을까. 행여 시가 천민자본을 그럴싸하게 뒷받침해주는 귀걸이나 팔찌쯤으로 전락한 것은 아닐까. 

 

지난 3월 끝자락 나온 시인 박몽구의 신작시집을 읽고 있으면 새삼스레 시가 무엇인지, 시인이 어떤 시를 써야 할지에 대한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왜? 시인의 시가 '무기로서의 시'를 강조하던 초기시와는 달리 말이 많아지면서 무언가 느슨해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시인 박몽구의 초기시는 사회과학을 주춧돌로 삼아 광주민주화운동을 기둥으로, 민족민중운동을 서까래로 삼아 가열차게 나아갔다. 까닭에 서정성보다는 운동성과 실천성이 너무 강조된 탓에 시대적 화두가 확실하게 담겨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에게 쉬이 다가서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남겼다.

 

 

하지만 요즈음 그의 시 대부분은 그 어떤 시대적 화두가 담겨져 있다기보다는 서정성을 먼저 내세운다. 즉, 여행길에서 만나는 사물에서 과거를 들춰보기도 하고, 음악과 종교의 뿌리를 더듬으며 비교적 긴 호흡(시적 산문)으로 자아를 가다듬고 있다는 그 말이다. 이는 지나친 서정성이 시의 본래의 기능을 잃어버리게 하여 산문으로 떨어져버리게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게 한다.

 

"모락산 능선에 번지기 시작한 산마늘 향기가 창틀을 넘어오고 있다. 묵은 옷을 벗어야겠다./ 시력 30년을 넘었다. 시는 내게 겉치장이 그럴듯한 매혹에게 한눈을 팔 때 갈 길을 분명하게 일러주는 순금 나침반이다. 영혼의 비만을 경계하는 소금이다./ ‘처음처럼’이란 말에는 빈 주먹을 단단하게 쥐게 하는 힘이 담겨 있다."- '시인의 말' 몇 토막

 

시인 박몽구(52)가 12번째 시집 <봉긋하게 부푼 빵>을 펴냈다. 지난 2006년 11번째 시집 <마음의 귀>를 펴낸 뒤 2년만이다.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시인 박몽구는 5․18광주민주화운동 때 도청사수대의 일원이 되어 계엄군과 맞서 싸우다 죽음의 문턱에서 겨우 빠져나온 전사 중의 전사다.

 

그는 군부독재정권 시절 내내 '실천으로서의 문학' 이란 화두를 들고 시인 고은 신경림 그리고 해남 출신 시인 김지하(목포 출신, 해남에서 살며 해남을 문학적 고향으로 삼았다) 김남주 김준태 윤재걸 황지우 등과 함께 우리 민족민중운동의 싹을 틔웠던 선구자이다. 이는 곧 지난 7~80년대 민족민중문학사에 있어서도 그의 이름 석 자를 빼놓고는 이야기를 할 수가 없다는 말이다.       

 

때문에 문단에서는 시인 박몽구에게 거는 기대가 남달리 클 수밖에 없다. 선구자가 무엇인가. 특히 남북, 좌우, 빈부와 더불어 사회 곳곳이 온통 양극화로 치닫는 힘겨운 시대인 요즈음, 선구자가 나서서 시가 무엇인지, 시인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또렷하게 알려줄 의무가 있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이 시대의 모든 짐을 시인 박몽구 혼자서 몽땅 다 짊어지고 가라는 말은 아니다. 또한 다시 서정성을 빠뜨린 사회과학적 시로 돌아가라는 말도 아니다. 시대적 화두와 서정성이 황홀하게 만나는 짧고 명쾌한 시를 어서 보여달라는 것이다. 이는 시인이 밝힌 것처럼 '묵은 옷' 훌훌 벗어던지고 "갈 길을 분명하게 일러주는 순금 나침반"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주변시인들의 사랑 어린 충고다.    

 

시인 조태일 형의 탯자리가 있는

곡성 태안사 산그늘에 서서

생전 그와의 만남을 떠올려 본다

 

돌아보면 그는 내게

따스한 품을 보여준 적이 한번도 없었다

약관에 열망하던 시인이 되어 찾았을 때도

대뜸 지하실에 내려가 문선공이 되라 했다

박석무 형의 소개장 너머 매끈한 책상을 꿈꾸던 나는

납 먼지가 폐결핵을 덧낼까 겁나

일주일도 못 채우고 추석 떡값을 챙겨

고향으로 내려온 뒤 더 이상 출근하지 않았다

 

-54쪽 '태안사에 가서' 몇 토막

 

시인 박몽구는 시인 조태일(1941~1999) 선생이 태어난 태안사에 가서 고인과의 옛 인연을 차분하게 떠올린다. 하지만 고인은 단 한번도 시인을 살갑게 맞아주지 않았다. 시인 또한 마찬가지였다. 고인이 애써 마련해 준 직장(문선공)도 금세 때려치웠다. 이는 "오일팔로 책도 강의실도 빼앗긴 채/ 시인사로 형을 찾아갔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시인은 "태일형 탯자리 둘러싼 동리산 자락"을, "가파른 가운데 빈 틈 없이 어깨를 감싼/ 연봉들을 보며" 고인의 속내를 차분히 더듬는다. 고인이 태어난 태안사 자락은 한국전쟁 때 "몇 차례 전화가 휩쓸어" 간 곳이자 "좌우로 갈린 사람들 서로 갈린 전란"을 겪은 곳이다.

 

하지만 지금은 "저 아스라한 산자락 아래 솔숲"이 포근하게 덮여 있다. 시인은 그 솔숲에서 고인의 '속뜰'을 짚어낸다. 그때 고인이 시인을 그렇게 차갑게 대했던 것은 이유가 있었다. "작은 것에 흔들리지 말고/ 작은 돌멩이에 걸려 넘어지지 말고/ 큰 길을 보라"는 숨은 뜻이 담겨 있었다.

 

위 시에서도 시인 박몽구의 산문적 시, 시적 산문의 속내가 은근슬쩍 엿보인다. 언뜻 읽으면 산문을 행만 바꾸어 시적 이미지로 적당히 치장한 것 같기도 하다. 다시 깊숙이 들여다보면 시의 서정성과 대중성 획득을 위해 시적 이미지를 의도적으로 산문체로 느슨하게 풀어쓴 것 같기도 하다.  

 

엉겅퀴 아래 숨은 이슬방울

졸졸거리는 실개울

차창 사이로 스며드는 두엄 냄새가

잃어버린 나를 일으키네

서방정토 찾아 두리번거렸더니

어렸을 적 버렸던 그 땅이

꿈에 갈무리해 둔 그 땅이네

 

-20~21쪽 '도피안사 석간수' 몇 토막

 

그렇다고 시인 박몽구가 시적 산문이나 산문적 시에 오래 머물러 있을 것은 아닌 듯하다. 시인은 도피안사로 가면서 살아온 날들을 더듬는다. "퀴퀴한 두엄 냄새 버리고 와/ 매끈한 의자 하나 차지하기 위하여/ 밤을 낮같이 얼마나 앞을 향해 달려왔던가/ 아파트 한 평 더 늘리기 위해/ 어리석은 이웃들 얼마나 수렁으로 떠밀었던가".

 

시인은 도피안사 석간수를 마시며 "속에 겹겹이 낀 기름때를 씻"으며, 새로운 세상을 찾는다. 시인이 찾는 새로운 세상은 다름 아닌 시적 산문이나 산문적 시가 아닌 시대적 화두가 확실하게 담겨 있으면서도 서정성이 배인 그런 시, "어렸을 적 버렸던 그 땅" 두엄 냄새 폴폴 나는 그 땅, "꿈에 갈무리해 둔" 그 서방정토 같은 세상이다.   

 

시인은 "길가에 탐스럽게 핀 과꽃" 에서도 시의 향기를 맡으며,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살가운 세상을 꿈꾼다. "높다랗게 선 키다리 포플러"를 바라보며, "시멘트벽에 갇혀 살던" 자신의 모습도 바라본다. 즉 시인의 눈가에 비치는 모든 사물이 곧 시인의 스승이요, 시인이 나아가야 할 새로운 길이다.

 

시인이 '시인의말'에서 "'처음처럼'이란 말에는 빈 주먹을 단단하게 쥐게 하는 힘이 담겨 있다"고 내뱉었듯이 시인은 다시 ‘초발심’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시인이 시적 산문 같은, 산문적인 시를 쓰고 있는 것도 ‘초발심’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고행길이다. 따라서 박몽구 시인의 '제2 시의 출발'은 지금부터 첫 걸음마를 떼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낡은 이발소 그림 같은 풍경이

지친 길손의 등에 흰 날개를 달아주고 있다

물구나무 서서 볼 때

비로소 분장을 지운 세상의 맨얼굴 드러난다

 

-58쪽 '삽교역 풍경' 몇 토막

 

"물구나무 서서 볼 때/ 비로소 분장을 지운 세상의 맨얼굴"이 드러나듯이 이제 시인 박몽구는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다. 마치 어린아이가 맨 처음 이 세상 사물을 바라볼 때 눈에 보이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시인 박몽구는 긴 시의 굽이를 돌아 다시 시의 첫 자리로 돌아오고 있다. 그의 '초발심'에 새로운 시의 꽃이 활짝 피어나기를.      

 

시인 김기중(순천향대 교수)은 박몽구 시인의 12번째 시집에 대해 "이번 신작시집에서도 시인의 상처와 그로 인한 마음의 쓰라림은 이곳저곳에서 보인다"며 이는 "고단한 현실 앞에서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시에 대해 시인이 갖는 무력감에 기인하기도 한다"고 평했다.

 

시인 박몽구는 1956년 광주 송정에서 태어나 1977년 월간 <대화>에 시 '영산강' 등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우리가 우리에게 묻는다> <거기 너 있었는가> <십자가의 꿈> <끝내 물러서지 않고> <어느날 극장을 나오며> <서울에서 쌓은 산> <자끄린느 뒤프레와 함께> <개리 카를 들으며> <마음의 귀> 등이 있다. 시론집으로는 <김현승론> <고은 초․중기 시의 단절과 극복> 등이 있으며, 2005년 <한국출판평론상>을 받았다.


봉긋하게 부푼 빵

박몽구 지음, 시와문화사(2008)


#시인 박몽구#봉긋하게 부푼 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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