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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용 아파트에 있는 여관 내가 사는 주거 전용 아파트에도 버젓이 여관을 운영하고 있다. 당연히 불법이지만 조그만 권력만 있으면 이 정도의 불법은 얼마든지 가능한 사회이다.
▲ 주거용 아파트에 있는 여관 내가 사는 주거 전용 아파트에도 버젓이 여관을 운영하고 있다. 당연히 불법이지만 조그만 권력만 있으면 이 정도의 불법은 얼마든지 가능한 사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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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휴가야?"... "낙태 수술을 해야해서…"

공장이 한창 성수기라 정신을 차릴 수 없이 바쁜 와중에 샘플실 여직원이 또 휴가를 냈단다. 금방 춘절 휴가를 다녀왔는데 이 바쁜 철에 무슨 휴가를, 그것도 나흘씩이나 주냐고 현장 관리자를 닦달하니 피치 못할 사정을 이야기 한다. 임신을 해 낙태 수술을 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기어이 올 것이 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2~3년 전부터 공단 작은 골목에까지 여관이 들어서더니 내가 사는 아파트에도 불법 여관 간판이 조그맣게 내걸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업소들이 대부분 공단 근로자들의 풋사랑을 해결하는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는 것쯤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더욱이 우리 공장의 직원들도 대부분 애인이 있다는 소문이어서 혹시나 이런 일로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염려하면서도 딱히 이들에게 성교육을 할 만한 주제가 못 되어 그냥 지켜보기만 하였는데 결국 염려는 현실이 되었다.

춘절 휴가 전에도 한창 바쁜 시기에 완성반의 어린 여직원이 낙태수술을 받고 미리 휴가를 얻어 고향에 돌아갔다는 소식을 듣곤 걱정이 되던 참이었다. 그런데 한 달이 못 돼 이런 일이 벌써 두 차례나 발생한 것이다. 둘 다 사내 연인이어서 소문이 빨리 퍼진 것인지 이제는 흔한 일이 된 것인지 나로선 감이 잡히지 않는다.

공단입구의 허름한 여관 하루 숙박비 30위안(약4,000원)의 허름한 여관이 우리 공장 주변에만도 여러 곳이 있다.
▲ 공단입구의 허름한 여관 하루 숙박비 30위안(약4,000원)의 허름한 여관이 우리 공장 주변에만도 여러 곳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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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혼전 임신이 여자 인생에 치명적이진 않잖아?"

아직 어린 나이인데 낙태수술을 하고 몸을 추스르려면 나흘 가지고 될까 싶어 조심스레 동생에게 며칠 더 휴가를 줘야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원래 맹장수술은 휴가기간이 일요일 포함 5일이란다. 그것은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면서. 갑자기 뭔 맹장수술인가 의아해 하는 내게 동생이 한국에서 자신이 겪었던 일을 이야기 해준다.

"언니는 맹장수술이 뭔지 모르지? 그거 우리나라 80~90년대에도 아주 골머리 썩던 일이었어. 아예 회사가 외과 간판 걸고 산부인과 보는 병원과 계약을 하고 일 처리를 했으니까. 눈치가 이상한 애들은 병원에 보내 보면 백발백중이야.

그럼 의사선생님이 전화를 해. 맹장수술 해야 하니까 와서 수술동의서에 서명해 달라고. 날마다 자정이 넘도록 야근을 하는데도 언제 연애할 시간이 있어서 사고를 치는지…. 아무튼 한 달에도 서너 건씩 그런 일이 있었다니까.

결혼할 여건이 된다 싶은 애들은 잘 얘기해서 결혼을 시키기도 했지만 문제는 상대 남자가 대부분 결혼할 의사가 없다는 거지. 거기에 비하면 이곳은 그 문제만은 우리보다 나은 편이야. 그 일이 여자 인생에 치명적이진 않잖아?"

아직 어린 나이에 낙태수술을 하고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고된 일을 하는데 뭐가 더 낫다는 것인가 했더니 한국에선 그런 일을 겪은 아이들이 회사를 그만두고 유흥업소 등으로 전직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여기선 우리나라처럼 따가운 시선을 보내지 않기 때문에 그런 일신상의 문제로 전직하는 경우는 드물다는 것이 동생의 생각이다.

16세 이상 여성은 아이 낳지 않겠다는 각서 제출해야

동생의 말을 전적으로 동의하긴 어렵지만 아무튼 춘절 전에 이미 공장 안에 소문이 나서 내게까지 알려졌던 그 아이가 아무렇지도 않게 일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동생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신적 충격이야 우리보다 덜하다 하더라도 아직 어린 아이들인데 몸이 얼마나 망가질까 생각하면 여전히 걱정스럽다.

중국은 아직도 인구 억제 정책을 강도 높게 시행하는 나라다. 그래서 결혼 적령기이며 남녀 모두 결혼할 의사가 확고한 젊은이들조차 임신하면 낙태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이곳 현실이다. 

중국의 인구 억제 정책 중 하나는 16세 이상 여성이면 누구나 자기 호구(우리의 주민등록과 같음)가 있는 촌정부의 '국가계획생육위원회'(國家生育委員會)에서 발급하는 '유동인구혼육증'(流動人口婚育證)을 거주하는 촌정부나 취업기관에 제출해야 한다. 이 증명서는 결혼을 하거나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각서를 제출하고 발급받는 것이다.

유동인구혼육증 국가계획생육위원회에 출산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제출하고 발급 받을 수 있다. 외지에서 취업하기 위해선 반드시 필요하다.
▲ 유동인구혼육증 국가계획생육위원회에 출산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제출하고 발급 받을 수 있다. 외지에서 취업하기 위해선 반드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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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정부 허락 없이는 아이 낳을 수 없다

그러니 촌정부의 허락 없이는 아이를 낳을 수가 없다. 만약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출산한 사실이 알려지면 삼만 위안에서 오만 위안 정도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니 이곳 근로청소년 평균 월급이 대략 천오백 위안(한화 약 이십만 원)인 점을 감안하면 얼마나 터무니없는 벌금인가 말이다. 결코 아이를 마음대로 낳을 수 없는 강력한 정책인 것이다.

이곳 역시 자본주의 사회로 발전하면서 각종 성인 오락물이 난무하고 청소년들의 성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매체와 시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그에 따른 당국의 교육이나 정책은 부재한 채 강력한 출산 억제책만 시도하고 있으니 피임에 실패한 모든 여성들은 선택의 여지없이 낙태를 해야만 하는 것이다.

서로 사랑하며 결혼할 여건을 갖추고 있는 사람들까지 무조건 낙태를 해야 하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성인용품 판매점 공단입구, 주택가 어느 곳이나 이런 성인용품 전문매장이 있다. 친절(?)하게도 한글로 낯간지러운 말들이 쓰여 있기도 하다.
▲ 성인용품 판매점 공단입구, 주택가 어느 곳이나 이런 성인용품 전문매장이 있다. 친절(?)하게도 한글로 낯간지러운 말들이 쓰여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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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나 근래에는 미혼 여성의 임신 연령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임신과 낙태에 따른 부작용이나 위험에 대해선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는 것 같다. 부주의한 임신과 낙태가 여성의 건강에 얼마나 치명적인지, 이들은 진정 모르고 있는 것일까?

간략히 살펴본 중국의 인구 억제 정책

1. 중국의 인구 억제책의 근간은 1가구 1자녀이다. 다만 한족은 첫 아이가 딸일 경우 4년 후에 '계획생육위원회'의 허가를 얻어 1자녀를 더 낳을 수 있다. 이를 엄격히 하기 위해 공직자가 만약 2자녀를 두게 되면 공직에서 물러나야 한다. 소수민족은 원칙적으로 2자녀까지 둘 수 있으나 민족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다고 한다.

2. 인구정책은 '국가계획생육위원회'에서 총괄한다. 예전에는 국가가 주도하던 것을 현재는 각 지방정부가 주관하며 지방마다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결혼한 부부는 자신의 호구(호적)가 있는 촌정부의 '계획생육위원회'에서 출산허가를 얻어야 한다. 허가된 유효기간은 1년으로 이 기간이 넘으면 다시 허가서를 제출해야한다. 이곳 청도는 위에서 말한바 대로 16세 이상 외지 여성은 반드시 '유동인구혼육증'을 발급받아 촌정부나 취업기관에 제출해야 한다.

3. 또 하나의 억제책은 만혼만육(晩婚晩育) 정책이다. 여성이 법률적으로 20세면 결혼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결혼 후 바로 출산허가를 받기는 쉽지 않다. 대략 25세 이상이 되어야 허가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 자칫 잘못 임신하면 당연히 인공유산을 해야만 한다.


#낙태#혼전임신#중국의인구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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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살면서 오블에 <고단한 삶의 놀이터>란 방을 마련하고 타국살이의 고단함을 풀어내고 있습니다. 블로그 운영한 지가 일 년 반이 되었으나 글쓰기에 대해 늘 자신이 없어 좀 더 체계적이고 책임있는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에 시민기자 활동을 신청합니다. 주로 사는 이야기와 여행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주부의 시선에서 바라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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