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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나'는 66세. 5년 전 아내를 먼저 보내고 지금은 요양원에서 살고 있다. 가진 병은 심장병과 당뇨와 요실금. 치매나 중풍인 다른 노인들보다는 훨씬 양호하다.

 

젊어서도, 아내가 떠나고 난 직후에도 요양원에서 남은 생을 보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소설을 읽고 있는 나는 어떤가? 자식들 다 떠나고 홀로 남게 되었을 때 어디서 살게 될까? 지금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는 내 나름의 노년 생활이 가능하기는 할까?

 

주인공 역시 처음에는 괜찮았다. 홀로 사는 생활, 은퇴 생활에 적응을 해 데생도 배우고 기원에도 출입하고… 그러나 얼마 못 가 무력감에 빠져든다. "책과 돋보기만 있으면 노후 걱정 없다!"고 큰소리 치시던 내 아버지도 결국은 무기력해지셨다. 회복하는 데 오래 걸리셨다. 

 

고향 근처 요양원인 까닭에 고등학교 동창들을 두엇 요양원에서 만난다. 거기다가 첫사랑까지…. 그러나 모든 남학생의 우상이었던 첫사랑 그녀는 치매 환자. 나를 기억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의미 있는 대화는 불가능하다.

 

자기 이름도 모르면서 노래 가사는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그녀와 나란히 하는 산책은 요즘 최고의 기쁨이다. 그런데 글쎄 내가 하는 말에는 무조건 '그럼요, 그럼요.' 밖에 모르는 그녀가 무식하고 유치한 친구 놈의 원색적인 농담에는 깔깔대고 웃는 게 아닌가.  부아가 나고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인정하기 싫어도 질투가 분명하다.

 

친구의 갑작스런 사망, 요양원 입소 보증금을 내달라는 그녀의 아들, 이런 저런 상황의 변화 속에서 나도 차츰 기억이 희미해져 간다.

 

짧은 소설 속에서 남은 인생을 요양원에서 보내는 노인들의 일상과 그들의 생각, 느낌, 지나온 시절, 요양원 안에서의 관계 맺음, 사랑, 슬픔, 죽음, 후회 등이 슬라이드처럼 한 장씩 지나간다. 영화처럼 한꺼번에 죽 이어 보여주지 않아서 오히려 더 절절하다. 

 

담담한 듯, 허무한 듯 지나가는 이야기 사이 사이에서 나는 주인공의 삶을, 그 친구들의 생을 미루어 짐작하며 함께 아릿하고 씁쓸하고 허전해한다. 젊은 작가의 세밀함과 통찰력이 놀랍다.

 

'나는 무언가… 그래도… 그랬다' 주인공의 지금 심정을 나타내는 말로 자주 등장하는 문장이다. 맞다. 지금의 나 역시 같다. 웬지 나는 그래도… 그럴 것 같은… 그러나 과연 그럴까?

 

아내 생전에 모처럼 중국집에 가서도 더 값이 싼 자장면이 눈에 보여 짬뽕을 한 번도 못 먹었는데, 친구 장례식에 가보니 친구 아들의 동료들은 "(유산을) 5억은 받아야 호상"이라고 찧고 까분다. "호상 소리 듣긴 글렀군" 중얼거리는 주인공만큼 나도 입이 쓰다.

 

우리들 삶이라는 것이 이토록 비루하고 남루한 것이 줄 알면서도, 우리는 무얼 보고 이토록 정신 없이 달리는가. 그렇다면 죽음은 또 어떤가. 작가는 주인공의 입을 빌어 말한다. '그 어떤 죽음도 비루한 일상(日常)일 뿐'이라고….   

 

66세 노인의 요양원 생활은 인생 80 시대, 100세 시대 한 켠의 적나라한 현실이다. 그래서 실감이 난다. 주인공이 '이제 어떤 버스도 오지 않는다는 걸 나는 잘 알고 있다'고 '영원한 퇴근'이라고 여기는 것이 노년의 삶의 진실이기에….

 

은퇴 이후의 성공적인 취업 도전기와 눈부신 이모작 인생 설계 이야기가 보통 사람들을 주눅들게 하는 이 시대에 그래서 이런 소설은 진정성의 힘을 느끼게 한다. 그러니 친구들 서너명이 같은 요양원에서 만나는 설정의 작위성 정도는 기꺼이 눈 감아 주기로 한다.    

 

덧붙이는 글 | 박민규 <낮잠> (2008 이상 문학상 작품집, 문학사상사, 2008)


사랑을 믿다 - 2008년 제32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권여선 외 지음, 문학사상사(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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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출간

#낮잠#2008 이상 문학상#박민규#책 속의 노년#노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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