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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계절이 오면 더욱 햇살이 가득한 우리 집 베란다엔 국적 불명의 감나무 한 그루가 있다.

 

김장 때 어머님이 주신 뾰족감,  겉보기엔 아주 탐스럽고 먹음직스러워 보이는데 보기와는 달리 먹을 수가 없을 정도로 떫었다. 그래서 소쿠리에 담아 베란다 양지바른 곳에 내다 놓은지  보름이 지나도록 여전히 떫은맛 그대로였다. 

 

아무래도 너무 일찍 따서 먹을 수가 없는 감인가보다, 라는 생각에 장난기가 발동한 필자는 어차피 먹지도 못할 거 장식용으로나 써볼 요량으로 화분에 심어져 있는 늙은 벤자민의 죽은 가지 여기저기에 소쿠리에 있는 감을 몽땅 꽂아놓고 몇 발짝 뒤로 물러서서 감상을 했다. 

 

나도 모르게 새어나오는 탄성~! “어머~ 우리 집에도 감이 주렁주렁 열렸네~”  영락없는 감나무였다. 아마 도시에서 자라 감나무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는 사람은 감나무라
해도 곧이들을 정도로 그럴싸했다. 

 

시골집 뜨락에 그것과 다를 바 없는 우리 집 베란다에 벤자민감나무, 보고 또 봐도 그야말로 장관이다. 혼자보기가 아까워 남편이 좀 일찍 와주길 기대하는데 호랑이도 제 말을 하면 온다더니 초인종 소리가 났다.  현관에 들어선 남편이 신발을 벗자마자 베란다에 좀 가보라고 했다.

 

뭔 일인가 싶어 베란다로 가던 남편이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감을 발견하고는 신기한 듯 가까이 다가가 만져보며 "보기 좋은데~ 누가 보면 진짜 감나문 줄 알겠어~" 했다. 

 

관상용으로 보고 즐기기만 하던 어느 날 아침, 나무 밑에 감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다시 끼워 놓기 위해 집으려는데 단단했던 감이 말랑말랑 연시가 되어 있는 게 아닌가 떨어질 때의 충격으로 한 쪽 귀퉁이가 찢겨지긴 했지만 영락없는 과일가게에서 파는 연시였다.
 
순간 맛이 궁금해서 살짝 입에 대 보니 먹을 수 없이 떫던 감이 신기하게도 꿀맛처럼 달콤하게 변해있었다.   

 

두꺼웠던 껍질도 얇아져서 술술 잘도 벗겨진다. 벗기는 재미와 달콤한 맛에 한 입 한 입 먹다보니 어느새 뚝딱, 큼직해서 한 개를 먹었는데도 배가 든든했다. 다른 감은 어떤지 궁금해 살펴보니 아직 덜 익은 건 오렌지색, 익은 것은 짙은 주홍색으로 만지면 곧 터질 듯 갓난아기 볼처럼 말랑말랑했다. 

 

며칠 전 직원이 줬다며 남편이 가지고 온 단감 한 상자, 그 중에서 단단한 것을 골라 익은 감을 빼낸 가지에 대신 끼워 놓니 감나무는 여전히 풍성해 보인다. 올 겨울은 감 익혀 먹는 색다른 재미에 푸~~~~~~욱 빠질 것 같다.

 

종일 해가 드는 정남향 베란다엔 남의 둥지에 알을 낳은 뻐꾸기처럼 제 나무도 아닌 벤자민 가지에 주렁주렁 매달린 오렌지색 감이 주인아주머니의 애정 어린 시선과 유리문을 통해 들어온 따사로운 햇살 속에 짙은 주홍으로 익어가고, 식탁 위엔 낮에 따다 논 남편 몫의 연시가 주인님이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다.


#단감#감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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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저는 글쓰기를 좋아하는 52세 주부입니다. 아직은 다듬어진 글이 아니라 여러분께 내놓기가 쑥스럽지만 좀 더 갈고 닦아 독자들의 가슴에 스며들 수 있는 혼이 담긴 글을 쓰고 싶습니다. 특히 사는이야기나 인물 여행정보에 대한 글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이곳에서 많을 것을 배울 수 있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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