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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의 대규모 녹지화 계획으로 철거위기에 놓인 세운상가.
ⓒ 손기영
1968년 완공되어 39년 동안 종로의 대표적 상권으로 자리 잡았던 세운상가가 철거위기에 놓였다. 서울시는 세운상가를 중심으로 남쪽의 남산과 북쪽의 종묘를 잇는 폭 90m, 길이 1km에 대규모 녹지대를 조성한다는 '세운상가 남북녹지축 조성사업'을 본격적으로 착수하겠다고 28일 발표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우선 1단계로 재정비촉진구역인 세운 4구역과 북쪽 세운상가가 포함된 종로에서 청계천 구간의 녹지화를 2008년 12월까지, 그리고 나머지 절반에 해당되는 청계천에서 을지로 구간 남쪽 세운상가의 녹지화는 2012년까지 단계적으로 실시할 예정이다. (세운상가 구역과는 별도로 을지로~퇴계로 지역 녹지화 공사는 2015년까지 추진될 예정)

하지만 상가를 철거하고 이곳에 대규모 녹지대를 조성하겠다는 서울시의 방침에 종로 세운상가의 상인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지난 30일 찾아간 세운상가 전면에는 서울시의 일방적인 상가 철거계획을 규탄하는 현수막이 내걸려 있었고, 곳곳에는 철거소식을 걱정하는 상인들의 한숨 섞인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그 가운데 28년간 이곳을 지켜온 토박이로써, 현재 세운상가 시장협의회 임원을 맡고 있는 정진(49)씨를 만나볼 수 있었다. 1979년 가게직원으로 처음 세운상가와 인연을 맺은 그는 1993년 그동안 모은 목돈으로 텔레비전, 오디오, 선풍기 등 각종 가전제품을 판매하는 '시온전자'라는 자신의 가게를 차렸다고 한다.

"세운상가 철거, 한마디 상의도 없었습니다"

▲ 세운상가의 28년 토박이 정진씨. 그는 현재 세운상가 시장협의회 임원을 맞으면서, 서울시의 일방적인 상가철거 정책에 항의하는 투쟁을 회원들과 함께 벌여나가고 있다.
ⓒ 손기영
"종로 세운상가 철거계획과 대규모 녹지화 사업은 서울시의 일방적인 생각이죠. 이 계획이 나오기까지 이곳 상인들과 한마디 상의도 없었습니다."

서울시의 세운상가 철거계획에 대한 심정을 묻자 그는 조금은 흥분한 모습으로 상인들의 의사를 전혀 반영하지 않고 추진되는 서울시의 일방적인 정책을 질타하며 말문을 열었다.

"만약 서울시에서 20~30년 동안 근무한 공무원에게 갑자기 책상을 치우고 퇴직금도 없이 사무실을 나가라는 통보가 떨어지면 어떤 기분이 들겠습니까? 지금 서울시로부터 상가 철거통보를 받은 세운상가 상인들의 심정이 아마 이럴 것입니다."

이어 정씨는 "오세훈 서울시장은 후보시절 상인들과 했던 약속을 일방적으로 어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오 시장은 후보시절 이곳에 당시 자신의 선거본부장이었던 곽영훈씨를 보내 세운상가 철거는 미룰 수 없는 사안이나, 철거계획 발표 전에 반드시 상인들과 지속적인 협의를 통해서 최선의 방법을 마련하겠다고 시장협의회와 문서로 약속했죠. 그리고 선거기간 각종 토론회에 나와서도 상대후보의 공세에 맞서 이 부분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시장에 당선되고는 돌변해 후보시절 약속을 지키기는커녕, 독단적이고 일방적인 정책으로 세운상가 상인들과의 약속을 저버렸습니다."

정씨는 또 세운상가 철거에 대한 보상대책으로 서울시가 상가상인의 3분의 1을 송파구 장지동에 건설될 동남권 유통단지로 이주시키고, 이에 해당되지 않는 상인들에게는 점포 이사비용과 3개월분 영업손실을 보전해주겠다는 방안을 제시했지만, 이는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얼토당토하지 않은 보상대책"이라고 강조했다.

"동남권 유통단지 이주는 시울시가 지난 청계천 복원공사 전 이곳을 포함해 주변 상인들을 대상으로 신청자를 모집했죠. 당시 벌이가 막막해 새로운 곳으로 떠나려는 일부 상인들이 신청에 응했지만, 현재는 당시 신청했던 사람들 대부분이 이주를 망설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송파구 동남권 유통단지에 대한 서울시의 계획이 구체적이지 않아서 이전에 상인들과 했던 약속들이 잘 지켜질지 우려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서울시 보상대책 생존권 보장에 턱없이 부족"

▲ 정진씨는 세운상가에서 '시온 전자'라는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 손기영

수십년 간 상인들이 땀 흘려 일군 상권, 단골고객, 거래처 등 무형의 자산은 단순히 돈 몇 푼으로 보상받을 수 없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세운상가 상인들은 일차적으로 이곳을 떠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정씨는 "세운상가 철거사업이 녹지대 조성 등 공공의 이익을 위해 시행되기에 시민의 한 사람으로써 시의 방침을 따라야 하겠지만, 1000만원 가량의 이사비용과 3개월 영업손실분만 보전해주겠다는 보상대책은 상인들의 생존권 보장에 턱없이 부족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여기에는 정작 중요한 권리금 문제(보통 점포당 1억~1억5000만원)가 빠져있어, 상인들과의 지속적인 대화를 통한 최선의 방안이 나오기 전까지는 현 세운상가 철거정책에 절대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서울시가 주요 언론사에 배포되는 보도자료를 통해, 세운상가 철거 대한 사실을 왜곡하는 '언론 플레이'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아직 상인들과 한 번도 이야기되지 않은 보상대책을 일방적으로 보도하고 있으며, 세운상가 철거가 기정사실화 된 것 같이 다뤄져 상인들의 영업에 좋지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세운상가 상인들은 서울시의 상가철거 계획에 반발하는 대규모 투쟁을 진행하고 있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정책에 전혀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 도심의 슬럼화 해결과 친환경 생태도시의 건설 역시 중요한 과제이다. 하지만 상인들의 기본적인 생존권 문제조차 보장하지 못하는 철거정책은 '일방적인 행정'이라는 오명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 세운상가 3층에서 바라본 상가 주변의 모습. 오랜 세월의 흔적과 함께 땀 흘려 생존터전을 일군 상인들의 애환을 느낄 수 있었다.
ⓒ 손기영

#세운상가#철거#녹지화#서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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