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28개월의 군 복무기간 중 즐거웠던 추억들이 많지만, 그 중에서 하나를 꼽으라면 근무가 끝나고 소대원들과 함께 먹었던 '야식'에 대한 추억이 아닐까 생각된다. 필자가 근무했던 부대는 모 공군기지 경비소대로, 근무 특성상 인적이 드믄 부대외곽에 위치해 있었다. 야간근무가 많아 소대 안에 자체적으로 야식 등을 해결할 수 있는 식당이 마련되어 있었다.

또한 공군부대의 마트격인 B.X로부터도 멀리 떨어져 있어, 이동배식을 통한 아침, 점심, 저녁 3식 이외에는 별다른 먹을거리가 없었다. 이런 단조로운 식사메뉴는 소대원들의 배를 주리게 했고 배고픔에 대한 욕구불만은 군 입대 전 남자의 자존심을 내세우며 부엌에 들어가기를 꺼려했던 소대원들에게 요리에 대한 창조적인 열정을 불러일으켜 주었다.

▲ '짬뽕찌개'에는 묵은김치, 대파, 라면, 통조림 햄, 참치 등 다양한 재료가 들어간다.
ⓒ 손기영

▲ 찌게에 넣기 전 도마 위에 올려진 각종 재료들
ⓒ 손기영
소대 식당에는 조그만 가스레인지 한 대와 프라이팬, 냄비 등 간단한 조리기구가 구비되어 있었고, 이곳에서 군생활의 주린 배를 행복하게 채워준 소대원들의 다양한 요리가 탄생되었다. 장병장의 계란말이, 차일병의 김치볶음밥, 김상병의 라볶이… 그 종류도 여러 가지였지만, 병사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며 고생하는 소대원들을 위해 선임하사가 손수 만들어 주었던 '짬뽕찌개'의 맛은 제대를 한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군 밖에서 부대찌개로 불릴 법한 선임하사의 '짬뽕찌개'는 부대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배식 김치, 보급라면, 대파, 통조림 햄, 참치, 냉동만두 등의 갖은 재료를 사용했기 때문에 소대원들은 그의 찌개를 그렇게 붙렀다. 특히 찌개에 들어갔던 대파는 소대 뒤편 텃밭에 심었던 무공해 채소였고, 통조림 햄과 참치는 평소 선임하사가 관물함에 몰래 숨겨두었다가 힘든 훈련이 끝난 뒤 혹은 소대원의 생일 때에만 들어갔던 '특별 재료'이기도 했다.

▲ 물이 팔팔 끓으면 묵은 김치를 넣고, 김치가 잘 익을 때까지 기다린다.
ⓒ 손기영

▲ 김치가 잘 익었으면 준비한 각종 재료들을 함께 넣어준다.
ⓒ 손기영

▲ 마지막으로 찌개에 고추장을 조금 풀어 간을 맞춘다.
ⓒ 손기영
요리에 대한 경험이 많지 않았던 선임하사의 '짬뽕찌개' 조리법은 매우 간단하다. 우선 냄비에 일정량의 물을 부은 다음 물이 팔팔 끊을 때까지 기다린다.(단 국을 끓이는 것 같이 물을 너무 많이 부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묵은 김치를 먹기 좋게 잘 썰어 냄비에 집어넣고 김치가 충분히 익을 때까지 기다린다.

이어 라면, 통조림 햄, 참치, 대파 등의 여러 가지 재료를 함께 넣어주고 마지막으로 간을 맞추기 위해 고추장을 찌개에 살짝 풀어주면 완성이다.(단 통조림 안에 든 참치에는 기름기가 많으므로 건강을 생각해, 찌개에 넣기 전 반드시 기름기를 꽉 짜내는 것을 잊지 말자.) 보통 국이나 찌개에 간을 맞추기 위해 조미료를 사용하나, 당시 소대에는 조미료가 없었기 때문에 선임하사는 찌개에 고추장을 풀어 맛을 깊게 했다.

제대 후 처음 앞치마를 두르고 도전해 본 '짬뽕찌개'의 맛은 예전과 같지 않았다. 벌써 사회인이 된 지도 2년이 되어가고 어느 정도 사회생활에 익숙해진 시기라 배고팠던 군 시절에 먹던 짬뽕지개의 맛은 잘 나지 않았다. 하지만 요리를 만들면서 그동안 바쁜 생활로 잊고 지냈던 군 시절의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 중 선임하사가 소대원들을 위해 짬뽕찌개를 끓이면서 항상 입버릇처럼 했던 말이 생각났다.

"배고픔은 남자들을 주방으로 향하게 한다."

당시 결혼을 한 지 얼마가 안 된 선임하사는 부대에서 소문난 애처가였다. 그리고 군대에 오기 전 남자의 자존심을 내세우면서 부엌에 들어가 물 한번 묻혀보지 않았던 소대원들을 나무라며, 요리의 즐거움을 몸소 가르쳐 주었다. 비록 군 생활은 고단했지만 선임하사와 함께 요리를 하며 보냈던 시간은 정말 즐거웠다. 그리고 소박하지만 그의 사랑이 담긴 '짬뽕찌개'는 아련한 병영시절의 향수와 함께 소중한 추억으로 기억될 것이다.

#찌개#요리#선임하사#군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