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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관 1주년을 맞으면서도 수십 년 역사의 박물관들도 못한 일들을 하고 있는 유교문화박물관
ⓒ 김기

안동 하면 떠오르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영국 여왕과 미 대통령의 잇단 방문으로 주가를 드높인 안동 하회마을이 우선 떠오른다. 그리고 더 나아가 도산서원을 떠올리는 사람이라면 안동에 대해 애정과 관심이 있거나 아니면 우리나라 유학에 대한 조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도산서원과 퇴계 이황, 병산서원과 유성룡 등 대 유학자들을 비롯해서 이육사 등 독립운동과 그리고 전혀 관계가 없을 것만 같은 하회탈춤까지도 모두 안동지역이 가진 유교문화의 동일한 환경에 놓여 있음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한국의 고택 70%가 경북에 존재하고, 그중 다시 70% 정도가 안동지역에 밀집된 흥미로운 사실은 몇 가지 역사, 문화적 환경을 암시한다. 고택의 존재는 거의 종택(종가집)과 깊은 연관을 갖고 있다. 종가를 수백 년 유지하는 힘은 단연 조상을 섬기는 의식에서 나오는 것이며, 그 종교적 배경은 분명 유교임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근현대화 과정에서 유교는 일반에 모순되는 정서로 자리 잡아 왔다. 전근대의 상징처럼 여겨지면서 동시에 선비정신이라는 가장 본받아야 할 정신의 경지인 것이 현재 우리들 의식 속의 유교의 모습이다. 게다가 외래종교의 지배적 발달로 인하여 유교는 종교적 의미가 폄하되었다.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유학과 유교문화는 조상들의 오래된 전통으로 우리들 삶 속에 숨 쉬고 있다.

▲ 박물관 전시실 초입에는 공자와 아이들의 만남을 통해 유교 전반의 이해를 돕는 인형실이 있다. 마침 단체관람 온 초등학생들이 신기한 듯 디지털 그림자극에 몰두하고 있다
ⓒ 김기

최근 한류문화의 동아시아 석권 등으로 한국의 문화는 어느 때보다 그 가치를 발하고 있고, 그 한국의 재조명 과정에서 유교문화는 피해갈 수 없는 필연의 주제이다. 그렇게 유교문화는 21세기 들어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유교문화권을 유지하고 있는 대표적 지역이 바로 경상북도 안동인 것이다. 그곳에는 아직 일반에는 생소한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심우영)이 안동을 중심으로 한 유교유학 연구에 매진하고 있으며, 민간을 대상으로 해서는 작년 유교문화박물관(관장 박원재)을 개관하였다.

우리나라에 수백 개의 사립박물관이 전국에 퍼져 있지만 당연할 듯 하면서도 없었던 것이 유교문화관련 박물관인데 6월이면 개관 1주년을 맞는다. 유교문화박물관에는 무엇이 있고, 다른 박물관과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찾아가 보았다.

안동시 버스터미널에 내려서 다시 시 외곽으로 빠져 30분 가량을 더 가야 한국국학진흥원과 함께 위치한 유교문화박물관을 만날 수 있다. 터미널에 1시간 가량의 간격으로 배차되는 버스가 있기는 하지만 외지인의 경우 택시를 이용하는 경우가 보통이라고 한다. 박물관 직원들이야 셔틀버스로 출퇴근을 하지만, 안타깝게도 30명의 자원봉사자들과 일반 관람객들은 교통에 불편을 겪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버스에서 내리면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한국국학진흥원이며, 산기슭을 따라 배치된 진흥원 건물을 통과하면 산비탈에 선 유교문화박물관이 보인다. 박물관은 4층 건물에 상설전시실 3개 층과 기획전시실 1개 층으로 구분되어 있다. 그리고 박물관 뒤편으로 유물수장고로 쓰이는 부속건물인 장판각 두 동이 세워져 있다. 장판각에는 사립박물관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훈증실이 설치되어 유물의 보존처리에 만전을 기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박물관 내부 전시실은 유교라는 고풍스러운 주제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요소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박물관 주관람객이 일반보다는 아무래도 교육적 측면을 감안한 학생들이기 때문에 자연 전시시스템 자체가 전시 주제를 감량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유교라는 주제도 그렇기에 전시실 분위기도 사뭇 무거울 것을 예상했다가 초입부터 선입견을 훌훌 벗어던지게 한다.

▲ 왕이 직접 채점한 과거 응시자의 서문에 대해 설명하는 박원재 관장
ⓒ 김기

애초에 박물관을 염두에 두고 건축된 건물이 아니기 때문에 전시환경이 썩 좋은 편은 아니지만 관람을 위한 동선은 대체로 일관되게 정돈되었고, 디지털 전시시설로 인해 관람객의 흥미를 자아내기에 손색이 없다. 전체적으로 유교의 기본원리라 할 수 있는 수신제가치국(修身齊家治國)의 다섯 단계로 전시흐름을 읽을 수 있다.

전시실로 들어서면 먼저 공자와 만나는 어린이들의 인형실을 만나게 된다. 그곳에 가까이 가면 디지털 센서가 작동하여 그림자극 형식의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초등학생이나 중학생 정도면 바로 호기심을 발동하게끔 유도한다. 또한 디지털 전시시스템은 단지 유물로써 설명하기 어려운 유교에 대한 의미에 대해 쉽게 설명하는데 효과적이다. 그렇게 흥미를 잔뜩 돋우어서 2층, 3층 올라가면서 관람객들은 새삼 얼마나 유교가 우리 생활과 밀접한 지를 새삼 발견하게 된다.

사실 2,3층에 전시된 유물들을 딱히 유교문화박물관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볼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유교적 측면에서 정리함으로 해서 조선의 역사를 관통하고 있는 유교문화의 새삼스러운 확인을 통해 역사와 문화의 정체성을 정리한다는 측면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사람이 일상에서 호흡을 달리 인식하지 않는 것처럼 한국인의 생활 전반에 깊이 배인 유교문화에 대해 무관심했던 관람객들은 박물관 4층을 돌고나서 재발견한 유교문화의 뿌리에 놀라는 모습들이었다.

▲ 유교문화박물관은 안동 다른 문화기관들과 마찬가지로 자원봉사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활기찬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단체관람 온 초등학생들에게 전시물을 설명하는 자원봉사자 모습.
ⓒ 김기

그렇지만 유교문화박물관에 숨겨진 진정 놀라운 사실을 따로 있다. 개관 전부터 진행해 온 유교 고문서와 목판 기탁운동인데, 이를 통해 안동지역에 산재된 수많은 고문서, 목판을 안전하게 보존하고 연구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보통의 박물관은 구입이나 기증의 방법을 주로 활용한다. 국립박물관들 경우 매년 일정 규모의 유물구입예산을 책정하기는 하지만 대개의 민간사립박물관들은 여의치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박물관이 소유하고자 하지 않고 과학적이고 체계화된 유물관리시스템으로 그저 관리만 해준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유교문화박물관은 유물의 소유를 포기하고 대신 파손,도난 등에 방치된 유물들을 구하는 쪽으로 유물수집방향을 정했다. 그 결과 국보나 보물 등 지정문화재급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외면할 수는 없는 소중한 유물들을 안전한 박물관 수장고로 옮겨 올 수 있었으며, 소유자들 또한 날로 어려워지는 관리문제에서 벗어나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되었다.

유교문화박물관의 짧은 이력에도 불구하고 유물기탁시스템은 우리나라 박물관 유물수집에 신기원을 이루어 박물관이 예산의 압박없이 유물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론을 제시했다.

▲ 후발주자는 대체로 불리할 수밖에 없는 것이 박물관이지만 반면 참고하여 더 나은 결과를 담보할 수 있는 장점 또한 있다. 유교문화박물관의 유물설명 아이콘은 세련되고 단정해서 관람자의 시선을 쉬이 잡아끈다.
ⓒ 김기

덧붙이는 글 | 유교문화박물관이 성과를 높이고 있는 유물기탁시스템을 뒷받침하는 장판각 관련 기사가 2부로 이어집니다.


#안동#퇴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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