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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 쌓여 있을 때부터 괜히 내키지 않더니만, 우연히 제2권 '한니발 전쟁'을 읽게 되었다. 베스트 셀러 중 하나였다고 하니, 나름대로 기대를 가지고 읽었다.

우선, 이 <로마인 이야기>가 우리나라에서 왜 그렇게 인기였는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건 역사서가 아니라 수필이라고밖에 할 수 없을 것 같다. 개인이 느끼는 역사의 수필…. 하지만 이 수필이란 게 너무나 잘 다듬어져 있어서 자칫 역사로 비쳐질 수 있는 것, 이것이 이 책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라면 매력이고 독이다.

시오노 나나미의 시대가 일본 제국주의 시대와 맞물려 있는 것을 생각하면 <로마인 이야기>에 담겨 있는 나나미식 로마 찬양이 반대로 일본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며 그녀의 역사를 보는 방식에 그리 놀랄 일도 아니지만 그것에 열광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놀라운 것은 사실이다.

내가 이 책을 끝까지 읽으면서 당황스러웠던 것은, 왜 이 책이 아무런 여과나 비판없이 한국에서 베스트 셀러로 읽혀지고 있냐는 것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일본의 식민지를 겪은 우리는 나나미의 제국주의 사상에 따라 이 책을 여과없이 잘 받아 들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더우기, 이제는 과거를 묻고 신세대에 맞게 새로운 세계관으로… 뭐 이렇게 나가는 시대라 37년생 나나미 할머니의 제국주의 사상이 참으로 잘 다듬어져 로마를 통해 우리 신세대에게 읽혀지고 있는 것이 마음 한구석에서 옹차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더우기 우리는 아직 학교에서조차 기반잡힌 현대사도 제대로 가르치고 있지 못한 실정이지 않은가.

그럼, 대략, 이 2권을 읽으면서 놀라워 했던 부분들을 추려보자면, 시오노 나나미는 머릿글에서 자신은 호소하거나 주장하는 것으로 '역사를 이용하는' 부류가 아니라 역사를 서술하고자 한다고 했는데 과연 그럴까?

책의 곳곳에서 나나미는 승자인 로마가 자신의 언어를 강요하기보다 그리스어와 문화를 수용하며 자유와 독립을 주었다고 계속 입을 딱딱 벌리면서 놀라워 하고 있다. 일본인으로서 놀라워 하는 것은 자연스럽다고 생각되긴 하지만 말이다.

또한 로마는 '로마 연방'을 통해 그야말로 '선정'을 베풀었다는 식으로 기술하고 있는 반면 한니발 편이나 마케도니아 편이나 시리아 편이나, 어떤 식으로든 로마를 '배반'한 나라들에게는 '따끔한 맛'을 보여준다는 식의 지극히 로마 입장에서 기술하고 있다.

특히 책의 끝부분에 이르러서는 그 절정에 달하게 되는데, 나나미는 반 로마 정서를 지닌 그리스인을 정치적으로 모자란 족속들로 치부해 버리는가 하면, 로마의 카르타고에 대한 조치(카르타고의 수도를 파괴하고 모든 시민들은 해변가 15km로 더 들어가라)에 대한 전무후무한 카르타고인의 봉기에 대해 그저 간단하게 우연의 일치들로 인해 애석하게 사라져 버린, 정치성이 모자란 족속 정도로 밖에 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더우기, 나나미는 이곳에서 로마의 조치에 대해 고대 역사가들의 이름까지 거론하며 '강경하긴 했어도 가혹하진 않았다. 도리에 어긋나지 않았다'라고 쓰고 있다. 그러면서 다른 해안가 도시들이 해안가에서 실제로 몇 km 떨어져 있는지를 들어 보이면서 15km가 뭐 그리 대수냐는 식이다.

그럼 그때 카르타고의 모든 민중들이 갑자기 부자도 가난한자도 없어질 만큼, 그렇게 오랜 세월동안 계급과 돈이 중시되었던 사회가 갑자기 함께 똘똘 뭉쳐 봉기하게 한 그 무엇이, 여성들이 자신의 머리카락까지 잘라가며 싸운 것이, 그저 이 수학적인 거리로서의 15km를 그 자체로 이해하지 못해서 였을까?

역사를 이해하는데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역사적인 상황 인식에 대한 '이해'는 찾아볼 수 없다.

또한 로마의 인질조항에 대해서는 요즈음의 '풀브라이트 장학생' 정도였다고 몇번이나 쓰고 있다. 대체 이 풀브라이트 장학생이라는 제도를 여기에 비교나 가능한 것인가.(이 풀브라이트 장학생에 대해 좀 더 알아봐야 될 지경이다.)

무엇보다도 로마 연방 통치 방식에 대해서는 자유와 독립을 주고 로마는 보호해 주고 '사회간접자본'의 혜택을 줌으로써 더 윤택한 삶을 제공한다라고 적고 있다. 이거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다. 그렇지 않은가? 일본이 우리나라에 전략상 세웠던 철도와 도로에 대해서 늘어 놓았던 소리랑 일치한다.

더 말하자면 끝도 없지만, 나나미의 이러한 자기 식의 해석은 앞에서 말한 역사를 '서술'한다는 취지에서 어긋나므로 그녀도 그런 것을 인식했는지 책 뒷쪽의 참고문헌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적고 있다.

(중략) 역사 서술이라는 작업은 사료를 모아서 정리한 다음, 뜻이 잘 통하는 문장으로 서술하지 않으면 독자가 이해할 수 없는 번거로운 작업이다. 비웃음을 살 게 뻔한 일에 그런 노력을 기울일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라틴어에는 "말은 날아가지만 글은 남는다"는 격언이 있다. 게다가 글을 쓰는 작업은 무척 어렵다. 역사가 살루스티우스도 "글을 쓰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누가 이런 고생까지 해가면서 일부러 왜곡된 역사를 쓰겠는가.(중략)

왜 굳이 이런 말을 넣었는지 모를 일이다. 나나미의 자기모순은 역사를 서술한다던 당초의 자신의 목적에서 벗어나서 그 누구보다도 더 주관적이며 제국주의를 미화하는 글이 되어 버렸다는 점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것이 너무나 아름답게 치장되어 있어서 마치 잘 그린 아름다운 모화를 보는 기분이 들 지경이다..

덧붙이는 글 | 로마인이야기 글짓기 대회 응모글입니다


#로마인이야기#시오노 나나미#제국주의#한니발#카르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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