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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보복폭행' 사건 조사를 받고 있는 가운데, 밤 10시 40분경 폭행을 당한 북창동 S클럽 종업원들이 조사실로 들어가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기사 대체: 30일 새벽 5시 37분]

29일 집단 폭행과 납치 감금혐의를 받고도 경찰 소환에 불응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결국 자진 출석해 경찰 조사를 받았다. 28일 오전 11시와 오후 4시 두 차례나 출석을 통보하고 '체포영장 발부'를 검토한 경찰의 초강수에 버틸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경찰은 지난 24일 언론 보도 이후 김 회장 부자에 대한 수사에 가속도를 붙여왔다. 하지만 경찰 수뇌부가 첩보보고 단계에서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은 완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납치 감금 범죄 첩보보고, 지휘부가 무시?

▲ 서울 남대문경찰서가 28일 공개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보복폭행관련 A4 한쪽 짜리 범죄첩보보고서.
ⓒ 오마이뉴스 권우성
의혹의 단초를 제공하는 근거는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가 작성한 최초 첩보보고서다. 이 보고서에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이름과 피해자인 북창동 S클럽 조아무개(44) 사장이 구체적으로 적시되고 있다. 남대문경찰서는 이 첩보보고서를 지난 28일 언론에 공개했다.

첩보보고서는 '대상자인적사항'으로 "(주)한화그룹 회장 김승연(남, 55세) 등 32명(경호원 6명, 폭력배 25명)"이라고 쓰고있다.

또 '첩보내용'에는 "김승연은 조OO 등이 자신의 둘째 아들과 싸움을 하였다는 이유로 2007. 3. 8. 20:30분경 강남구 청담동 소재 OO가라오케 술집에서 피해자 4명을 자신의 경호원, 폭력배 등에게 시켜 강제로 차에 태워 서초구 소재 청계산 주변 불상의 창고로 납치한 후 약 20분간 감금하고"라는 구체적 범죄사실이 담겼다. "집단폭행하여 얼굴 안면부 등에 치료일수 미상의 상해를 가하고"라는 사실도 나와있다.

지난 3월 26일 작성된 이 첩보보고서의 제목은 '폭력행위 등(납치·감금·폭행)사건관련첩보'다.

제목에서 나타나듯 이 첩보보고서는 재벌 회장이 경호원과 폭력배 수십명을 동원해 피해자들을 납치 감금한 뒤 폭행했다는 중대한 범죄사실을 담고 있다.

하지만 웬일인지 이 첩보보고는 소홀히 다뤄졌다. 이 첩보보고서는 작성 2일 후인 3월 28일 관할서인 남대문경찰서로 이첩됐고, 4월 24일 보도되기 전까지 한 달 가까이 내사만 진행됐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관할서로 이첩해버린 이유에 대해 "사안이 중대하지 않은 것으로 봤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정보를 다루는 일선 경찰관들은 단순한 폭력행위는 첩보보고조차 하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정보 계통의 한 경찰관은 "수없이 많은 사건들을 어떻게 윗선에 다 보고하느냐"며 "단순한 폭력행위는 아예 보고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일선 경찰이 '중대 사안'으로 첩보보고한 내용을 지휘부가 무시한 셈이다.

전직 경찰청장도 알고 있던 사실, 현직 수뇌부 몰랐나

▲ 29일 11시 10분경 장희곤 남대문경찰서장이 김 회장이 혐의를 전면부인하고 있다는 내용의 조사상황을 브리핑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지휘부가 단순히 '무시'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첩보를 '묵살'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택순 경찰청장과 홍영기 서울청장은 모두 이번 사건을 4월 24일 언론 보도 뒤에야 알게 됐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재벌그룹 회장의 납치 감금·폭행 등 중요한 첩보를 접하고 한달 이상 내사하면서도 지휘부가 알지 못했다는 것은 선뜻 이해하기 힘들다.

더구나 최기문 전 경찰청장은 사건 발생 나흘 뒤인 3월 12일께 장희곤 남대문서장에게 수사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직접 전화한 사실도 드러났다. 전직 경찰청장도 알고 있는 사건을 현직 경찰청장과 서울청장이 몰랐다는 얘기다.

따라서 경찰 수뇌부가 진짜로 이번 사건을 몰랐다면 정보보고와 지휘계통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비판도 면키 어렵다.

하지만 홍영기 서울청장이 지난달 27일 이 사건을 알고 있었다는 내부 증언도 나왔다. 한기민 서울경찰청 형사과장은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지난달 26일 첩보를 입수해 다음날 남대문서에 내려보내면서 서울경찰청장에게도 구두로 보고했다"며 "한화그룹 회장이 룸살롱에서 싸웠다는 등 사건의 대략적인 내용을 보고했다"고 말했다.

<한겨레> 보도가 사실이라면 최소한 홍영기 서울경찰청장은 첩보보고 초기부터 사건을 알고 있었던 셈이다. 경찰 수뇌부의 '은폐' 의혹이 더 커지는 대목이다.

김 회장 차남의 출국을 경찰이 사전에 알았는지도 논란거리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28일 "지난 26일 경호실 관계자들이 경찰 조사에서 차남의 출국 사실을 알렸는데도 경찰이 몰랐다고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한화그룹이 25일 차남 출국 사실을 알리지 않아 몰랐다"며 "출국 기록도 하루 늦게 올라와 확인이 안 됐다"고 해명했다.

한편, 이택순 경찰청장은 29일 미국 출장에서 돌아온 직후 기자간담회를 열어 "사회지도층 인사가 문제해결을 공권력에 의한 합당한 방법이 아닌 사적으로 한 것은 법치주의에 맞지 않는다"며 "이번 수사가 가이드라인이 되도록 엄정히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이 청장은 늑장수사 및 외압의혹에 대해서도 "수사 종결 즉시 엄정히 처리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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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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