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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일 오후 서울중앙지검 조사부 수사관들이 정치권 금품 로비 의혹 등과 관련, 서울 동부이촌동 대한의사협회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뒤 차로 짐을 옮기고 있다.
ⓒ 연합뉴스

"의사회원들 간 이전투구를 무마해 보고자 하는 취지로 했던 경솔한 언행으로 인해…."

정ㆍ관계 금품로비 의혹을 받고 있는 장동익 대한의사협회장이 25일 오후 또 다시 내놓은 대국민 사과문의 한 대목이다. 지난 23일 KBS '녹취록' 보도 이후 파문이 확산되면서 나온 장 회장의 공개 사과는 이틀 사이 벌써 세 차례. 모두 "사실과 달리 과장 표현됐다"는 해명을 담고 있다.

장 회장의 사과에서 발견되는 또 하나의 공통점은 녹취록 공개 '음모론'이다. 지난달 31일 비공개로 진행된 회의장에서 한 발언이 새 나온 것은 자신을 몰아내기 위한 반대파의 계략이라는 얘기다.

장 회장의 예언 "의료계를 다 죽이는 자살테러 될 것"

장 회장은 24일 금품로비 파문이 커지자 "나를 흔드는 세력들이 갖은 모략을 다 한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사퇴를 처음 선언한 뒤 가진 인터뷰에서는 "(녹취록 공개는) 회장인 나를 죽이면서 의료계를 다 죽이는 자살테러"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실제 장 회장은 지난해 5월 1일 취임 이후 1년 동안 끊임없는 내부의 도전을 받아왔다. 소아과를 소아청소년과로 개명하는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는다는 불만부터 시작해 전공의협의회장 선거에 노골적으로 개입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같은 해 9월에는 협회비와 사업추진비 3억7000여만원을 횡령한 혐의로 임동건 전 대한의협 이사 외 5명으로부터 고발당했다. 한 달 뒤인 10월 대한의협 임시 대의원대회에서는 장 회장에 대한 탄핵안까지 발의 됐다. 탄핵안은 정족수 미달로 통과되지 못했지만 장 회장의 지도력에 큰 타격을 입혔다.

협회비 횡령 등 혐의에 대해서는 지난해 12월 서울중앙지검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고발자들이 서울고검에 항고하면서 재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장 회장이 '음모론'을 주장하는 이유는 이런 배경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그는 또 반대파의 득세로 분열된 의료계를 봉합하기 위해 금품로비를 하고 있다는 선의의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장 회장은 25일 사과문에서 "녹취록 내용은 의료계 내부에 있어왔던 고질적인 분열과 갈등을 봉합코자 한 것"이라며 "사실과 다르게 과장하고 부풀려 표현돼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게 됐다"고 말했다.

정계 '특검'-검찰 '압수수색'... 의료계 심각한 타격

하지만 의사회 내부의 '이전투구'와 '봉합용 거짓말'이 가져온 대가는 무척 컸다. 당장 정·관계의 비난이 쏟아지는 중이다. 정세균 열린우리당 의장은 "필요하다면 특검이라도 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고 있다.

사정기관도 대한의협 심장부를 향해 칼을 겨눴다. 서울중앙지검 조사부(부장 김대호)는 이날 서울 용산구 이촌동 대한의협회관 등 5곳을 전격 압수수색 했다. 오전 11시50분부터 2시간 동안 압수수색을 통해 검찰은 박스 10개 분량의 자료와 컴퓨터 하드디스크 등을 확보했다.

서울중앙지검 박철준 1차장 검사는 압수수색 배경에 대해 "작년 9월 장 회장의 횡령 혐의 고발이 접수돼 무혐의 처리했지만 용처 수사가 미진하다는 판단에 따라 서울고검이 올해 2월 수사 재기 명령을 내렸다"며 "서울중앙지검 조사부에 재배당돼 지금까지 관련 조사를 진행 중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그런 와중에 장 회장의 녹취록 보도가 있었고 용처 등을 신속히 확인하기 위해 급히 압수수색에 나섰다"고 덧붙였다.

검찰은 또 대한의사협회 핵심관련자들을 출국금지했고 조만간 소환해 조사할 계획이다. 검찰이 수사에 돌입함에 따라 장 회장의 금품로비가 실제 있었는지, 선의의 거짓말인지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대한의사협회는 벌써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었다. 국민적 비난과 함께 정·관계의 싸늘한 응대도 감당해야 하게 됐다. 일부에서는 의료계의 숙원이었던 '의료법 재개정'마저 물 건너갔다는 한숨도 나온다. 녹취록 공개가 "의료계를 다 죽이는 자살테러"가 될 것이라던 장 회장의 예언이 정확히 맞아 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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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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