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유는 결코 쉽게 피지 않았다

[사진]산수유가 정월 한파를 이겨내고 꽃을 피웠습니다

07.03.23 08:34l최종 업데이트 07.03.24 09:17l

이철원(prm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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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비인 듯 이슬인 듯 내린 가랑비에 산수유 꽃잎이 벌써 벌어지고 있다.

겨우내 묵은 사연은 아직 봄볕에 그대로인데 산수유 꽃은 살며시 봄기운만 뿌려놓고 사라지려 하나보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 처음으로 산수유 꽃망울을 본 것은 정월대보름날이었다. 수원에서 음력 정월에 산수유가 피어나기는 드문 일이다.

▲ 3월이 왔노라고 꽃망울을 내밀던 산수유가 갑자기 몰아닥친 정월 찬바람에 떨고 있다

▲ 눈보라 속의 산수유.

▲ 눈이 그치자 산수유꽃이 팝콘처럼 햇살 속에 튀어난다.

▲ 오후 햇살에 잠시 녹던 꽃물이 꽃과 함께 얼어 고드름이 되었다.

봄은 저렇게 고비를 넘기며 오는 모양이다. 설레는 봄날, 더욱 소중하게 맞이하라고….

▲ 가을과 봄의 공존? 서둘러 피려는 꽃과 함께 열매가 아직 그대로 이다.

잎보다 꽃이 먼저 피는 산수유는 그 꽃이 피기 전에 열매가 땅으로 떨어져 내린다. 꽃이 아무리 잎을 만나고 싶어도, 열매가 아무리 꽃을 그리워하여도 결국은 서로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 불합리한 공존은 잠시 뿐….

▲ 봄, 여름, 가을, 겨울

오래된 아파트는 사계절 모두 자연과 함께 한다. 이 아파트가 요즘 재건축후보지에 올랐다며 부녀회를 들썩인다. 하지만 나는 봄꽃과 무성한 나무들과 풍성한 낙엽의 오래된 혜택이 더 좋다.

▲ 아파트에 요일장이 섰다. 노오란 산수유가 사람들을 제법 불러낼만도 하지만 장터는 철시를 앞둔 겨울 풍경만 같다.

대형마트는 한겨울에도 봄기운이지만 서민들의 장터는 여전히 추운 겨울이다. 봄! 햇볕 아래서는 뼈가 녹을 듯이 따뜻하지만 응달에서는 겨울옷이 무색할 정도로 싸늘하다. 꽃을 즐길 수 있는 사람에게는 봄이지만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추운 겨울일 뿐이다.

춘래불사춘(春來不似春 봄이 왔건만 봄 같지 않다)

갈수록 삶의 터전이 좁아지는 서민들에게도 봄은 왔으되 봄이 아니다. 부자와 빈자는 꽃과 열매처럼 공존할 수 없는 것일까? 자연의 법칙 아래 계절이 공존할 수 없는 것이야 당연한 이치라 하겠지만, 같은 땅 위에서 같은 계절 속에서 함께 숨쉬는 사람들도 같은 햇살을 누리는 편차가 갈수록 심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