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조산 후 조리가 남아 있어 에미가 아직 병원에 있던 저번 토요일이다(필자의 기사 '평원이가 동생을 보내던 날 밤' 참조). 아침도 먹기 전에 애비가 평원이를 데려다 놓고 하루 봐주십사 했다. 에미가 입원하면서 평원이는 어린이 집에도 가지 못했었다. 오후 5시에 끝나는 어린이 집 하교가 애비의 퇴근과 맞지 않아 데리러 다닐 수 없어서였다.

에미의 입원 이후로 평원이는 요즘 활기가 식었고 짜증이 늘었으며 배타적이고 공격적인 모습을 보인다. 저만 대하면 끔뻑 죽는 시늉이라도 하는 할미의 무엇이 만만한지 툭 하면 '할머니 싫어, 할머니 땜에 나 삐쳤어' 같은 소리를 잘한다.

재롱둥이 녀석만 나타나면 집안에 웃음꽃이 피던 게 먼 옛날 같기만 하다. 녀석의 동생이 잘못된 후로 나타난 현상이다. 또 제 에미나 애비, 할미 할애비까지도 시무룩해진 집안 분위기가 저에게도 늘어붙 게 된 원인이지 싶다.

이 날도 할멈은 가게에 나갔으니 평원이를 보는 일은 내 차지였다. 늘상 하던대로 아침 먹이고 응가 시키고 나니 하릴없이 내 일만 바빠졌다. 몇 개 안 되지만 난에 물 주어야 하고 빨랫거리 내다 놓아야 하고, 할멈이 바빠서 못하는 이것저것 잡다한 집안 일을 실업자 할아범이 처리해야 했다. 나는 앞뒤 베란다로 이 방 저 방으로, 화장실로 왔다갔다 하면서 평원이가 좀 뛰어놀겠거니 했었다.

내가 움직이면서 문득문득 평원이를 보았으나 녀석은 소파에 엇비슷하게 누워 아무말도 없이 장난감 자동차만 갖고 놀았다. 사실은 갖고 논다기 보다는 무슨 생각엔가 골몰해 있어 보였다. 답답하고 걱정스러웠다. 녀석이 할애비한테 오면 이 할애비는 어린이 육아전문가는 아니더라도 나름대로 건강하고 씩씩한 기틀을 심어주려고 밭은 머리를 짜내며 하루를 보내는 것이다.

이제 갓 세 살이 지난 아이에게 철학이나 예술, 사회과학 및 인문과학을 강의할 수도 없는 일이다. 물론 그럴만한 능력도 지식도 없는 할애비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또 해야 할 일은 그저 때 되면 밥 먹이고 배변(配便) 시키고 잠 재우고, 뛰어놀게 하는 것 등이다. 그러다가 행운이 오면 녀석으로부터 '할아버지 사랑해요' 소리를 들을 수 있으면 녀석을 성공적으로 하루 봐준 것이 된다(필자의 기사 '나는 지난 토요일에 평원이랑 놀았다' 참조).

내가 집안 일를 다 마치고 소파에 있는 녀석에게 다가갈 때까지도 평원이는 여전히 엇비슷한 자세로 한쪽 팔을 베고 그 놈의 장난감 자동자를 턱 밑에 고이고 생각에만 골몰(?) 하고 있었다. 그와같은 자세가 결코 혈류 순환에 좋을 리 없다. '얘야, 좀 뛰어 놀거라' 하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래봤자 당시로선 녀석의 울음보만 건드릴 게 뻔했다.

이때, 얼핏 생각난 것이 데리고 나가는 것이었다. 지난 가을에도 그랬고, 여름에도 그랬었다. 지금은 겨울이라 하지만 이번 겨울은 뭐 40년 만에 가장 따뜻한 겨울이라 했던가, 더구나 입춘도 지났다. 하여튼 밖의 햇살도 제법 환하다. 따뜻한 기운이 안에까지 밀려들어오는 듯한 날씨였다.

"평원아, 우리 차 타고 수통골이나 동학사로 바람 쏘이러 가면 어떨까?"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그런데,

"네, 좋아요 할아버지!"

녀석은 내가 놀랄 정도의 빠른 몸놀림으로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목소리 또한 전처럼 씩씩했다. 바람 쐬러 가자는 말을 기다리고 있었을 리는 없을 것이다. 아 진작에 그 스케쥴을 세워놓고 있었더라면 잠시나마 답답함에 시달리지 않았을 것을.

평원이는 저 스스로 제 옷가방 위에 있던 바지와 방한복을 들고 뛰어와 내 무릎 위에 던져놓고 다시 뛰었다. 모자와 장갑도 챙겼다. 양말도 가져왔다. 그리고 자발적으로 말도 걸어왔다.

"할아버지 수통골에 가면 막 뛰어가도 되지요. 그쵸오?"

지난 가을에 수통골에 갔을 때 뛰던 모습이 기억됐던 모양이다. 오늘은 수통골을 지난 가을처럼 '쉰통골'이라 하지도 않았다. 아이가 언어 발달 능력으로나 추억하는 것으로나 가을보다 성장하고 있음을 현저히 느끼게 하는 대목이었다.

평원이를 조수석에 태우고 벨트를 매준 다음, 출발했다. 그런데 평원이에게 말해준 것처럼 수통골을 가기엔 5킬로미터 정도로 도심과 너무 가깝고 봄바람을 맛보여 주기엔 그 계곡이 좀 옹색하단 느낌이 들었다.

"평원아, 우리 동학사로 해서 저어쪽 신도안으로 한바퀴 돌아서 올까?"

평원이가 동학사는 더러 안개너머 지푸라기 존재처럼 들어본 적이 있을지 몰라도 그보다 멀리 있는 신도안까지는 들어보지 못했을 것이란 생각을 하며 그렇게 말했다.

"네…."

현충원을 지나 갑동 언덕에서 우회전하여 새로 난 계룡산 관통도로로 접어들었다. 이 길은 자연환경 파괴라 하여 시민단체 등에서 오랫동안 개설을 강력 반대해온 곳이다. 두 곳의 터널이 잇대어 있는데 하나는 300m 정도로 짧고 다른 하나는 3km를 훨씬 넘어 4km에 육박하도록 길다.

이 길이 뚫리기 전에는 신도안을 가려면 박정자 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동학사 입구까지 들어가 다시 좌측길을 따라 고개를 넘어가야 했다. 가끔 드라이브 삼아 그 길은 다녀봤었다. 최근 이 길이 뚫리고는 공주 동학사 쪽 길로 내려서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내가 환경단체와 함께 이 도로 개설 반대를 위해 동참할 기회는 없었지만 산이고 강이고 이렇게 뚫고 막고 하다가는 장차 어디가 산이고 강인지 구분이 안 되는 국토가 될 게 뻔히 보이는 듯했다. 어디서나 까치발만 떼고 보면 사방이 길이고 터널이며 인공 구조물이다. 머지않아 자연 생명들의 터전은 완전히 사라지고 결국 인간 자신이 설 곳도 없어질 것이라는 게 영상처럼 회오리쳐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 이 길을 매우 편리하게 달리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의 모순인가? 터널을 벗어나서 평원이를 다시 살폈다. 겨울이라 할 수 없을 정도의 따가운 햇살이 차창으로 밀고 들어와 평원이의 이마에 땀이 배이게 한다. 녀석의 젖은 머리칼이 두 눈을 덮으려 한다.

언제 깎았는지 모르게 머리가 자라있었다. 모자를 벗기고 이마 한 쪽으로 젖은 머리를 젖혀주었다. 그래도 마땅치 않았다. 요즘 집안이 어수선하다 보니 제 에미 애비도 미쳐 깎아주지 못했던 것이다.

"평원이 미장원에 가서 머리 깎을까?"

들은 바에 의하면 녀석 머리 한 번 깎으려면 미장원이 난리가 나야 한다고 했다. 가위만 들면 자지러지게 울고 몸부림을 쳐서 어르고 달래고, 그러다 안 되면 궁둥이라도 한 대 때리고 모든 방법을 다 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녀석한테 갑자기 머리를 깎자고 한 것이다. 평원이는 대번에 고개를 흔들었다.

"으응으, 싫어요."
"싫어?"

역시 싫단다. 나이 먹어가며 기억력이나 순발력이 크게 둔화된 내가 어디서 그런 순발력을 뽑아왔는지 모른다.

"평원이 머리 깎으면 반지 사주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나는 녀석의 표정을 이윽히 쏘아보았다. 왜 반지를 사주겠다고 했을까. 이 아이의 세 돌 되는 날에 할멈이 한 돈 짜리 금반지를 하나 사서 주었었다. 그 날 할애비 집에 와 세돌 상 아침 미역국을 먹었었다.

지난 해 두 돌 때에도 생일 선물 하나 못 해주었다면서 할멈이 아쉬워하다가 마음 먹고 사준 것인데 평원이는 종일 그 반지만 갖고 놀았던 것이다. 하여튼 그 날 그 반지 봉투가 다 망가져버리고 말았었다. 가방에 넣었다 뺐다, 주머니에 넣었다 뺐다, 소파 밑으로 굴렸다 꺼냈다 하고 놀았던 것이다.

그런데 할애비의 그 자랑스러운 순발력은 이 심지 깊은(?) 손자에겐 얕은 술수로만 이해되었을까. 내 꾀임(?)에 빤히 할애비를 바라보던 평원이는 별 표정 변화가 없었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내 말 잘 들으면 내가 권총 사주우지…."

순간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그 뿐 아니었다.

"할아버지가 내 말 잘 들으면 내가 파워렌져 만들어주우지…."

망치로 한 대 크게 얻어맞은 듯 내 머리가 띠잉 울려왔다. 내 상식으로 이건 만 세 살이 막 지난 어린아이가 하는 말이 아니었다. 차는 신도안에 가까워 왔다. 신도안은 옛부터 샤머니즘의 본 고장으로 알려져왔다. 몇 천 가지일지도 모르는 온갖 토속종교들이 다 모여있었다.

장차 '정도령'이 나라를 지배한다는 정감록의 이야기도 이곳이 발원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계룡산으로 오묵하게 둘러쌓여 저으기 한 나라의 도읍이 될 만하다는 분지로 된 땅이다. 지금은 개발되어 국군도시로 되어 있다. 지난 날의 토속종교들은 인근 도시로, 산으로 흘어져 거의 사라지고 드물다.

나는 남아있는 어떤 종교의 마술에 걸린 듯 황당했다. 평원이의 할애비에 대한 반격은 어떤 상상에서 나왔건 닳고 닳은 어른 세계의 어느 영악스런 언어였다. 어린이 심리학을 공부한 적도 없어서 이런 때의 평원이 상태를 어찌 정의해야 하는지도 알 수 없다.

기실 내가 신도안에 간 까닭은 별 게 아니었다. 집안에서 기활없이 뒹구는 평원이를 그냥 두고 보기가 딱하여 드라이브하자는 것이 아니었던가. 신도안과 인근 엄사(계룡시) 시가지는 내가 사는 대전 시내보다는 한적하고 공기가 맑아 슬슬 거닐며 햇빛과 좌우 경관을 보이고 싶었다. 그렇게 나름대로 머리 식히기에 알맞은 곳이라 여겨왔기 때문이다.

엄사에서 제법 시가지라 부를 수 있는 거리 양쪽 상가에 '까꼬보꼬', '헤어타운' 등으로 이름 붙여진 미용실이 몇 군데 눈에 띄었지만 머리 깎자는 말은 더 이상 하지 못했다. 이럭저럭 한바퀴 돈 후, 아이를 다시 차에 태우고 2km도 제대로 안 될 거리에 있는 군인 아파트 촌의 신도안으로 들어갔다. 좌우 상가에 키위 사과 귤, 딸기 등의 과일이 수북히 쌓여 있다. 평원이는 어느 것에도 관심이 없는 듯 무엇을 사달라는 말이 없다.

입슬은 말라서 딱지가 앉았는데도 먹거리를 찾지 않는다. 준비해 간 우유를 주랴? 사과를 사주랴? 해도 고개를 흔든다. 무슨 생각에 잠긴 건지 이즈막에 계속되는 집안의 분위기에 아직도 침잠돼 있어서인지 다시 답답해왔다. 아이를 차에 태우고 출발하려 하는데 평원이가 무거운(?) 입을 열었다.

"할아버지!"
"왜…?"
"저 머리 깎으면 반지 사주실 거죠?"

여태 그걸 고민하고 있었던가? 어느 땐 반말, 어느 땐 깎듯한 존댓말을 쓰는데 지금은 마치 예의 바른 성인이 하듯이 최대의 경어를 쓰고 있는 것이다. 제 머리를 깎음으로써 저 자신의 산뜻한 기분을 향유하자는데 목적이 있다기 보다는 무언가 할애비를 위해 '한 껀' 해드려야만이 할아버지가 기뻐할 것이라는 속셈이 이 아이의 머리속에 잠재해 있었던 것 같다.

세 살 어린아이도 60대 어른과 대등한 사고 깊이를 형성하고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다만 경험이 부족할 뿐이다. 평원이를 데리고 앞에 보이는 미용실로 들어갔다. 두 사람의 아줌마 미용사는 반갑게 우리를 맞이했다.

"누구 할아버지신가, 애기가 깎으실 건가?"

상큼하게 웃던 젊은 아줌마는 대상자가 '애기'임을 알고는 의자 위에 어린이용 받침대를 얹고 평원이를 앉혔다. 그리고는 약간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별 일 없을 지 모르겠네에?"

슬쩍 내 눈치도 살폈다. 별 일이 있을지 없을지는 사실 나도 의문이었다. 당장은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지만 막상 가위가 머리 위에서 딸깍딸깍 춤을 추게 될 때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 저으기 불안하기도 했다. 그 애 뒤에서 대형 거울을 통해 나는 조심스럽게 평원이와 눈을 마주 보았다. 평원이는 앞치기 천을 목에 두른 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아줌마의 가위질을 받아들이고 있다.

"으음, 착하고 점잖네에…."

미용사는 의외로 일이 쉽게 풀리는데 안도하면서도 또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만일의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다. 평원이는 끝까지 그렇게 앉아서 머리를 깎았고 뒤이어 세면대로 옮겨서도 몸을 뒤로 젖혀 점잖게, 어른처럼 머리를 다 감고 일어섰다. 이건 기적이다. '아싸!' 나는 마음 속으로 즈이 에미애비가 못한 일을 성취시킨 일에 대하여 큰 포만감으로 우쭐해했다.

그리고 '안녕히 계세요'라는 인삿말까지 미용사들에게 던지고 나오는 평원이를 안으며 이 아이가 이렇게 성장하는구나 하고 마음 뿌듯했다. 하지만 인간은 손괴되는 자연을 연료로 삼아 성장해야 하는 아픔도 있다. 평원이도 자기 성장과정에서 빚어질 이와같은 아픔 앞에서 어느만큼 적응하고 극복하며 현실을 헤쳐나갈지 궁금하고 걱정도 된다.

나는 물론 가까운 문방구에 들러 500원에 네 개 들어있는 반지함을 사서 약속대로 손에 쥐어주었다(참고로 이 반지는 저녁에 할멈에 의해 퇴출되었다. 예리한 침 같은 것이 액세서리로 달려있어 살에 닿으면 상처를 입는다고 할멈이 몰래 감추었다. 아니 즈이 애비가 밤에 데리러 와서 감춘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적절한 사진을 넣지 못해 아쉽고 독자들에게 송구한 마음입니다. 아직 그만한 기구나 기술을 갖지 못한 점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