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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인 강영숙 장편소설 <리나>를 주제로 열린 독자와 작가의 만남의 시간에 특별히 눈길을 끈 두 사람의 참석자가 있었다.

탈북 청소년 대안학교인 셋넷학교 대표교사 박상영씨와 그 학교에서 중국어 자원 봉사를 하고 있는 최금희라는 탈북 여학생이었다.

박상영씨는 셋넷학교 교장이며, 최금희씨는 검정고시를 거쳐 남동생과 나란히 한국외국어대에 합격했다(중국어과 재학 중). 최씨는 현재 자신의 전공을 활용해 셋넷학교에서 중국어를 가르치고 있을 뿐 아니라 매달 1만원씩 후원하는 회원으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또한 자신의 경험을 올해 책으로 출판할 계획이다.

▲ 탈북 여학생 최금희
ⓒ 이명옥
최씨는 처음에 박씨가 찾아와서 이런저런 계획이 있으니 같이 활동해 보지 않겠느냐고 했을 때 솔직히 별로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런데 구체적인 계획이 나오고 주변에서 하나둘씩 참가해 자신도 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다고 한다. 최씨는 지금은 함께 활동하게 된 것을 매우 감사하게 생각한다며 자신이 축복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최씨는 북한에서는 다들 선생님의 그림자도 밟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고 자신도 마찬가지였는데 셋넷학교에서는 선생님들이 학생들과 함께 레슬링도 하고 서로 장난도 치는 등 도무지 선생님과 학생의 경계가 없어 보여 “무슨 선생님이 저래”하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게 몸으로 부딪치는 활동을 통해서 “아, 한국 사람도 우리랑 똑같구나” 하고 느끼면서 오히려 마음을 쉽게 열게 되고 이질감이나 어색함이 줄어들었다고 고백했다.

ⓒ 이명옥
최씨는 <리나>의 소설 속 주인공처럼 중국을 통해서 국경을 넘어가 북에 남은 가족을 만나고 다시 오는 사람들이 실제로 있으며 비공식적인 경로로 가족이나 친척들과 전화 통화도 할 수 있다고 전했다. “거기가 정말 한국입네까” 하고 묻기도 하고 “네, 한국 맞습네다”라고 답하면 “돈 보내라요” 하는 경우도 있다고 최씨는 전했다. 이를 들은 사람들은 웃음보를 터트렸다.

박상영 대표교사는 최금희씨 남매가 문화적 사회적 이질감을 극복하고 이 사회에 잘 뿌리 내린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며 앞으로 더 많은 탈북 청소년들이 좋은 전형을 만들어 가야 한다고 말했다.

셋넷학교는 졸업생을 두 번 배출했으며 자원봉사를 하는 교사들과 회원들의 후원으로 학교를 꾸려가고 있다. 학과 공부보다는 상처를 치유하고 문화적 충돌을 극복해 이 땅에 건실하게 뿌리내릴 수 있는 자생력을 키우는 프로그램에 비중을 두어 운영한다고 한다.

박상영 대표교사는 탈북 청소년을 위한 대안 학교가 5개 정도 운영되고 있는데 탈북 청소년 중 겨우 10분의 1만 혜택을 받고 있는 실정이라고 전하며 탈북 청소년 모두 일상에 정착할 수 있도록 훈련받을 수 있는 기관이 필요하다고 역설하였다.

어린 아기들에게 음식과 의복만 필요한 게 아니다. 더 절실한 것은 관심과 사랑이 깃든 돌봄일 것이다. 박 교사의 말대로 6살과 5살의 유년기에, 혹은 한참 감수성이 예민한 10대에 뿌리 뽑혀 낯선 곳에 선 그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낯섦을 극복할 수 있도록 힘과 용기를 북돋워 주는 일일 것이다.

상처 치유와 정체성 회복 프로그램은 필수

ⓒ이명옥

박상영 대표교사에게서 셋넷학교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보았다.

- 셋넷학교를 소개해 달라.
"셋넷학교는 고향이 북한인 청소년들이 상처를 극복하고 새로운 세계에 잘 정착하도록 치유하고 학습하게 하며, 문화적 충돌을 줄여 나가기 위해 세운 대안 학교다."

- 학과 과정은 일반 학교의 과정과 다른가.
"그렇다. 우리 학교 교과는 크게 세 과정으로 되어 있다. 그 중 가장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것이 치유 과목들이다. 그들은 어린 나이에 고향을 떠나 다른 문화권에 접하면서 많은 상처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그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건강하게 정체성을 회복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치유 프로그램들을 실시하고 있다.

두 번째는 학습을 따라가기 위해 치러야 할 검정고시를 위한 학과 공부다. 영어, 수학 등 일반 교과목을 가르쳐 검정고시 준비를 돕고 있다. 마지막으로 사회통합 과목이 있다. 사회 과목을 통해 남한과 북조선을 객관적으로 비교하면서 그들 스스로 문화, 사회적 정체성을 찾아 가도록 유도하고 있다."

- 일차적인 목표는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일인가.
"그렇다. 내가 제일 자주 하는 말은 '성공하지 말고 행복한 사람으로 살자'다. 그들은 어린 나이에 고향이 아닌 곳으로 타의에 의해 쫓겨 오고 지난 삶 또한 어두웠지만 얼마든지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 사회에 적응하고 다른 진로를 찾은 학생들이 많이 있나.
"두 번 졸업생을 배출했는데 대부분 대학에 진학하고 있다. 북한에서 공부를 많이 못해서 공부에 대한 열망이 남다르다. 일찌감치 직업 전선에 뛰어든 친구들도 있지만 워낙 직업의 종류가 많아 정확하게 파악이 된 것은 아니다."

- 학생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그들이 살아온 곳에선 정해진 삶을 수동적으로 따라가는 것이 전부였다. 자본주의 사회는 스스로 삶의 양상을 선택해야 하는데 그 부분을 무척 힘들어한다. 그래서 겉보기 삶은 풍요로워졌지만 외롭다는 말을 많이 한다."

- 국가적인 관심과 지원 상태는 어떤가.
"보는 사람에 따라 견해가 다를 것이다. 국가는 정착금과 집을 지원해주었으니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집과 정착을 위한 몇 푼의 돈이 전부는 아니다. 실제로 자리를 잘 잡고 정착할 수 있도록 문화 환경을 이해하고 적응하는 데 필요한 훈련을 할 수 있는 기관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그래서 이탈 가족 중 일부 적응을 못하는 사람들이 매스컴의 주목을 받게 되고 여러 가지 확대된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 보완된 대안을 제시한다면.
"그것은 쉽지 않은 문제다. 나는 '여러분들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자신이다'라고 이야기한다. 자생력을 지닐 수 있도록 강해져야 하는데 일부는 스스로 강해지기 전에 자본주의에 맛을 들이면서 거지 근성을 보이거나 자기를 지켜낼 힘을 키우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 그들의 모습을 일반인들에게 잘 알리고 함께 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은 있는가.
"그들의 상처, 아픔 등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이미 세 작품 정도 만들어졌다. 그 작품을 지방에 가서 보여주고 함께 대화하는 시간을 마련했는데 반응이 아주 좋았다. 말로만 사랑한다고 하지 말고 만나서 교류하고 소통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스무 명은, 작다면 작은 인원일 것이다. 비록 작고 가난한 학교지만 작은 사례들을 충실하게 이루어 낼 수 있도록 공식적, 지속적으로 지원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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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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