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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엔 평원이랑 놀았다.

어제 저녁부터 '응가'를 못하고 가쁘다 싶은 숨을 몰아쉬기도 하고 진땀을 흘리는 건 감기 기운이 있기도 해서일 터. 하긴 아이에게 오래된 변비가 있는 것으로 여기고는 있다. 우리한테 올 적마다 보면 응가할 때 무척 고통스러워한다. 따라서 아이가 오면 나는 언제나 그 애의 응가 처리를 해주었느냐에 따라 그 날 하루 아이를 잘 보았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스스로 구분하기도 한다.

제 에미 애비가 도대체 무얼 어떻게 먹이기에 그런지 모르겠다고 하면 할멈은 "애 체질일 수도 있지요"하며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다. 체질이라니, 뭔가 섭생에 문제가 있는 거겠지. 그래도 일단은 내 판단이 잘못되었길 바라고 있다.

나와 아이에게 아침을 챙겨주고 할멈은 가게로 나갔다. 하지만 아이는 밥을 제대로 먹지 않았다. 그래도 식사 후, 30분쯤 지나서 어제 에미가 놓고 간 감기약을 먹였다. 아이는 코를 찌익 찍하며 힘알이 없이 거실 소파에 앉아 어린이 프로가 나오는 TV만 보고 있다.

매번 그런 것은 아니지만 격주 간격 토요일이면 내가 평원이를 맡아 보는 때가 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어린이집에 맡기고 토요일, 일요일이 돼서야 제 에미 애비를 비롯한 가족들의 사랑에 둘러싸이는 날이 되는 셈이다. 하지만 모든 토요일마다 제 에미랑 같이 지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격주 토요일마다 에미가 서울 강좌에 나가기 때문에 그 날엔 누군가에게 맡겨야 하는데 그것이 지정되어 있지 않아 아이의 정서에 관해서 늘 걱정하게 된다.

더러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사는 제 이모에게 맡기기도 하는 모양이지만 그 이모네도 우리 평원이만 볼 수 있는 시간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잖겠는가. 할애비인 나 마저도 별달리 엄청난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그 토요일에 집을 비울 일도 있으니 모든 식구들이 평원이를 볼 시간을 협의하여 맞추지 않으면 안된다. 며느리가 이번 강좌에 나가는 날이 그런 경우다.

어제 오후에 며느리가 왔었다. 금요일에 아이를 데리고 온 것은 이례적이다. 저녁에는 선생들 모임이 있고 애비도 사무실 일이 늦어질 것 같으니 평원이를 여기서 미리 재우고 내일도 좀 맡아달라는 것이었다. 대개 일요일 저녁이 돼서야 와서 함께 식사하며 손자를 안아보게 하였는데 내일은 서울엘 가야 하는 날인데다, 애비도 하필 내일에는 출장 사무가 바쁘다 하니 '아버님 특별한 일 없으시면 아이를 좀 봐주십'사 하고 10만원이 든 봉투와 함께 놓고 갔다. 물론 그러한 봉투는 한 달에 서너번 의례적으로 받고 있으니 별다른 의미가 있는 건 아니다.

나이 들어 가며 아침 토막잠이 필요한 나도 감기 든 평원이처럼 노곤하여 그 애 곁에 비집고 누웠다. 그러자 아이가 자석에 끌린 듯 내 곁에 피시시 눕는다. 몸이 무거운 중에도 안되겠다 싶어 아이를 안아다 안방 침대 위에 뉘였다. 아이는 바로 잠들었다. 이렇게 오전 11시부터 잠이 든 아이는 낮 1시가 넘어도 깨어나려 하지 않았다. 어린 아기들은 잠이 보약이라 하지만 감기 중에 낮잠을 너무 많이 자서 몸이 휘지지나 않을까 싶어 오후 1시 30분 정도에 깨워 일으켰다.

감기 약 덕분인지 아이는 열도 제법 내려앉고 눈알도 아까보다 초롱해져 있다. 점심 때도 되었고 잠에서 깨었으니 뭘 좀 먹일까 싶어 "평원이 뭐 먹을까?" 하니 아이는 고개를 젓는다. 복분자 우유를 주랴, 사과를 주랴 해도 다 싫단다. 녀석이 감기 약 때문에 아직도 머리가 몽롱해서 그러려니 생각하니 안쓰럽기도 하다.

아이가 요구르트를 좋아하여 할멈이 어제 늦게 사다 놓은 것을 하나 뚜껑 벗겨서 건네주니 그것만 마신다. 그러나 이렇게 맥없이 하루를 집안에서 보내는 것은 정서상으로나 건강상 좋을 리가 없다. 아이가 먹지 않으려해서인지 나 또한 입맛 당기는 게 없어 일단 점심을 미루기로 했다. "평원아, 우리 수통골 갈까?" 해보았다. 그러자 침잠해서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앉아 있던 아이의 눈에서 광채가 나며 발딱 일어선다.

수통골이란 그 애가 나한테 와서 노는 토요일이면 더러 함께 데리고 가던 곳이어서 아이도 '수통골'이란 단어를 귀로서는 알고 있었다. 조수석에 아이를 태우니 녀석이 신이 나서 제법 재잘거리기도 한다.
"이 차 할아버지 빠방이죠, 그쵸오? 울아빠 빠방은 더 크죠 그쵸오?"
"으음... 그렇고 말고"
"우리 지금 신통골에 가는 거죠, 그쵸오?"
"으음 그래, 수통골에 가는 거야, 수통골."
발음을 교정해주기 위해 '수통골'이라고 다시 한 번 강조했지만 아이는 "네 쉰통골 그쵸?" 했다. 나도 어쩔 수 없이 "음 수통골!" 하고 말아야 했다.

출발한 지 5~6분 후에, 117번 132번 등 여러 방향에서 들어오는 시내버스 종착점이기도 한 수통골 입구에 이르렀다. 한낮이라 그런지 이미 계곡 양편 도로에는 승용차들이 즐비하게 만석으로 주차되어 있었다. 계룡산 동학사의 앞산을 등 대고 있기도 한 도덕봉과 빈계산을 가르는 계곡물은 언제나 맑고 물소리는 청아했다.

더구나 단풍이 만개한 이 계절에는 더할 수 없는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계곡 뚝방길을 포장하지 않았던 2, 3년 전만 해도 관광객이나 등산객이 그리 많지 않아서 주차하기에 큰 불편함이 없었다. 근래에 들어 뚝방길을 정비하고, 계곡 양편으로 음식점들이 꽉 들어차며 도시와 접한 휴식처로 급속히 알려지면서 휴일이 되면 사람과 차량들로 북적댄다.

나는 입구 길가에다 간신히 주차하고 평원이를 안아 내렸다. 소파에만 앉아 있는 모습이 안쓰러워 이곳에 온 것인 만큼 되도록 많이 걷게 할 요량이었다. 버스 종점 쪽으로 난 다리를 건너 차도 옆으로 난 좁은 보도를 따라 올라가기 시작했다. 도덕봉 계곡 안쪽에서 바람이 휘익 불어올 때 아이에게 씌웠던 모자가 벗겨져 나갔다.
"음 모자가 날아갔네... 허허허."
녀석은 제법 너털스러운 웃음을 짓기도 하여 나로 하여금 더 큰 너털웃음을 토하게 하였다.

이제 한 달 남짓이면 만 세 살이 되는 아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기도 하지만 어느 때 보면 완전한 인격을 갖춘 인격체라는 걸 부정할 수 없게 한다.
"우리 사진 한방 찍을까?"
내가 핸드폰을 꺼내 평원이 앞에 들이대자, 아이는 벌써 두 손가락을 펼쳐 V자를 그려보였다. 그렇게 대여섯 컷을 찍으며 매점이 있는 주차장으로 올라갔다.

가는 도중 등산복 차림의 몇 무리가 앞을 막아서서 술 냄새와 담배 연기를 뿜어내어 아이의 얼굴을 돌려세우기도 하며 올라갔다. 길 아래 개울은 식당에서 배출한 것으로 보이는 시커멓게 오염된 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것을 내려다 보는 평원이의 흥얼거림까지는 가릴 수 없었다. '그래, 세상이 어떻게 오염돼 가고 있으며 그걸 어떻게 해소해야만 하는지에 대한 과제를 짊어지는 날이 너에게도 올 것으로 본다...!'

매점이 있는 주차장을 지나 국립공원 관리공단 사무실을 거쳐서 안쪽으로 들어갔다. 이곳은 차량 진입이 금지된, 자갈로 덮인 길이다. 발자욱을 뗄 적마다 바그닥바그닥 하는 소리가 난다. 많은 사람들의 왕래로 하여 그 소리는 마치 합주 타악기 소리와 닮았다는 느낌이기도 하다. 자갈밭에 이르자 평원이는 아스팔트 길보다 더 새로운 느낌이 왔던지 비틀비틀 마구 달리기 시작한다. 그러 다가 언뜻 멈추고는 "할아버지도 뛰어요" 한다.
"음 그래!"
나는 짐짓 못따라가는 척하며 그 애 뒤에 바짝 붙어서 뛰었다.

그러다가 얼핏, 평원이가 넘어졌다. 손바닥과 무릎이 아팠던지 얼굴이 일그러지려 한다. 나는 얼른 허허 껄껄 웃었다.
"할아버지도 넘어질 뻔했잖아, 허허허."
그러자 평원이의 얼굴이 대번에 밝아졌다.
"할아버지도 나처럼 넘어질 뻔 했잖아 허허허."
'뻔 했잖아' 라는 부분에 악센트를 주며 손을 털어 오히려 신이 나 했다. 그곳을 한바퀴 돌아 내려오는데 평원이가 보도 가의 가드 레일에 손을 대고 훑으며 걷는다.

우리가 거닌 시간은 한 40여분이 소요됐다. 이만하면 어린 평원이가 산책한 시간으로는 충분하지 않나 싶었다. 차 있는 데로 와서 차 안에 있던 페트병의 식수를 따서 평원이의 손을 씻겼다. 그런 다음 조수석에 앉히고 벨트를 매어 주니 제 할머니가 전날 볶아서 그릇에 담아 옆에 놓아두었던 호박씨와 해바라기씨를 맛있게 주워 먹는다. 지금쯤 시장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집에 와서 미역국을 데우고 동치미 국물과 함께 늦은 점심을 먹이니 아주 맛나게 먹는다. 식사 후에 내가 잠시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데 거실에서 "나 응가할래요" 하는 소리가 울려왔다. 얼른 뛰쳐나가서 할머니가 사다 놓은 플래스틱 응가통을 대주니 얼굴을 울그락불그락하며 애를 쓰다가 한참만에 고구마처럼 딱딱한 것을 한 덩이 쑥 빠뜨리고 일어선다. 그 힘든 작업 하나가 해결된 것이다.

"더 앉아있어봐" 했더니 녀석의 대답은 간단했다.
"다 눴어요"
알았다 그래, 워낙 탱글탱글하게 생겨먹은 변비 배설물이라 뒤처리를 할 것도 없었다. 아이를 안아보니 머리와 몸뚱이가 온통 마른 땀, 소금끼로 버석버석했다. 그래도 어제보단, 아침보단 아이가 숨도 고르고 코 막힘도 좋아져 있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평원이 목욕할까?" 하니 고개를 저으면서도 전에처럼 저 쪽으로 달아나진 않는다. 번쩍 들어안고 욕실로 들어가 옷을 벗기고 무릎에 뉘어안아 머리에 물을 뿜으니 숨쉬기가 거북해서인지 낑낑거린다. 머릴 감기고 일으켜 세워 몸에다 물을 뿌리자 가슴이 개운해졌던지 내게다 물을 뿌리기까지 하며 노래를 한다. 제 어미와 어린이집 등에서 익힌 것일 게다.

"뜸북 뜸북새 노온에서 울고, 버꾹뻐꾹 뻐어꾹새......"
나도 따라 같이 흥얼거리는데 녀석은 내 목을 끌어안으며 느닷없이 "할아버지 사랑해요!" 한다. 나는 어른스럽지 못하게 괜히 가슴이 멍훌해져서 아무 말도 못하다가 "음 할아버지도 평원이 많이 사랑해..." 했다. 아이는 제 가슴에 닿는 것들을 다 안다. 누가 저를 사랑하는지에 대해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이다.

할아버지한테 오는 날엔 제 에미 애비를 잘 찾지도 않는다. 하루를 잘 적응하고 놀다가 가야 한다는 걸 나름대로 터득하고 있는 것일까? 목욕을 다 하고 나니 갑자기 "할머니한테 전화할까요?" 하는 것이었다. 할머니까지 배려하다니. 이렇게 가끔씩, 아니 자주 사람을 녹이게 하는 언행이 있어 내가 귀찮아하지 않고 그 애와 함께 하는지도 모른다.

"음 그래? 그럼 할머니한테 전화해봐" 하고는 전화번호를 눌러주고 수화기를 들려주었다. 가끔 이렇게 했기 때문이다. 할머니 목소리가 나자, "할머니 보고 싶어요" 한다. 제 할미가 이 말을 들었으니 간이 녹아내릴 정도였을 것이다. 가까운 가게에 있던 애 할머니는 10분도 안 돼서 달려왔다. 그리고는 서로 얼싸안고 부비고 빨고 하며 사랑을 나누었다. 감기도 얼추 나은 모양이라고 할멈이 말했다.

나는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고, 애 할머니는 복분자 우유를 만들어서 애한테 한 컵 들려주고는 다시 가게로 나갔다. 이런 와중에 평원이는 또 다른 프로젝트(?)를 머리속에서 굴리고 있었던 것일까.

"할아버지 이층 갈까요?"
이층이라야 천장 높이가 안과 갓이 달라 어른은 대부분이 머리가 닿아서 불편한 곳이다. 하지만 평원이로서는 아래층 전체 버렁과 같은 넓은 공간이 좋아던 것이다. 그곳 삼분의 일 정도는 칸을 막아 뒤쪽엔 잡동사니 세간들이 쌓여 있고, 삼분의 이 이쪽에는 책장으로 채워져 있는 곳이다.

한 쪽에 낡은 침대를 두어 내가 가끔씩 그곳에 올라가 책을 읽다가 눕기도 한다. 이층 계단은 가끔 방송에서 본 여느 주택들과는 격이 다르게 매우 가파르다. 어린 아기가 오르기에는 누군가 받쳐주고 감시하기 전에는 안심이 안 되는 곳이다. "할아버지는 잠시 뭐 할 일이 있으니까 그럼 너 혼자 놀아 응? 할아버지가 올라가게 도와줄게" 하고는 아이가 올라가는 걸 올려다 보고 있었다. 아이가 다 올라간 걸 확인한 나는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종일 미뤘던 컴퓨터 일을 대강 끝내고 났는데도 아이한테서 기척이 없다. 이상하다 싶어 이층 계단을 몇 개 더터 딛고 살며시 올려다 보니 녀석은 침대 위에서 여러 권의 책을 갖다가 좌우에 벌려 놓은 채 뒤적이고 있었다.
"뭐하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책 보는 거예요"
책에다 눈을 박은 채,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한다.

궁금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여 올라가봤다. 그 애 옆에 앉았다. 그래도 아이는 할애비를 돌아보지 않는다. 뭔 책인가 하고 봤더니 순간, 내 입이 벌어졌다. '백범일지, 조선총독 10인, 한국 근현대사의 민족문제 연구, 거꾸로 읽는 세계사, 논리 속의 철학, 12,12와 나, 거짓말 보고서...' 등등 굴곡진 역사서에 관한 것들이 보였고 '태평천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이방인...' 등 저명한 작가들의 소설책도 몇 권 보였다. 그 책들에 드문드문 들어 있는 어렵고 퇴색한 사진을 들춰보는 것이겠지만 나를 놀라게 하기엔 충분했다.

그것은 물론 이제 세 살이 되어가는 어린 아이의 때이른 천재성(?)에 감탄하는 것이 아니다. 제 에미 애비나 할미 할애비도 그 애가 천재이길 바라는 마음은 한푼어치도 없는 게 사실이다. 가족들 모두 천재 아이를 감당할 만한 주제도 못 되거니와 천재 자식이 이 시대에 마땅한지에 대해서도 당사자를 위하여 바람직한 것인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또 평원이가 천재성을 발휘하여 그 책들 속에 있는 글과 사진의 의미를 읽고 있으리라고는 더 더욱 믿고 있지 않다. 하지만 그 어린 것이 책장 안에 있는 책들 중에서 하필이면 주로 우리 현대사와 관련된 암울했던 시기에 관한 책들만이 꽂혀 있는 책 칸에서 뽑아 옆에 펼쳐놓았다는 것이 세상을 바로 보는, 바로 보아야 하는 시대의 구성원으로서 마냥 우연으로만 치부해야 하는지 신기했다.

"그 책에서 뭘 봐?"
뭘 봐? 뭘 보고 있을까? 뭘 보리라 기대하는가? 이건 할애비의 가당찮은 우문이었다. 그러나 아이는 아주 간결하고 극명한 현답을 주는 것이 아닌가.
"책 보는 거예요"
그렇다. 평원이는 지금 다만 책을 보고 있는 것이다.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는 것부터가 어리석은 일이 아니던가. 그 애는 지금 할애비의 얼굴도 돌아보지 않고 다만 독서 삼매경이 빠져 있는 것이다. 그걸 깰 권리는 내게 없다. 불현듯 낮에 못잔 피로가 노곤하게 밀려왔다. 나는 아이 옆에 누웠다.
"할아버진 네 옆에서 이렇게 잘게 응?"
"네에!"
평원이는 여전히 자기 일에만 열중하고 있다.

얼마가 지났을까.
따르릉... 전화벨이 울렸다. 평원이도 나도, 이 층 전체의 정적이 깨졌다. 전화를 받으려 일어나 보니 5시가 넘었다. 평원이는 그때까지 자세도 흐트리지 않고 책에 묻혀 있었다. 나는 그렇게 한 시간이나 넘게 잠들어 있었던 것이다.
"평원이 잘 놀아요?
애비였다.

잠시 후에 또 전화 벨이 울렸다.
"아버님 평원이 때문에 오늘 자유롭지 못하게 해드려서 죄송해요. 아직 서울인데요..."
에미였다. 평원이가 오지 않는 날엔 들을 수 없는 전화다. 아니다. 난 오늘 평원이 때문에 행복했단다.

밤 9시가 되자 아내가 가게 문을 닫고 들어왔다. 평원이가 팔을 벌리고 달려든다.
"할머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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