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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난은 취업난인가 보다. 대학교를 둘러보아도 아직 취업을 한 사람들이 없다. 매년 이맘때쯤이면 집중적으로 진행되는 취업프로그램. 그런 것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학교에서 취업준비생들을 위해 심혈을 기울이는 것은 좋지만 자칫 중요한 것을 빼놓고 있지는 않는가 하는 의문이 들 때도 있다. 바로 대학생들의 인문학적 성찰이 그것이다. 현재 대학교에서는 그러한 인문학적 성찰의 장을 마련해 주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대학교만을 탓할 순 없다. 인문학 관련 강연이나 프로그램이 없는 것에 대해 모대학 관계자는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을 짜고 준비를 해도 학생들이 오지 않는다"며 "학생들이 참여하지 않는 프로그램을 어떻게 계속 준비할 수 있는가"라고 말했다.

그 얘기를 들었을 때는 그것이 게으른 변명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대학교에서 있었던 두 강연을 참석하고 나서 그것이 변명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얼마 전, 한 대학교에서는 이틀의 간격을 두고 같은 시간에 두 사람의 명사를 초대해 강연회를 열었다. 한 사람은 삼성전자 사장을 거쳐 현재 IT 펀드 회사를 차린 진대제씨, 다른 한 사람은 20년을 넘게 택시운전사를 하다 현재 한겨레 기획위원으로 있는 홍세화씨였다.

전직 정통부 장관 진대제

▲ 진대제
ⓒ 김정미
누구나 알다시피 두 사람은 비록 나이는 비슷하지만 살아온 삶의 길과 가치관이 서로 다르다.

진대제 전 장관은 삼성전자를 거쳐 장관, 그리고 지금은 대표이사로 있다. 그는 사람들이 잘 먹을 수 있는 사회를 위해 애쓴다. 실제 정통부 장관으로 임명됐을 때, 국민의 먹을거리를 책임지라는 지시를 받은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그런 진 전 장관의 강연은 '성공을 위해서는 열정을 지녀라' '장기적인 목표가 아닌 중간 정도의 목표를 설정하라' '풍부한 상상력을 길러라' 등 취업을 준비하며 인생에서 성공을 꿈구고 도전하는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심어주는 강연이었다.

그의 삼성전자 사장 이력과 장관 재직 이력이 대학생들에게 많은 호기심을 자극시켰나 보다. 정말 많은 학생들이 진 전 장관의 강연을 듣기 위해 강연장을 찾았다. 사람들이 너무 많이 와서 늦게 온 사람들은 바닥에 양반 다리로 앉아 강연을 들어야만 했다. 하지만 강연이 끝나는 시간까지 누구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전직 택시 운전사 홍세화

▲ 홍세화
ⓒ 허환주
그럼 파리에서 20여년 동안 택시운전을 한 홍세화씨의 강연은 어땠을까.

홍세화씨는 1979년 남민전 사건에 휘말려 프랑스로 망명을 간 뒤, 그곳에서 택시운전사로 일했다. 그 뒤 2002년에야 한국에 들어와 한겨레 편집위원, 아웃사이더 편집위원 등으로 활동하면서 사회의 모순점을 고치고자 노력하고 있다.

홍세화씨의 강연 주제는 '인문학의 위기, 대학생으로 산다는 것은'이었다. 홍세화씨는 현재의 대학생들에게 인문학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강연했다. 그는 "인문학은 다른 것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 존재, 내 생각을 지키기 위해서 필요하다"며 "인문학의 성찰이 부족한 요즘 젊은이들은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고 말하며 독서, 토론, 여행 등을 통해 주체적 인간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현재의 대학생들을 꼬집었다.

홍세화씨의 강연은 학교에서 주최한 것과 달리 학교 학생회에서 주최했다. 그러다 보니 학교에서 주최하는 것보다 홍보도 덜 됐다. 그래서일까. 강연은 오후 4시에 하기로 되었지만 강연을 듣기 위해 모인 학생의 수는 10여 명 남짓. 결국 홍세화씨는 15분을 더 기다린 다음 강연을 시작했다. 그래도 학생의 수는 '대동소이'했다.

강연이 끝난 뒤 홍세화씨는 우스개소리로 "모인 학생 수에서 인문학의 위기가 드러난다"며 인문학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는 대학생들을 아쉬워 했다. 강연을 들은 한 학생은 학교 게시판에 홍세화씨 강연 후기를 쓰며 "(너무 사람이 오지 않아) 홍세화 선생님이 어떻게 생각할까 걱정했다"며 "그러면서 내 자신도 부끄러운 건 왜인지 모르겠다"며 강연에 관심을 가지지 않은 학생들에게 아쉬움을 표했다.

대학생은 어디로 가야 할까

▲ 강연이 이미 시작되어야 할 시간이었지만, 학생들은 10명도 채 없었다
ⓒ 허환주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동시대에 대학생으로 살아가는 학생으로서 부끄러웠다. 홍세화씨는 그것이 대학생들의 잘못이 아니라 대학생들을 둘러싼 사회의 잘못이라고 그 사회를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지만 부끄러운 건 어쩔 수 없는 일.

그렇지만 경쟁사회에 내몰린 대학생들의 다급한 마음 역시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남보다 앞서야지만 성공할 수 있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수 있기에 자신의 주위를 돌아다 볼 시간이 없는 우리 자신들을 말이다. 이제 대학생들은 어디로 가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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