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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사는 곳 마당에 푸르게 서 계신 '엄마나무'
ⓒ 정요섭
밤골 밭에서 늙은호박 네댓 개를 따서 내려오다가 호박범벅을 유난히 좋아하시던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차가워지는 날씨에 어떻게 지내시나 싶기도 하고, 올해 지은 농사 자랑도 하고 싶었지만 어머니께서 이 세상에 계시지 않다는 사실을 발신음이 몇 번 울리고서야 자각할 수 있었습니다.

부질없는 전화를 닫으면서 아득하고 막막한 서러움이 밀려와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이토록 보고 싶은 어머니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게 얼마나 사무치는 일인지요.

서른다섯 청청한 나이에 아버지를 떠나보낸 것도 모자라 혼자 상고생을 하며 다 키운 자식을 셋이나 먼저 보내는 바람에 병원냄새도 맡기 싫다시던 어머니. 어머니께서 병원에 누워 계신다는 전화를 받고 저는 가슴이 미어질 것 같았습니다.

굳건하던 나무 하나가 갑자기 쓰러진 것처럼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가실 거면 가슴에 담아둔 이야기라도 다 풀고 가시지, 사랑한다는 말씀 한마디로는 텅 빈 제 가슴이 다 채워지지 않습니다. 어머니 속만 태우던 저는 아직 용서해달라는 말씀도 못 드렸는데 그렇게 허망하게 가시면 이 한스러운 마음을 어찌해야 할지요.

며칠 전 이른 아침에 늦게 심은 배추가 잘 자라나 돌아보다가 어머니 생각이 나서 혼자 엄마를 불러보았습니다. 가까스로 "엄마" 하고 부르고는 갑자기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참으려고 해도 자꾸 흐르는 눈물을 감당할 수 없어서 아예 밭모퉁이로 가서 실컷 울어버렸습니다. 어머니께서 가신 뒤로 이렇게 울먹이는 게 여러 날입니다.

아직 어머니 가시는 길에 마중을 와주신 분들께 고맙다는 인사도 제대로 드리지 못했습니다. 뒤로 미뤄둔 회사 일도 여태 손대지 못했고, 어머니께서 그렇게 당부하신 신앙생활도 아직 미적이고 있습니다. 지금 제 모습을 어머니께서 보시면 얼마나 슬퍼 하실까 하면서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멍하니 지내고 있습니다.

어머니. 이제 어머니와 함께 산 마흔여덟 해 여한을 털어내고 어머니께서 기뻐하실 일을 하려 합니다. 말씀은 다 못하고 가셨지만 가지런하고 반듯하게 살다 가신 어머니께서 늘상 바라시던 대로 훨훨 살아가려 합니다.

저를 배불리기 위해 땅을 소유하는 일도 않겠으며, 재물이나 권력에 욕심을 부려 노예가 되는 일도 않겠습니다. 바지런하게 살아서 나눌 것을 많이 만들고, 누구에게든 누를 끼치며 살지 않도록 애쓰겠습니다.

어머니의 아들인 게 이렇게 자랑스러울 수 없습니다. 짧은 배움을 그나마 크게 쓸 수 있는 것도 어머님 가르침 때문이고 탐욕을 멀리하려 애쓸 수 있는 것도, 더딘 걸음이지만 또박또박 가야 한다는 것도 어머니께서 그런 모습을 몸소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어머니께서 제게 하신 것처럼 저도 자식에게 그렇게 하려 노력하겠습니다.

오늘은 하늘이 참 맑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심은 '엄마나무'가 햇살과 반짝이며 속삭이는 모습이 눈부시게 아름답습니다. 신기하게도 다른 나무들은 먹빛하늘 지리한 장마를 건너 불볕더위를 견디느라 맥 빠진 모습으로 지쳐 있는데 유독 엄마나무만 파랗게 윤기가 납니다.

명년 봄에는 예쁜 꽃잎으로 흐드러질 엄마나무를 생각하면 저절로 힘이 납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머니께서 만드신 꽃그늘 아래 쉬어갈 생각에 가슴이 뿌듯해집니다.

정요섭.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경기도 안성시 지역매체인 '안성신문'에도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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