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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북경 내의 한국인촌이라 할 수 있는 망경(望京 : 왕징). 지하철 망경역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기본요금 정도의 거리를 가면, 놀라운 곳이 있습니다. 바로 대산자 예술구(大山子藝術區 : 따샨즈이슈취). 흔히들 뉴욕의 소호에 빗대어 얘기하는 북경의 예술특구입니다. 몇 블록을 아우르는 넓은 부지에 갤러리와 전시관, 스튜디오 등이 밀집해 있습니다.

▲ 대산자 예술구에는 이렇게 많은 화랑들이 모여있습니다.
ⓒ 윤영옥
이곳을 처음 보고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아, 북경에 이런 데가 다 있네?' 하는 것입니다. 북경이라는 도시에 대한 저의 선입견을 그대로 드러내 주는 말이지요.

제가 1년을 살면서 느낀 북경은 세계적 거대도시이긴 하지만, 그건 외국인에게 많이 보이기 때문에(?) 특별히 관리되고 있는 몇몇 지역(예를 들어 천안문 일대와 대사관 거리 등)만 보았을 때 그렇지 전체적으로는 삭막하고 지저분하고, 아직은 발전해야 할 부분이 많은 곳이었습니다. 특히 문화예술 방면에서 말입니다.

▲ 대산자 예술구의 또 다른 이름은 '798 예술구'인데, 중심이 되는 이 거리의 이름에서 따온 것입니다.
ⓒ 윤영옥
유럽이나 미주와 비교했을 때, 국민 전반이 누리는 문화적 수준과 혜택이 (점차 나아지고는 있지만) 낮다고 하는 우리나라도 박물관이나 미술관, 영화관 등을 흔히 접할 수 있고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북경에서는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일조차 쉽지가 않습니다. 서울보다 훨씬 크면서도 극장 수는 그렇게 많아 보이지 않고요.

한국에 있을 때 저는 뮤지컬 보는 것을 무척이나 즐겼습니다. 크고 작은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찾아다니는 것도 좋아했고요. 그러다 중국에 오게 돼서 가장 힘들었던 것이 바로 이 점입니다. 공연을 볼 수가 없다는 것,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쉽게 갈 수가 없다는 것. 사람이 밥만 먹고 사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게 1년여를 살다가 제가 이곳 대산자 예술구를 보고 느낀 놀라움은 약간은 '충격'의 수준이었다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대산자 예술구는 원래 공장 지대였다고 합니다. 중국에 한창 사회주의의 바람이 거셀 때, 핵심 건설 현장이었다지요? 그러나 사회주의가 한풀 꺾이고 중국 정부가 개혁 개방 정책을 펴면서 이곳도 자연스럽게 쇠락했습니다.

그 후 오랜 시간 폐허로 남아 있다가 2000년대 들어 한 미술대학의 교수가 이곳의 공장 창고를 빌려 자신의 작업장으로 쓰면서, 화려한 변화의 길이 열렸습니다. 그 대학교수의 작업실을 시작으로 다른 예술가들의 작업실과 전시실이 빠르게 들어서게 된 것이죠.

▲ 이곳이 예전에는 공장지대였음을 확연히 느낄 수 있습니다.
ⓒ 윤영옥
▲ 한 전시관의 내부. 이 전시관에서는 올림픽 기념 디자인전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 윤영옥
▲ 벽의 낙서들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 윤영옥
예술가들은 큰 건물을 싼 임대료에 빌릴 수 있고, 정부는 쓸모가 없어 방치된 땅을 임대할 수 있으니 서로 이해 관계가 아주 적절히 들어맞은 셈이지요. 게다가 지금은 관광지로서의 역할도 톡톡히 해내고 있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 카페나 레스토랑 역시도 공장 건물을 개조한 것인데, 의외로 분위기가 좋습니다.
ⓒ 윤영옥
대산자 예술구는 거리나 건물의 모습에서 이곳이 공장지대였음을 확연히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공장 시설들의 내부는 겉만 보고 판단할 수 없습니다. 각자 독특한 분위기로 인테리어 한 수많은 화랑과 카페, 전시관 등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눈길과 발길을 잡습니다. 하나하나 다 들어가 보고 싶은데 그럴 수 없으니, 짧은 하루해가 원망스러울 뿐이지요.

공장과 미술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그 둘은 묘하게 잘 어울립니다. 오히려 공장지대였다는 점이 이곳의 매력을 배가시키는 것 같습니다.

저와 함께 간 세 분의 교수님 중에서도, 미술을 전공하신 김 교수님은 특히나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십니다. "한국에도 이런 곳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도 나중에 이런 데에 작업실 하나 가지면 참 좋겠다" 등 부러움을 감추지 못하십니다. 분야와 전혀 무관한 저도 보기만 해도 이런 분위기가 좋은데, 그 분야에 계신 김 교수님은 오죽하시겠습니까.

이곳은 아직 한국에서 출판된 중국여행 가이드북에는 나오지 않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때문에 한국 관광객들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오히려 서양인 관광객들은 의외로 많습니다. 어떻게들 알고 왔는지….

하지만 가이드북에 소개된 다른 유명 관광지와 비교하여 전혀 손색이 없는 곳입니다. 시간 여유를 갖고 북경에 오시는 분들에게 적극 추천하는 바입니다. 미술에 관심 있으신 분들에게라면 더욱 그러하겠죠.

▲ 한 전시관 벽에 '모주석은 우리 마음 속의 붉은 태양!' 이라는 구호가 아직 남아있습니다.
ⓒ 윤영옥
대산자 예술구에는 현재도 많은 전시관이 있지만 앞으로도 더 많은 전시관들이 개장할 예정입니다. 또 시기마다 특별전이나 축제가 열립니다. 바로 이곳에서 한국 영화 축제도 있었고, 제가 갔을 때는 '798 창의문화제'라는 특별전 기간이었지요. 언제 가더라도, 아무리 여러 번 가더라도 질리지 않을 것 같은, 향기로운 곳입니다.

ⓒ 윤영옥
ⓒ 윤영옥

덧붙이는 글 | * 중국에서는 다들 아시다시피 간체를 사용합니다. 그러나 기사에서는 가독성을 위해 번체를 사용했습니다. 기사의 지명은 '우리말 발음(한자 : 중국어 발음)'의 형식으로 표기하였습니다.

* 이 기사와 이어진 예전 기사의 부제는 '[중국살이 1년] 북경에서 놀기'입니다. 그러나 제가 예정보다 더 오래 북경에 체류하게 된 관계로 제목을 변경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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