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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 같이 잘 해보자
ⓒ 장옥순

매체를 접하는 게 무섭습니다. 날만 새면 또 다른 일들이 터져 나오는 교육 현장의 모습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다잡고 다독이며 다시 일어서서 가던 길을 묵묵히, 다시 걸어가야 함을 알기에 슬퍼도 힘들어도 이 길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노동자라고 해도 좋고 직업인이라 해도 좋고 철밥통이라 해도 좋습니다. 우리 선생님들 곁에 아이들만 있으면 됩니다. 그들의 초롱한 눈망울, 앎의 기쁨에 즐거워하며 앞서가는 우리들의 발걸음, 한 마디에 감동하여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는 제자들이 있는 교실만 빼앗기지 않으면 다행입니다.

지난 3∼4월 동안 주의 집중이 안 되고, 산만하며 소리를 지르는 아이들 곁에서 좌절하며 날마다 한숨을 쉬며 교실을 지켜냈습니다. 아파서 쓰러지기도 하고, 불면증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처음 입학한 1학년 아이들 19명이 서로 아끼고 배려하며 학교라는 새로운 배움터를 알게 할까 고민했습니다.

돌 틈에서 피어난 괭이밥 한 그루도 그저 꽃피지 않으며 연못 속의 수련도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만 고운 꽃대를 올립니다. 인생이라는 말이 고통을 빼놓고는 시작되지 않습니다. 생명 탄생의 순간에 겪어야 하는 산고만큼은 되지 못하더라도 열매를 위해서는 몇 번의 시련과 고통쯤은 각오해야 됩니다. 그 같은 일반화는 교실이라 하더라도 예외는 아닙니다.

오늘(26일) 우리 아이들과 만난 지 64일 째를 맞았습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확인해 주는 알림장 사인에서부터 점심 시간에 음식을 남기지 않고 40분 이내에 식사를 마치려고 노력하는 아이들 모습을 보며 보람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엉덩이만 들면 뛰던 아이들이 이제는 조용조용 걷는 모습, 아침 독서 시간이면 인사까지도 목례로 하며 조용히 해야 한다는 것을 실천하는 모습을 보면 귀여워서 볼때기라도 깨물어 주고 싶을 만큼 예쁘답니다.

공모양의 재활용 물건을 가져오라는 숙제를 한다며 영찬이가 비닐 봉투에 담아온 생 오리알 한 개를 가져온 어제(25일) 아침은 오랜만에 실컷 웃었습니다. 제 깐에는 얼마나 신경을 썼겠습니까? 아마 집안 곳곳을 뒤졌거나 엄마를 졸라서 가져왔겠지요.

'교육'은 바람직한 행동 변화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쉬는 시간이면 30분 이상 돌아다니다가 들어오던 그 개구쟁이가 이제는 시간 안에 들어오게 되었고, 점심 시간이면 식판을 깨끗이 비우며 밥도 잘 먹습니다. 글씨를 잘 몰라 칠판에 써 주는 알림장 글씨를 1시간 이상 그리더니 이제는 5분이면 끝냅니다.

▲ 좋은 선생님이 되소서!
ⓒ 장옥순
이제는 제법 의젓하게 글씨를 쓰고 공부하는 모습들이 틀이 잡혀가는 아이들을 보며 쏠쏠한 재미와 내밀한 기쁨을 느낍니다. 그리고 알곡을 거둘 그날을 조심스럽게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친구랑 싸우면서도 주먹질만은 참으려고 우는 원빈이의 변화된 모습, 글씨를 모르는 친구를 놀리는 대신 옆에서 읽어주는 승현이, 색칠하기를 할 때마다 떡 칠을 하던 영민이의 좋아진 모습, 아무 때나 돌아다니던 고은이가 예쁜 자세로 자리를 지키는 모습을 보며 교육이란 그렇게 거창한 변화가 아닌 조그마한 몸짓이란 걸 깨달으며 포기하지 않은 나 자신에게 박수를 보낸답니다.

발표를 하면 천진난만한 내용에 하늘만큼 행복해서, "발표를 참 잘 해서 뽀뽀해 주고 싶은데 그러면 안 되겠지요?" 하면 "우리들은 눈을 감고 있을 테니 뽀뽀해 주세요"하는 아이들의 깜찍한 발언에, "그래도 참을 란다"하면서 아쉬움을 표현하면, 우르르 몰려와서 품에 안기는 여자아이들의 작은 몸을 안아주며 이미 다 커서 숙녀가 되어버린 내 딸아이를 생각하곤 합니다.

요즈음은 바람 잘 날이 없어서 마음을 가라앉은 선생님들이 많으십니다. 가장 아름다운 5월을 참 힘들게 보내는 선생님들이 많습니다. 누가 알아주기를 바라고 교실을, 아이들을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아는 모든 선생님들은 최고는 아닐지라도 성실하게 교단을 지켜오신 분들입니다. 선생님들도 모두 한 인간이라고 가정한다면 작은 잘못이나 실수를 떠벌려서 전체의 일인 것처럼 시끌시끌한 매체의 모습에 절망합니다.

무엇이 아이들을 위한 일인지, 조용하게 처리할 수 없을 만큼 큰일이라기 보다는 감정 싸움인 경우가 더 많지 않은가 합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갈등 양상으로는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학부모를 무시하는 일도, 선생님을 매도하는 일도 아이들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 발작씩 물러서서 그 일이 아이들을 위한 일인지, 자존심에 관한 일인지 생각했으면 합니다.

이럴 때일 수록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서 본분에 충실하며 교실을 지키자는 생각으로, 우리 학교는 새내기 선생님이 처음 공개하는 수업을 숙연한 마음으로 지켜봐 주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첫 수업을 공개하는 그분에게 힘을 얻게 할까 고심했습니다. 생각해 낸 것이 첫 수업 기념패랍니다. 교단에 서서 힘들어질 때마다 들여다보고 힘을 얻기를 바라는 선배 선생님들의 마음을 담았습니다.

▲ 첫 수업 공개의 마음을 잊지마세요
ⓒ 장옥순
힘든 시기에 교단에 선 새내기 선생님을 위해 첫 수업 기념패를 생각해 내신 우리 학교 교장 선생님(최수성)의 혜안에 감동의 박수를 보내면서 부러워하시던 선배 선생님들의 모습이 마음에 걸립니다. 아이들 속에서 사시니 희끗한 머릿결에도 아이들 같은 선생님들의 가슴에 상처를 안겨준 5월이 이렇게 가고 있습니다.

세상이 시끄러울수록 우리의 본분인 수업 장학력을 키울 때입니다. 수업을 통해서 아이들을 바람직하게 이끌고 감동시켜야 함을 생각하며 세상을 원망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 자리에 서 있는 동안 내게 입혀진 옷이 내 것인 것처럼 함부로 입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영국의 유명한 낭만주의 시인인 존 키츠는 "실패는 성공으로 향하는 큰길이다. 어떤 것이 잘못됐는지를 알 때마다 진실이 무엇인가를 알게 한다. 그리고 새로운 경험을 할 때마다 잘못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다. 그래서 다음부터는 실패하지 않을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5월에 터진 아픈 상처와 사연들은 모두 다 우리 교육의 성공을 위한 작은 실패였다고, 의도하지 않은 실수였다고 긍정적인 눈으로 바라보며 건설적인 미래를 향한 길잡이로 삼았으면 참 좋겠습니다. 아이들은 우리 모두의 꽃입니다. 학부모님과 선생님은 그 꽃을 피우는 꽃받침이며 뿌리입니다.

덧붙이는 글 | <한교닷컴> <에세이>에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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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매에는 사랑이 없다> <아이들의 가슴에 불을 질러라> <쉽게 살까 오래 살까> 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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