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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들아이의 편지
ⓒ 한명라
매년 어버이날을 눈앞에 둔 5월 이맘때면 저는 연례행사처럼 어김없이 아이들이 보내는 편지를 받습니다. 그 편지를 받을 때마다 아이들이 편지 내용도 해마다 나아지는 것 같아서 마음을 뿌듯하게 해 줍니다.

지금은 중학교에 다니는 우리 아이들이 유치원에 다니던 시절, 색종이로 만든 빨간 카네이션과 함께 삐뚤빼뚤 연필로 꾹꾹 눌러 쓴 첫 번째 편지를 읽던 기억은 지금 생각해도 마음이 따뜻해지고 흐뭇합니다.

며칠 전 저녁이었습니다. 퇴근을 한 저에게 아들아이가 몇 통의 우편물을 전해 주면서, 또 다른 한 통의 편지를 뒤늦게 내밀었습니다. 아들은 "엄마 아빠에게 함께 쓴 편지니까 지금 읽지 말고 아빠랑 함께 읽으셔야 해요" 합니다.

지난번에 편지봉투와 편지지, 우표를 학교에 가져가야 한다고 하더니 학교에서 부모님께 써서 보냈다는 편지가 벌써 도착을 했나 봅니다.

아들아이의 편지를 화장대 위에 올려놓고 잠자리에 들었던 제가 잠에서 깬 것은 새벽 3시가 다 되어서야 퇴근한 남편의 인기척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들아이의 부탁처럼 남편과 함께 아들아이의 편지를 읽으면서 우리 부부는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아들아이가 쓴 편지 내용 중에 "제가 어서 자라 월급을 타면 한턱 거하게 내겠습니다"하는 부분 때문입니다. 남편은 "한턱 거하게 내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엄마 아빠를 평생 동안 먹여 살려야 할텐데~" 했지요. 남들은 깊은 잠에 빠져 있을 새벽 그 시간에 저와 남편은 큰소리로 웃었습니다.

사실 아들아이가 지금의 중학교 2학년이 되기까지 자라오면서 우리 부부는 아들아이로 하여금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정도로 크고 작은 사건을 많이 겪었습니다.

아들아이가 6살 때에는 친구들과 동네 놀이터에서 놀다가 길옆에 세워져 있는 자전거에 올라탔다가, 그만 그 자전거에 아들아이의 발목이 끼였는데 빠지지 않아서 119구조대의 빨간 차가 무려 3대나 요란스럽게 출동을 하여 동네가 발칵 뒤집힌 일도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에는 학교에 등교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아들아이가 다쳤다는 담임선생님의 전화를 받고 정신없이 학교에 달려갔더니, 옆반 아이가 손톱으로 긁어 놓아서 아들아이의 얼굴이 온통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10여 군데나 되는 상처 중에서 오른쪽 눈 밑의 상처는 유난히 크고 깊어서 지금도 얼굴 한가운데에 훈장처럼 흉터를 달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손톱에 의한 상처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느껴지는 대형사고가 1주일쯤 후에 또 아들아이에게 일어났습니다.

그 사건도 아들아이의 교실에서 일어났는데, 같은 반 아이가 장난감 총을 쏘았는데 그만 그 총알이 아들아이의 왼쪽 눈동자를 맞추는 바람에 3개월 가까이 병원을 다니면서 치료를 받아야 했습니다.

처음 실명될 확률이 60%라는 담당의사 선생님 말씀에, 눈에 안개가 낀 것처럼 눈앞이 뿌옇다는 아들의 이야기에 저는 하늘이 무너져 내린다는 말의 의미를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그 순간 저도 모르게, 눈이 다친 아들아이를 안고 이 세상의 그 누군가를 향해서 마음으로 간절하게 기도를 했습니다.

아들아이의 눈이 아무 탈없이 정상으로 낫게만 해 달라고,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 지금보다 더 낮은 자세로 겸손하게 세상을 살겠다고, 그 동안 저도 모르게 잘못된 삶을 살아왔다면 그 벌은 아들이 아닌 저에게 내려달라고.

그렇게 이 세상의 그 누군가를 향해서 속죄하는 마음으로 기도를 하면서 3개월 동안 아들아이와 병원을 다녔고, 아들의 눈이 다 나았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때 3개월 동안 제가 겪었던 마음의 고통은, 그 이전까지 제가 살아오면서 겪었던 크고 작은 사건을 모두 합친다 해도 감히 비교가 안될 만큼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 아직도 얼굴에는 흉터가 훈장처럼 남아 있습니다.
ⓒ 한명라
그후 아들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이던 2002년 봄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공인중개사 자격시험을 준비하느라 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어느 낯선 전화번호로부터 아들아이가 자신의 차에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그때 저는 또 아들아이로 인하여 한순간에 하늘이 노랗게 변하는 경험을 했습니다.

남편과 제가 깜짝 놀라 병원으로 달려갔을 때, 불행 중 다행이라는 말에 맞게 아들아이의 신발이 신지 못할 정도로 찢어진 것과는 달리 아이의 발목은 살갗이 약간 벗겨지고 부어 오를 정도의 찰과상이었습니다.

그렇게 유난히 우리 부부의 가슴을 놀라게 했던 아들아이가 어느새 이만큼 자라서 엄마 아빠에게 '한턱 거하게 내겠다'는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그 동안 크고 작은 사건을 겪게 하면서 엄마 아빠의 가슴을 숱하게 놀라게 하고, 쓸어 내리게 했던 아들이 보내 준 편지이기에 우리 부부에게는 그 어떤 선물보다 마음을 뿌듯하게 하고 따뜻하게 해 줍니다.

아들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지켜봤던 주변 사람들은 우리 가족이 그 동네를 떠나온 지 벌써 6년이 넘었건만, 아직도 아들아이의 안부를 궁금해하며 근황을 물어온다고 합니다.

우연한 자리에서 저와 만나게 되면 그 유명한 개구쟁이 아들을 키우느라 참으로 고생이 많았다고 위로해 주는 이야기에 '정말 우리 아들아이가 그렇게 별났었나?'하고 다시 한번 뒤돌아보고 웃을 수 있는 여유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말 우리 앞에는 그 어떤 일들이 일이 기다리고 있는지, 단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만큼 나약한 존재가 우리 인간이라는 사실을 저는 아들아이를 통해서 여러 번 깨달았습니다.

앞으로도 저희 부부가 아들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길에 또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는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 어떤 일이 생긴다 해도 주어진 일에 있어서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노라면 지금처럼 지난 일을 이야기하면서 웃을 수 있는 여유도 가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저는 아침이면 아파트 베란다를 통해서 학교에 가는 아들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오늘 하루도 아무 탈없이 건강하게 잘 보내고 언제나 밝고 옳은 길을 갈 수 있게 해 달라고 마음으로 기도를 합니다.

그런 엄마의 마음이 언젠가는 꼭 우리 아이들에게 전해질 때가 있겠죠?

아들이 보낸 편지

아버님, 어머님 안녕하십니까?

어버이날을 맞이하여 편지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저를 낳아 주시고, 키워 주신 그 은혜,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제가 어서 자라 월급을 타면 한턱 거하게 내겠습니다.

저를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시는 어머님에게 정말 감사를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저를 위해 조언을 아끼시지 않는 아버님께 정말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항상 아버님께 감사드리고, 그 조언을 존경스럽게 생각합니다. 아낌없는 조언 감사드립니다.

소크라테스가 말했죠? '너 자신을 알라'

사람이란 자기 자신부터 알고 깨우친 뒤에야 다른 일을 실천할 수 있다는 말 같습니다.

부모님, 건강하시고 만수무강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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